시선뉴스=심재민 기자 | 현금 없는 사회가 현실이 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의 카드 소비액은 사상 처음으로 1천조 원을 돌파했고, 전체 소비 결제 중 모바일 간편결제의 비중은 30%를 넘어섰다. 이처럼 QR코드 한 번, 지문 인증 한 번으로 끝나는 결제가 보편화되면서, 우리는 어느새 ‘빠르고 쉬운 결제’에 익숙해졌다. 이러한 가운데, 디지털 결제 시스템이 고도화되면서 결제 자체만큼이나 ‘언제, 어떻게 지불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지도 다양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BNPL’ 서비스가 떠오르고 있다. 

BNPL은 ‘Buy Now, Pay Later’의 약자로 말 그대로 지금 물건을 사고 나중에 돈을 갚는 서비스다. 쉽게 ‘선구매 후결제’로 이해하면 되고, 간편함과 접근성 덕분에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BNPL은 겉으로 보기엔 신용카드와 유사해 보이지만 ‘신용’과 ‘카드’가 필요 없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신용도에 따라 발급받는 절차도 없고, 경우에 따라 신용조회를 하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다. 대신 대부분의 BNPL 서비스는 사용자에게 일정 금액의 한도를 부여하고, 사용자는 이 안에서 필요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먼저 이용한 후, 일정 기간 뒤에 무이자 또는 저이자의 할부로 대금을 갚는 구조다. 클릭 한두 번이면 결제가 끝나고, 승인도 몇 초 안에 이뤄지는 등 빠르고 간편한 사용자 경험이 큰 강점으로 꼽힌다.

이처럼 편리한 시스템 덕분에 BNPL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전 세계적으로 급격히 성장했다. 스웨덴의 클라르나(Klarna), 미국의 어펌(Affirm), 호주의 애프터페이(Afterpay) 등 대표적인 글로벌 기업들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으며, 이들은 각각 수억 명의 사용자와 수천 개 이상의 가맹점을 확보하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들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 세계 BNPL 시장 규모는 약 1,700억 달러에 이르며, 2028년까지 연평균 25% 가까운 성장률이 예상된다. 팬데믹 이후 비대면 소비가 일상화되면서 BNPL의 인기는 더욱 가속화됐고, 고물가·고금리 시대에 ‘즉시 부담 없는 소비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빠르게 BNPL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2021년부터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토스 등 국내 주요 빅테크 기업들이 소액 후불결제 서비스를 도입하면서 소비자들은 신용카드 없이도 원하는 상품을 간편하게 구매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카카오페이는 2023년 기준으로 250만 명 이상의 이용자를 확보하며 BNPL 대중화의 중심에 서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이용 한도가 약 30만 원 수준이지만, 금융당국은 이를 최대 100만 원까지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국내에서는 여전히 실험 단계지만 성장 가능성은 분명한 BNPL. 하지만 이렇게 매력적인 서비스도 함정은 있다. 많은 소비자들이 BNPL을 단지 ‘간편한 외상’ 정도로 여기며 가볍게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BNPL 역시 본질적으로는 ‘신용’ 기반의 금융 서비스이며, 약속된 날짜에 상환하지 못할 경우 연체 이자가 발생하고, 심한 경우 개인의 신용점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BNPL을 여러 플랫폼에서 동시에 이용하면, 각각의 결제 일정을 파악하기 어려워져 자칫 연체가 누적될 수 있다. 실제로 일부 서비스는 연체 시 최대 연 20% 이상의 고금리를 부과하며, 장기 연체 시 채권추심이 진행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BNPL을 사용할 때 반드시 자신의 소득과 지출 상황을 고려해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이용할 것을 조언한다. 

앞으로 BNPL은 단순한 결제 시스템을 넘어 하나의 금융 생태계로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일부 글로벌 기업들은 AI 기반의 신용평가와 소비자 맞춤형 결제 옵션을 개발하고 있으며, BNPL을 중심으로 보험, 투자, 저축 기능까지 연결하는 통합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동시에 정부와 금융당국은 소비자 보호 장치를 강화하기 위한 제도적 정비에 나서며 BNPL의 건전한 성장 기반을 마련하려 하고 있다.

BNPL은 분명 소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그러나 이 패러다임은 소비자의 금융 이해력과 책임 의식 위에서만 건강하게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 ‘지금 쓰는 돈은 미래의 내가 갚는다’는 간단한 원칙만 잘 기억해도, BNPL은 효율적인 소비 전략의 수단이 될 수 있지만, 간과하면 화살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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