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공업단지의 중심부에서 반세기 넘게 공단 현장을 밝힌 ‘울산화력발전소’. 1960년대 국가 산업화를 뒷받침하기 위해 세워진 이 발전소는 최근 노후 설비 해체 과정에서 대형 붕괴 사고가 발생하며, 에너지 인프라의 안전 문제를 드러낸 현장으로 다시 주목받았다. 울산화력발전소가 어떤 시설인지, 그리고 이번 사고가 무엇을 남겼는지 살펴본다.
울산화력발전소는 한국동서발전이 운영하는 대규모 화력발전소로 중유·LNG를 연료로 총 3,275메가와트(MW)의 전력을 생산한다. 울산 석유화학·자동차·조선 산업단지뿐 아니라 도심 전력 수요까지 감당해온 핵심 인프라이며, 설비의 상당수는 준공 후 40년이 넘은 노후 구조물로 순차적 폐지와 해체가 진행되는 중이었다.

참사는 이 해체 과정에서 벌어졌다. 지난 6일 오후 2시 2분, 보일러 타워 4·5·6호기가 줄지어 있는 구역에서 가운데 5호기가 철거 작업 도중 붕괴했다. 기둥과 철골을 미리 잘라 목표 방향으로 넘어뜨리는 ‘사전 취약화 작업’ 중 구조물이 한순간에 주저앉은 것이다.
당시 작업자 9명 중 2명만 탈출했고, 7명은 잔해에 매몰됐다. 구조대는 국가소방동원령까지 발령해 700t급 크레인 등 중장비와 인력을 총동원했지만, 얽히고설킨 H빔과 철골 구조물이 길을 가로막았다. 여기에 4·6호기 추가 붕괴 위험으로 수색이 지연되자, 당국은 발파로 주변 타워를 먼저 쓰러뜨린 뒤 잔해를 정리하는 결정을 내렸고, 사고 8일 만인 11월 14일 밤 마지막 실종자까지 모두 숨진 채 수습되며 마무리됐다.
사고 이후 수사와 조사 과정에서 여러 의혹이 드러나고 있다. 우선 해체 과정의 핵심인 ‘사전 취약화 작업’이 안전계획서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됐다는 의혹이다. 시공사 HJ중공업의 안전계획서에는 지상 1m·12m 지점에서 기둥을 절단하도록 돼 있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설계도에 없는 25m 지점까지 추가 취약화 작업이 진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노후 철골 구조물의 안정성이 이미 낮은 상황에서 상부까지 절단을 확대한 것이 붕괴의 직접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다.
제도적 허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60m에 달하는 보일러 타워가 현행법상 ‘건축물’이 아니라는 이유로, 지자체 해체 허가·상주 감리 등 강화된 안전관리 규정의 적용 대상에서 빠져 있었던 것이다. 초고층 철 구조물이 사실상 사업자와 시공사 자체 감독 체계에만 의존해 철거를 진행하게 된 것이다.
노동 구조 역시 논란이다. 사고 당시 작업자 대부분이 하도급·비정규직·단기 일용직이었고, 플랜트 공사를 처음 경험한 비숙련 인력도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발주처인 한국동서발전의 기술시방서에는 ‘우수한 기능공을 동원해 안전하게 작업한다’는 원칙이 적시돼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위험도가 높은 고층 취약화 작업에까지 비숙련 인력이 투입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와 수사당국은 안전계획서·시공 기록·지시 문건 등을 토대로 중대재해처벌법·산안법 위반 여부를 집중 조사 중이다. 이번 결과에 따라 발전소 해체뿐 아니라 국내 산업시설 해체 안전지침 전반이 크게 바뀔 가능성도 있다.
울산화력발전소 붕괴 사태는 ‘노후 인프라를 어떻게 안전하게 마무리할 것인가’라는 과제를 남겼다. 이번 참사가 같은 유형의 사고를 막는 계기가 되고, 해체 공정 전반을 다시 설계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시선뉴스=양원민 기자 / 디자인=김선희 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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