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나 지역을 넘어 전 세계 각계각층에서 존경받는 사람들. 그런 역량을 갖춘 인재이자 국가나 기업을 ‘글로벌 리더’라고 부른다. 역사 속 그리고 현재의 시대를 이끌고 존경받는 사람들은 누가 있을까. 그들의 삶의 기록과 가치관 등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성공한 배우 중 한 명이면서도 오스카와는 유독 인연이 없던 톰 크루즈(63)가 데뷔 45년 만에 생애 첫 아카데미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평생 극장을 옹호해온 배우, 팬데믹 시기 침체한 북미 극장가를 되살린 상징적 인물, 그리고 40여 년간 고난도 스턴트를 직접 소화해 온 헌신이 마침내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순간이었다. 미국 아카데미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는 16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16회 거버너스 어워즈에서 그에게 명예 아카데미상(Academy Honorary Award)을 수여했다. 1990년 첫 후보 지명 이후 35년 만에 얻은 첫 오스카였다.

오스카 공로상 받은 배우 톰 크루즈 [AFP=연합뉴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오스카 공로상 받은 배우 톰 크루즈 [AFP=연합뉴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극장을 지킨 배우, 산업의 균형을 떠받친 존재

톰 크루즈는 세계 영화 산업에서 가장 높은 흥행 성적을 기록한 배우 중 한 명이지만, 단순한 ‘흥행 스타’로만 분류되지는 않는다. 팬데믹 시기 극장 산업이 세계적으로 침체에 빠졌을 때도 그는 일관되게 극장 개봉을 옹호했고, <탑건: 매버릭>과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는 침체된 극장가에 활력을 되돌린 대표적 사례가 됐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당신이 극장을 살렸다”고 평가한 발언은 당시 그가 산업 회복에 미친 영향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직접 수행하는 스턴트’다. 대역 없이 비행기 외벽에 매달리고, 고공 낙하와 고속 질주 장면을 스스로 감행하는 방식은 그의 필모그래피 곳곳에 반복된다. AMPAS가 공로상 선정 사유로 “스턴트와 영화 제작 전반에 대한 헌신”을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45년의 필모그래피, 그리고 아카데미와의 긴 엇갈림

영화 '탑건: 매버릭' 스틸컷
영화 '탑건: 매버릭' 스틸컷

1981년 <끝없는 사랑>으로 데뷔한 이후, 크루즈는 <탑건>, <레인 맨>, <어 퓨 굿 맨>, <제리 맥과이어>, <바닐라 스카이>, <매그놀리아>,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등 대중성과 완성도를 넘나드는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그러나 아카데미상과의 관계는 늘 거리를 두고 있었다. ▲1990년 <7월 4일생> 남우주연상 후보 ▲1996년 <제리 맥과이어> 남우주연상 후보 ▲2000년 <매그놀리아> 남우조연상 후보 ▲2023년 <탑건: 매버릭> 작품상 후보(제작자) 등 네 번의 후보 지명에도 수상과는 늘 한 걸음 모자랐다. 이번 공로상은 그가 첫 후보에 오른 지 35년 만에 처음으로 거머쥔 오스카이자, 오랜 ‘무관의 시간’에 마침표를 찍은 순간이었다.

어두운 극장에서 시작된 충격, 배우의 출발점을 만들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 스틸컷
영화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 스틸컷

이번 수상 소감에서 크루즈는 자신의 영화 인생이 시작된 지점을 조용히 꺼냈다. “어두운 극장에서 스크린을 가로지르던 한 줄기 빛, 그 순간 세상이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넓다는 걸 알았다.” 그에게 영화는 단순한 흥미가 아니라 세계를 열어 보이는 통로였고, 이해하고 싶은 욕구와 탐구의 갈망을 일깨운 첫 경험이었다. 그는 “모험에 대한 갈증, 인간을 이해하고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열망이 그 순간 내 안에 불붙었다”며, 이후에도 그 빛을 따라왔다는 말로 자신의 시작을 설명했다.

“영화는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 나를 규정하는 일”

수상 무대에서 크루즈는 “영화는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을 규정하는 일”이라고도 말했다. 이어 스튜디오 관계자, 제작진, 스턴트 팀, 극장주 등 오랜 경력을 함께한 이들을 차례로 호명하며 감사를 전했다. 특히 그가 “저와 함께 일한 분들은 모두 일어서 달라”고 하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제리 브룩하이머, 크리스토퍼 맥쿼리 감독 등 동료들이 자리에서 일어섰고, 크루즈는 “여러분 모두가 제 영화의 프레임마다 담겨 있다”고 말했다. 객석에서는 약 2분간의 기립박수가 이어졌고, 그는 트로피를 들고 소감을 전하며 잠시 눈시울을 붉혔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배우, 다음 장면을 향해 걷다

오스카 공로상 시상한 알레한드로 이냐리투 감독(오른쪽)과 수상자 톰 크루즈 [AP=연합뉴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오스카 공로상 시상한 알레한드로 이냐리투 감독(오른쪽)과 수상자 톰 크루즈 [AP=연합뉴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시상자로 나선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크루즈를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영화 그 자체”라고 소개했다. 두 사람은 현재 2026년 개봉 예정작을 함께 작업 중이며, 크루즈는 이 작품으로 다시 아카데미 본상에 도전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예순세 살, 크루즈는 여전히 차기작을 준비하며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도 이어갈 계획이다. 수상 소감 말미에 그는 “앞으로는 부러지는 뼈가 조금 줄었으면 한다”는 농담을 남겼다.

‘극장 속 빛줄기에서 출발한 배우’ ‘45년 동안 스크린을 지켜온 배우’ 톰 크루즈의 첫 오스카는 늦게 도착했지만, 그의 영화 인생이 아직 닫히지 않았음을 또렷하게 증명하는 한 장면이었다.

 

시선뉴스=심재민 기자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