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정혜인 기자 ㅣ친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김신혜(47) 씨가 사건 발생 24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광주지법 해남지원 형사1부(박현수 지원장)는 지난 6일 존속살해 사건에 대한 재심 선고 공판에서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김씨는 이 사건으로 구속된 지 24년, 재심 개시가 결정된 지 9년여 만에 출소할 수 있었다.

김씨의 아버지 A씨는 2000년 3월 7일 전남 완도군의 한 버스 정류장 인근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처음에는 뺑소니 교통사고로 보였으나 A씨에게서 외상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이 의뢰됐다. 그 결과 혈중알코올농도 0.303%, 그리고 수면유도제 성분인 독시라민 13.02㎍/㎖가 검출됐다. 당시 경찰은 누군가 수면유도제와 술을 이용해 A씨를 살해하고, 교통사고로 위장시킨 것으로 추정했다.

그런데 어쩌다 김씨가 피의자로 지목되었을까. 김씨의 고모부가 “조카가 아버지를 수면제 먹여 살해했다고 말했다”고 경찰에 신고해 김씨가 긴급 체포된 것이다. 당시 23세의 김씨는 “수면제를 양주에 타 아버지에게 ‘간에 좋은 약’이라고 말하고 먹였고, 아버지인 A씨가 자신과 여동생을 성추행해 죽였다”고 자백했다.

수사당국은 김씨가 A씨 명의로 약 8개에 달하는 보험에 가입하고, 보험금을 타낼 목적으로 살해했다고 기소했는데, 김씨는 곧 진술을 번복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김씨는 “남동생이 아버지를 죽인 것 같다는 고모부의 말에 대신 감옥에 갈 생각으로 거짓으로 자백했다”며 “선처받으려 거짓말했을 뿐, 아버지의 성추행도 없었다”고 밝혔다. 김씨의 진술 번복에도 광주지법 해남지원은 무기징역형을 확정했다.

김씨는 교도소에 수감된 이후에도 계속 무죄를 주장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사연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경찰의 위법 수사 의혹이 불거진 게 결정적인 계기였다. 경찰의 반인권적 수사를 확인하고 재심을 청구해 2015년 재심 개시 결정, 검찰의 항고로 2018년 재심 개시가 확정됐다. 

재심에서는 자백 진술의 신빙성, 불법수집 증거, 수면제 등 검출 가능성, 범행동기 등이 쟁점이었다. 재판부는 김씨가 수사기관에서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자백한 진술조서를 부인하는 만큼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김씨는 다른 동기로 허위 자백했을 가능성도 있다”며 “김씨의 자백을 들은 친척과 경찰관들의 진술도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한 재판부는 김씨가 건넨 다량의 수면제 때문에 그의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것도 명확하지 않다고 봤으며, “(살해 동기로 지목된) 피해자의 성추행 행위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도 밝혔다. “의심스러운 점이 많지만 이러한 사정만으로 유죄를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재판부의 무죄 선고 이유다. 바로 출소한 김씨는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는 데 이렇게 수십 년이 걸릴 일인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는 소감을 밝혔다.

지난 7일에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간첩 조작 사건에 연루됐던 고(故) 한삼택씨가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되기도 했다. 이날 관보에 따르면 54년 전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한씨가 재심에서 ‘증거 없음’을 이유로 무죄 판결이 확정됐음을 서울중앙지법이 지난해 11월 15일 판결공시를 통해 알렸다.

이번에 김씨의 무죄를 밝힌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는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홀로 교도소에서 보낸 김씨의 인생을 뒤돌아보면 가슴이 아프다”며 “많이 늦었지만 앞으로 남아있는 본인의 삶과 행복을 위해 하나씩 인생을 만들어 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너무 긴 세월이 지나 뒤집힌 판결. 오래 전 사건들이 재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며 ‘무죄추정의 원칙’이 함께 주목받는 가운데, 아직 규명되지 않은 여러 진실이 조속히 밝혀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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