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 매각을 둘러싼 론스타와 한국 정부의 국제투자분쟁(ISDS)이 13년 만에 ‘정부 완승’으로 뒤바뀌면서 다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2022년 한국 정부가 배상해야 한다고 판정했던 ICSID가 스스로 판정을 취소하면서 정부의 부담은 전액 사라졌고, 오히려 소송 비용 73억 원을 론스타에 돌려받게 됐다. 단순한 소송 결과 뒤집기를 넘어, 금융감독 권한과 국제중재 절차, 그리고 정권 교체기에도 유지된 국가 대응 전략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묻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25년 11월 20일 <이슈체크>에서 이번 판정이 왜 중요한지, 핵심 쟁점들을 중심으로 짚어본다.

# ICSID는 왜 2022년 판정을 스스로 취소했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취소위원회는 현지시간 11월 18일 미국 워싱턴DC에서 2022년 중재판정부가 내린 론스타 승소 판정을 공식적으로 취소했다. 이번 결정으로 한국 정부에 부과됐던 배상 의무는 전부 소멸했고, 사건의 핵심 쟁점은 ‘왜 기존 판정이 뒤집혔는가’로 옮겨갔다.

취소 판단의 중심에는 ‘적법절차 위반’이 있었다. 취소위원회는 기존 중재판정부가 한국 정부가 당사자가 아니었던 하나금융–론스타 간 ICC 상사중재 판정문을 주요 증거로 채택한 사실을 문제 삼았다. 한국 정부가 해당 절차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반박하거나 반대신문할 권리가 보장되지 않았고, 이는 ICSID 협약이 요구하는 절차 규칙을 중대하게 침해한 것으로 판단됐다.

이 판단에 따라 금융위원회의 위법 행위 인정, 국가 책임 판단, 인과관계 인정, 손해액 산정 등 기존 판정의 논리적 기반이 연쇄적으로 무너졌다. 결국 중재판정부의 배상 명령 전체가 효력을 잃었고, 한국 정부는 배상금 ‘0원’과 함께 취소 절차에서 발생한 소송 비용 약 73억 원을 론스타로부터 돌려받게 됐다.

서울 을지로2가 외환은행 본점 [연합뉴스 제공]
서울 을지로2가 외환은행 본점 [연합뉴스 제공]

# 20년 갈등의 출발…외환은행 인수부터 불거진 논란

론스타와 한국 정부의 갈등은 2003년 외환은행 인수에서 시작됐다. 당시 외환은행은 외환위기 이후 경영난과 외환카드 적자 등으로 자본 확충이 시급했고, 2대 주주였던 코메르츠방크가 증자를 포기하면서 매각을 추진했다. 론스타가 이를 인수했지만, 일본 내 골프장·예식장 등 산업자본 계열회사를 보유한 론스타가 은행을 인수할 자격이 있느냐는 논란이 즉각 제기됐다.

금융당국은 외환은행의 BIS 비율이 8% 아래로 떨어진 점을 들어 ‘부실 금융기관 정리’ 예외 조항을 적용해 인수를 승인했으나, 이후 BIS 비율이 고의로 낮게 보고됐다는 의혹이 시민단체를 통해 제기됐다. 감사원 감사, 검찰 수사, 법적 공방이 이어졌고, 외환은행 매각은 이후에도 ‘승인 지연’, ‘헐값 매각 논란’ 등 논쟁의 중심에 놓이게 됐다.

2012년 론스타는 HSBC에 더 높은 가격으로 매각할 기회를 정부 개입으로 잃었다며 ISDS를 제기했고, 청구액은 약 46억 달러, 우리 돈 6조 원대에 달했다. 이때부터 13년간의 국제소송이 시작됐다.

정홍식 법무부 국제법무국장이 19일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론스타 ISDS 취소 결정 선고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5.11.19 [연합뉴스 제공]
정홍식 법무부 국제법무국장이 19일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론스타 ISDS 취소 결정 선고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5.11.19 [연합뉴스 제공]

‘13년’ ISDS는 어떻게 흘러갔나
ICSID는 2012년 사건을 등록한 뒤 수년간 서면 공방과 대규모 심리를 이어갔다. 양측이 제출한 증거는 1천500건이 넘었고, 증인·전문가 진술서도 90여 건에 달했다. 워싱턴DC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네 차례 심리가 열렸고, 2020년에는 의장중재인이 교체되면서 화상 심리가 진행되기도 했다.

그 결과 2022년 중재판정부는 한국 정부가 금융위 승인 지연으로 론스타에 손해를 끼쳤다고 판단하고 2억1천만 달러 배상 판정을 내렸다. 비록 론스타 청구액의 4.6%만 인정된 것이었지만, 정부 배상 책임이 발생한 사실 자체는 부담으로 남았다.

이 판정 이후 론스타는 배상액이 충분하지 않다며 취소 신청을 제기했고, 한국 정부도 중재판정부의 월권 및 절차 위반을 이유로 취소와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이 ‘2라운드’ 소송이 이번 취소 판정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 론스타 “새로운 중재 다시 원한다”…실제 가능성은?

론스타는 취소 결정 직후 “새로운 재판부에서 다시 판단받고 싶다”며 2차 중재 제기 가능성을 열어놨다. 그러나 실제 제기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이미 정부가 2022년 판정에서 95.4% 부분에서 승소한 만큼 이 부분에는 기판력이 발생해 다시 다툴 수 없고, 론스타가 제기할 수 있는 범위는 취소된 4.6% 구간으로 제한된다. 새로운 중재를 진행하더라도 배상 규모는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고, 장기간 소송과 막대한 비용이 다시 발생한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취소위원회가 론스타에 73억 원의 소송 비용을 지급하라는 명령을 내린 만큼, 론스타가 다시 중재에 나설 동력이 크지 않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론스타 국제투자분쟁(ISDS) 취소 신청'과 관련해 긴급 브리핑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브리핑을 통해 론스타 ISDS 취소 절차를 심리하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취소위원회로부터 '대한민국 승소' 결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2025.11.18 [연합뉴스 제공]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론스타 국제투자분쟁(ISDS) 취소 신청'과 관련해 긴급 브리핑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브리핑을 통해 론스타 ISDS 취소 절차를 심리하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취소위원회로부터 '대한민국 승소' 결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2025.11.18 [연합뉴스 제공]

# 승소 이후 정치권에서는 ‘공로 논쟁’

승소 발표 직후 정치권에서는 공로를 둘러싼 논쟁이 이어졌다. 대통령실은 승소를 “범부처 공무원들의 일관된 대응이 만든 결과”라고 평가하며 특정 인물의 공로로 돌리는 해석을 경계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현 정부의 대외 성과”라고 평가했고, 반대로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은 자신이 장관 재직 시 취소 신청을 결정한 점을 강조하며 “현 정부가 뒤늦게 숟가락 얹기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취소 신청 결정을 내린 한 장관의 판단은 잘한 일”이라고 인정하는 한편, “실제 소송의 상당 부분은 정치적 혼란기에도 흔들리지 않은 실무자들의 대응으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김민석 국무총리도 20일 “정치적으로 시비할 일이 아니다”라며 공로 논쟁을 진화하는 데 나섰고, 실무를 담당한 법무부·외교부·금융위 공무원들의 노고를 강조했다. 결국 정치적 공방은 있었지만, 긴 소송 기간 동안 정부 실무진의 전략과 대응이 일관되게 유지됐다는 점은 여야 공통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 법조계의 평가

이번 판정에 대해 국제중재 전문가들은 “취소 인용률이 1.6%에 불과한 ICSID에서 전면 취소가 나온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결정”이라고 평가한다. 대리인을 맡았던 김갑유 변호사는 “정부가 ICC 판정문에 대해 반론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점이 가장 큰 문제였으며, 적법절차 원칙이 인정됐다는 점이 이번 결과를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여러 차례 정권이 바뀌었지만 정부가 일관된 의사결정을 유지했다는 점이 오히려 국제적으로 신뢰를 얻는 요소로 작용했다”고도 평가했다. 아울러, 국제중재 변호사들은 “중재 절차의 공정성을 확인한 선례”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번 취소 판정의 의미
이번 ICSID 취소 결정은 세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금융감독 당국의 결정이 국제적으로 위법하지 않았다는 점이 재확인됐고, 국제중재 절차에서 ‘적법절차 원칙’이 더욱 강조되는 계기가 됐다. 또한 정권 교체와 정치적 혼란기 속에서도 정부 조직이 유지한 일관된 대응 체계가 국제적 판단에서 신뢰를 얻었다는 점도 드러났다. 취소 인용률이 극히 낮은 ICSID 절차에서 배상 책임 전체가 무효가 된 사례라는 점에서 국제중재계에서도 “이례적 판정”이라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왼쪽)가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론스타 국제투자분쟁(ISDS) 취소 신청'과 관련해 긴급 브리핑하고 있다. 오른쪽 뒤는 정성호 법무부 장관. 정부는 이날 론스타 ISDS 취소 절차를 심리하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취소위원회로부터 '대한민국 승소' 결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2025.11.18 [연합뉴스 제공]
김민석 국무총리(왼쪽)가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론스타 국제투자분쟁(ISDS) 취소 신청'과 관련해 긴급 브리핑하고 있다. 오른쪽 뒤는 정성호 법무부 장관. 정부는 이날 론스타 ISDS 취소 절차를 심리하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취소위원회로부터 '대한민국 승소' 결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2025.11.18 [연합뉴스 제공]

# ‘승소’ 그러나, 리스크는 남았다…진행 중인 ISDS 6건

론스타와의 분쟁은 마무리됐지만,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ISDS는 여전히 6건이 진행 중이다. 엘리엇과 메이슨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주장하며 제기한 소송, 이란 다야니 가문의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 계약금 반환 사건, 스위스 승강기 업체 쉰들러의 현대엘리베이터 유상증자 사건, 중국·미국 투자자 분쟁 등이다. 일부 사건에서는 정부가 부분 패소했고, 취소 절차가 진행 중인 사건도 남아 있다. 이번 승소가 향후 절차 대응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국제분쟁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론스타와의 13년 국제소송은 ‘배상금 0원’이라는 결말과 함께 마침표를 찍었지만, 이 사건이 남긴 쟁점은 단순히 과거의 논란을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금융감독 권한을 둘러싼 기준, 국제중재 절차의 투명성, 국가의 장기적 분쟁 대응 능력은 앞으로도 반복될 문제다. 남아 있는 ISDS 사건 역시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보다 일관된 전략과 절차적 엄정성을 갖추어 대응할 필요가 있다. 긴 시간이 걸렸던 이번 사건은 결국 한 나라의 시스템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작동하느냐가 국제 분쟁에서 어떤 힘을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로 남게 된다.

 

시선뉴스=심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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