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심재민 기자 | 정부의 행정전산망이 연이어 마비되면서 관리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17일부터 사흘간 정부 행정전산망이 마비되면서 민원서류 발급 등에 큰 차질을 빚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데 이어, 오늘(23일)은 조달청 나라장터 전산망도 불통 현상이 발생해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2023년 11월 22일 뜨거운 이슈 <장애의 늪 : 행정 전산망(亡)...허울뿐인 ‘디지털’ 정부>에 대해 살펴보자.

#사흘간 장애의 늪에 빠진 행정전산망
행정전산망 마비 사태는 지난 17일(금) 오전 발생했다. 공무원 전용 전산망인 '새올 행정시스템'의 사용자 인증과정에 장애가 생기며 공무원 접속이 중단된 것. 현장에서 새올 시스템을 활용한 민원 서류발급이 멈춰서자 동 주민센터나 구청 민원실에서는 증명서를 발급받지 못해 발을 구르는 민원인들이 속출했다.

이어 17일 점심시간을 넘어서는 정부 온라인 민원서비스인 '정부24'까지 중단되며 온·오프라인 민원서비스가 모두 먹통이 되는 일이 벌어졌다. 우수한 인터넷 환경을 바탕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정부'로 평가받던 한국의 민원 행정 현장이 하루아침에 혼란 상태에 빠져들었다.

#늦어진 복구
먹통이 빚어지자 주무 부처인 행안부는 '새올 시스템'의 서버와 네트워크 장비가 있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하 정보관리원) 대전센터에 민·관 전문가 수십명을 투입해 복구에 나섰으나 사태 당일 서비스 재개는 이뤄지지 않았다. 행안부는 사고 당일 밤 고기동 차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지방행정전산서비스 장애 대책본부'를 구성했다. 복구 인력도 수십명에서 100여명 정도까지 늘려 시스템 정상화를 위해 부처 역량을 집중했다. 이에 18일 오전 '정부24' 서비스를 재개한 데 이어 19일 오후에는 새올 시스템 정상화를 발표하며 사흘간의 민원서비스 마비 사태가 종료됐음을 알렸다.

#그마저도...불안정
정부가 완전 정상화를 선언했던 행정전산망이 지난 22일 일시 장애로 또다시 불안정한 모습을 드러냈다. 주민등록시스템이 22일 오전 서울 일부 주민센터에서 일시 장애를 겪다가 정상화됐다. 주민등록시스템은 지자체 공무원들이 주민등록 등본 등 관련 증명서를 발급할 때 접속하는 시스템이다. 행안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45분께 서울 지역 여러 동주민센터에서 주민등록발급 업무가 약 20분간 지연됐다 복구됐다. 대구 등 지방에서도 행정 전산망이 이상을 보인다는 민원이 제기되기도 했다. 정부는 전산망 과부하에 따른 장애로 20분 만에 정상화가 됐다고 알렸으나 민원 현장에서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행정 전산망에 장애가 발생한 17일 오전 서울의 한 구청 종합민원실 내 통합민원발급기에 네트워크 장애 안내문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제공]
전국 지방자치단체 행정 전산망에 장애가 발생한 17일 오전 서울의 한 구청 종합민원실 내 통합민원발급기에 네트워크 장애 안내문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제공]

#행안부 대응에도 비판 이어져
전산망 사태를 둘러싼 행안부의 대응을 두고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행안부는 17일 오전 민원서류 발급 서비스에 장애가 발생했음에도 국민에게 신속히 알리지 않았고, 오후에야 보도자료로 대응 사실을 전하면서 비난을 자초했다. 사고 뒤로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원인이 공개됐던 과거 여타 전산사고와 달리 행안부의 사고 원인 설명이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원인을 두고 추측이 무성했던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 해킹 등 외부 소행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는데, 행안부는 해킹과 관련해서는 정황이나 흔적이 나오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두고 작년 카카오톡 먹통 사태 때처럼 재난문자로 전 국민에게 민원 서비스 중단 사실을 알렸어야 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행안부가 지자체 단체 대화방을 통해 전산망 마비 업무지침을 전파한 것을 두고도 사태의 심각성에 비춰 적절했느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행안부 관계자는 "이번 전산망 중단은 재난요건에 맞지 않아 재난문자를 보내지 않은 것으로, 서버가 불에 타 막대한 손실이 난 카톡 먹통사태 때와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단체 카톡방에 업무지침을 내린 것은 외부에 복구작업을 나간 직원들이 많아 즉시 대응 차원에서 공유하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부재’도 도마 위로
전산망이 정상화하자마자 다시 국외 출장을 떠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처신을 두고도 비판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 장관은 17일 전산망 먹통 사태가 터졌을 때 포르투갈과 미국을 순차 방문해 디지털 정부를 포함한 한국형 공공행정 등을 알리고 있었다.

그는 전산망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미국에서 잔여 일정을 취소하고서 18일 조기 귀국해 사태 수습에 집중했다. 이틀간 복구 상황을 점검하고, 20일 민원서비스가 재개되며 사태가 일단락하자 이튿날 영국 출장길에 올랐다. 윤석열 대통령의 영국 국빈 방문 일정 수행, 현지 내각부와 디지털 관련 협약 일정 등이 행안부가 밝힌 국외 출장 이유였다.

하지만 아직 전산망 마비의 구체적인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고, 지연 장애가 다시 발생할 정도로 운영이 불안한 와중에 주무부처 장관의 해외 출장은 논란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상민 장관, 행정전산망 복구 현장점검 2023.11.19 [연합뉴스 제공]
이상민 장관, 행정전산망 복구 현장점검 2023.11.19 [연합뉴스 제공]

#그나저나...장애 원인은?
'새올 시스템' 접속이 되지 않고, 정부24마저 한동안 먹통이 된 이유로는 시스템에 연결된 네트워크 장비가 장애를 일으켰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행안부에 따르면 공무원이 새올 시스템에 접속하려면 개인별 행정전자서명인증서(GPKI)을 활용해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이런 인증 시스템의 일부인 네트워크 장비에서 정보를 주고 받은 'L4 스위치'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장애 원인으로 지목된 'L4 스위치가 왜 이상을 일으켰는지' 자세한 원인 설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서보람 행안부 디지털정부실장은 "L4 장비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발견을 했는데, 그 안에 어떤 부분이 실제로 문제를 일으켰는지에 대해서는 저희가 조금 더 면밀한 조사를 거쳐서 확정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사고를 회피할 수 있는 백업 장비가 없었는지를 묻는 말에는 "장비를 이중화해서 운영을 하고 있지만 (사고) 당일에는 동일한, 이중화돼 있는 두 개의 장비가 순차적으로 계속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에 결국은 장애가 발생한 것이라고 보면 될 거 같다"고 답했다. 이어 원인 발표가 늦어진 이유를 묻는 말에 "서비스를 재개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대로 고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판단해 (원인) 발표가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번 전산망 먹통 사태는 그간 문제가 드러난 것
사흘간 마비됐던 정부 행정전산망이 지난 20일 정상화하며 민원 현장이 재가동에 들어갔지만, 초유의 전산망 먹통 사태는 그간 간과했던 다양한 문제들을 한꺼번에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완전 복구 시점까지도 전산망 먹통 원인을 정확히 내놓지 못한 것은 물론, 고장을 불러온 것으로 알려진 소프트웨어(SW) 업데이트가 굳이 평일에 이뤄진 이유도 속 시원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

특히 IT 중소업체가 주요 국가 전산시스템인 행정전산망 유지·관리를 맡게 된 배경인 '대기업 참여 제한' 제도에 대해서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모든 공공 SW사업에 대기업 참여가 이뤄질 경우 중소기업은 위축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중대한 공공 SW사업일 경우 대기업의 참여 제한을 일부 완화하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후유증 가시기도 전 ‘조달청 나라장터’ 전산망도 말썽
행정전산망 장애 후유증이 가시기도 전에 오늘은 조달청 나라장터 전산망이 말썽이었다. 해외 집중 접속에 따른 과부하로 조달청의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인 나라장터에 오류가 생겨 1시간가량 불통된 것. 23일 조달청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19분부터 10시 21분까지 행정 전산망 불통 현상을 겪었다. 이로 인해 1시간가량 나라장터 사이트가 작동하지 않아 이용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이번 장애 현상은 해외에서 집중적으로 접속하면서 발생한 과부하 때문으로 조달청은 파악하고 있다. 조달청은 장애 시간 동안 제출 마감 일시가 도래한 1천600여건의 입찰 공고를 연기하는 등 조처를 했다. 조달청 관계자는 "일반 입찰할 때 활용하는 플랫폼이 마비되면서 1시간가량 지연됐다"며 "현재 별다른 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차질이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23일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장관 대신 출석한 고기동 행안부 차관 [연합뉴스 제공]
23일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장관 대신 출석한 고기동 행안부 차관 [연합뉴스 제공]

#현안질의에서 ‘여야’ 행정안전부 질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은 23일 전체회의 현안질의에서 '행정전산망 마비' 사태와 관련해 행안위의 대응과 사전예방 시스템 부실을 이구동성으로 질타했다. 더구나 회의 도중 '조달청 나라장터' 전산망이 1시간 동안 마비됐다는 소식까지 더해지면서 비판 수위는 더 거세졌다.

해외 출장 중인 이상민 행안부 장관을 대신해 참석한 고기동 차관은 잇따른 행정전산망 먹통에 거듭 사과하는 한편 재발방지책 마련을 약속했다.

#허울뿐인 ‘디지털’ 정부가 아닌 내실 갖춰야
이번 먹통 사태는 정부가 대대적으로 알려온 디지털 정부 관련 행사를 앞두고 벌어진 일이다. 23∼25일 부산 벡스코에서 '정부 혁신, 디지털플랫폼정부와 함께'라는 슬로건으로 열리는 2023 대한민국 정부 박람회'는 윤석열 정부의 혁신성과와 디지털플랫폼정부로 달라질 대한민국 미래상을 제시하는 자리다.

디지털 정부 성과를 대내외에 홍보하는 행사를 앞두고 디지털 행정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행정전산망이 흔들리는 상황이 반복하면서 행사 취지가 퇴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람회에서는 100개에 가까운 정부와 민간 기관들이 '편리한 서비스', '똑똑한 정부', '안전한 사회'를 주제로 전시관을 연다. 전시관 주제를 놓고 보면 일련의 전산망 사태가 가져온 답답한 상황과 크게 대조적일 수밖에 없기에 '정부 업무의 전면 디지털화'가 바람직한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또 디지털의 안정성 및 보안이라는 기본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오히려 국민 생활에 해를 끼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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