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심재민 기자 |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에서 의대 증원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길어지고 있는 ‘의정(醫政) 갈등’ 해소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당장 이번 주부터 '빅5'로 불리는 서울시내 대형병원 다섯 곳에 소속된 교수들이 일제히 주 1회 휴진에 들어가면서 국민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갈등 해소에 돌파구는 정녕 없는 것인지 답답함만 커지고 있는 상황. 2024년 4월 30일 뜨거운 이슈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의정(醫政) 갈등’...그 칼날의 끝은?>에 대해 팩트와 함께 살펴보자.

# 영수회담, 의정(醫政) 갈등 해소 '글쎄'

어제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첫 영수회담에서 의대 증원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의정(醫政) 갈등 해소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할 전망이다.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지난 29일 윤석열 대통령과 130분간 영수회담을 가진 이재명 대표는 의료개혁과 관련해 "의대 정원 확대와 같은 의료 개혁은 반드시 해야 할 주요 과제이기 때문에 우리 민주당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제안했던 국회 공론화특위에서 여야와 의료계가 함께 논의한다면 좋은 해법이 마련될 것 같다"고 했다.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나 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 외압 의혹 특검, 이태원 참사 특별법 등 민감한 문제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의대 증원 문제에 대해서는 '협력'을 약속한 것.

대통령실 역시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의대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같이했다고 발표했다. 이 대표의 이날 발언은 바람직한 증원 규모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정부의 증원 추진 정책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총선 전 의대 증원과 관련해 "의료 현장에서 현실적으로 수용 가능한 적정 증원 규모는 400∼500명 선이라고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민주당 '4자 협의체' 구성 제안...
민주당은 의사 집단행동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여야, 정부, 의료계가 참여하는 4자 협의체 구성을 제안하고 있지만, 의료계는 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실현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영수회담 (연합뉴스 제공)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영수회담 (연합뉴스 제공)

의료계 “NO...증원 백지화”
전공의, 의대 교수, 의협 모두 '증원 백지화'를 요구하며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 자체를 거부하는 입장에서 전혀 물러서지 않고 있다. 이들은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의 전면 백지화' 등 지난 2월 집단사직 당시 내걸었던 7대 선결 조건의 수용만을 내세우고 있다. 정부가 대학별로 증원된 의대 정원을 2025학년도에 한해 50∼100% 범위에서 자율적으로 뽑게 하겠다는 타협안을 내놓았지만, 의사들은 이마저도 거부하고 있다.

이처럼 양측이 접점을 찾기 쉽지 않은 상태다. 설상가상으로 의대 교수들이 이번주 집단 휴진, 사직 등을 예고한 가운데, 이러한 집단행동이 국가공무원법과 의료법 위반, 형법상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정부는 법률 검토를 벌이고 있다. 당장은 '대화'에 방점을 두고 있지만, 의협 등이 이에 강력한 대응 방침을 밝히면서 의정 갈등은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의정 갈등의 해소는커녕, 의대 증원의 최종 확정이 다가오면서 의사들은 집단 휴진과 사직 등 투쟁의 강도를 더욱 높이는 모습이다.

텅 빈 진료실 [연합뉴스 제공]
텅 빈 진료실 [연합뉴스 제공]

# ‘빅5’ 주 1회 휴진 돌입

'빅5'로 불리는 서울시내 대형병원 다섯 곳에 소속된 교수들은 이번 주 일제히 주 1회 휴진을 한다.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은 오늘(30일), 서울아산병원과 서울성모병원은 금요일인 내달 3일에 각각 휴진한다. 삼성서울병원 교수들은 진료와 수술이 없는 날을 골라 하루 쉬기로 했다.

각 병원 비대위 수뇌부를 중심으로 사직 움직임도 구체화하고 있다. 울산의대 교수 비대위원장인 최창민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병원을 떠난다고 밝혔으며, 분당서울대병원 소속인 서울의대 교수 비대위원장 방재승 신경외과 교수 등 4명도 내달 1일 자로 실질적 사직을 예고했다.

# 정부, ‘법률 검토’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대해 정부는 '법률 검토'에 들어가 이를 둘러싼 갈등도 커지고 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차관은 이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 후 브리핑에서 "정부로서 법적 검토를 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라며 교수들의 집단행동에 대한 법적 대응 가능성을 내비쳤다.

법률 위반이 될 수 있을까
의료계와 법조계, 정부 등에 따르면 의대 교수들의 집단 사직과 주 1회 휴진 결정을 두고 법률 위반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일부 법조계에서는 의대 교수들의 사직은 국가공무원법과 의료법 위반, 형법상 업무방해죄 등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본다. 국립대 교수는 국가공무원법을 적용받는데, 국가공무원법은 제66조에서 '공무 외 집단행동'을 금지하고 있다. 사립대 교수 역시 국가공무원법을 준용하게 돼 있어 예외가 아니다. 집단적인 휴진은 의료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하지 못하게 하는 의료법 15조 위반이 될 수 있다. 병원의 정상적인 진료 업무를 마비시키는 업무방해 행위로 여겨질 가능성도 있다.

다만 정부 안팎에서는 실제 조치가 이뤄질 가능성은 아직 낮고, 처벌보다는 '대화'에 방점을 둘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또한 물론 법조계 안에서 교수들의 사직과 휴진은 정당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처럼 법조계의 해석이 엇갈리는 가운데 의협의 움직임도 눈에 띈다.

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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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s 의협, 법률서비스 강화
의사들이 '교수들을 범죄자 취급하느냐'며 거세게 반발하는 가운데,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이러한 움직임에 대응하듯 대회원 법률 서비스를 대폭 강화하면서 전열을 정비하고 있다. 의협은 다음 달 출범하는 새 집행부에 통상 2명 수준이던 변호사 출신 법제이사를 4명으로 늘렸다. 이는 정부가 전공의에 이어 의대 교수들의 사직, 진료 축소 등 집단행동에 대한 법률 검토에 들어간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의협은 "정부가 교수님들께 동네 양아치 건달이나 할 저질 협박을 다시 입에 담을 경우 발언자와 정부에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양측의 대립이 고조하는 양상을 보이면서 의정 갈등과 의료공백은 당분간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의료계 안팎에서 제기된다.

#‘강경파’ 차기 의협 회장...“영수회담 결과는 십상시들 의견 반영된 것”

다가오는 의과대학 입학정원 증원 확정을 앞두고 차기 의사단체 회장이 '죽을 각오'로 맞서겠다며 강력한 투쟁을 시사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의 해산과 함께 '강경파' 인사인 임현택 차기 의협 회장이 본격적으로 등판한 가운데, 전국의 의대 교수들은 정기적인 '주 1회' 휴진을 선언하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는 상황.

의협 협회기 흔드는 임현택 차기 회장 [연합뉴스 제공]
의협 협회기 흔드는 임현택 차기 회장 [연합뉴스 제공]

임 당선인의 공식 임기는 내일(1일)부터로, 의협 비대위가 업무를 종료한 데 따라 이제 의협은 임 당선인 체제로 본격적으로 전환하는 분위기다. 의협은 지난 2월 초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 이후 약 3개월간 비대위 체제로 운영돼왔으며, 비대위는 전날 대의원회 총회에서 공식 해산했다. 의협의 의결기구인 대의원회 의장도 임 당선인 측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하겠다고 약속해 대정부 강경 태세에 무게가 실릴 전망이다.

앞으로 임 당선인은 대정부 투쟁 수위를 높이며 '행동'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의협이 강경파를 중심으로 투쟁에 나설 채비를 하는 가운데, 매주 1회 휴진하겠다는 의대 교수들은 정부가 '증원을 확정 발표 시' 휴진 기간이 더 늘어날 수 있음을 내비쳤다. 현재는 매주 1회 휴진이지만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것으로, 환자들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십상시”
한편, 임현택 회장 당선인은 전날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간 영수회담을 두고 "어제 영수회담 결과는 십상시들 의견이 반영된 거죠."라고 평가했다. '십상시'는 국정을 농락해 나라를 망하게 하는 이들을 비난할 때 쓰이는 비유적 표현이다. 또 평소 정부의 의료개혁을 두고 거침없는 발언으로 비판해온 노환규 전 의협 회장도 이번 영수회담을 '법조인들의 권력 만능주의' 발현이라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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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 갈등이 길어지며 국민 불안이 커지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증원’에 한목소리를 내며 확고한 자세인 가운데, 의사단체는 휴진과 사직을 불사하며 ‘반대’ 역시 팽팽히 맞서고 있어 갈등은 좀처럼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문제는 이 갈등이 ‘환자의 목숨’을 담보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양측의 진정성 있는 대화와 소통으로 조속히 갈등이 해소되고 의료 시스템 정상화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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