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화폐를 들여다보면 각국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정신, 그리고 인물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100달러에는 벤자민 프랭클린, 인도의 루피화에는 마하트마 간디, 영국 파운드화에는 오랫동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초상이 자리해왔다.

이처럼 화폐는 단순한 지불 수단을 넘어, 그 나라가 존경하고 기억하고 싶은 인물과 유산을 담는 문화적 상징물인 셈이다. 대한민국 역시 마찬가지다. 1,000원부터 50,000원권까지, 우리 지폐 속 인물들은 철학, 정치, 교육,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대를 이끌었던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또한 이들 각각의 뒷면에는 그들의 사상과 업적을 상징하는 공간과 예술작품이 함께 새겨져 있어 그 의미를 더한다.

1,000원권_퇴계 이황 (1501–1570)
퇴계 이황은 1501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학문적 재능을 드러냈다. 조선 중기의 대표적 성리학자이자 사림파의 정신적 지주로 활동한 그는 『성학십도』를 통해 임금에게 도덕과 유학의 정수를 직접 가르치려 했다. 또한 도산서당을 세우고 후학을 양성하며 교육자로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그는 조선 성리학을 체계화하고, 도덕과 인격을 중심으로 한 철학적 기틀을 확립했다. 퇴계의 학문은 일본 유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인격교육과 정신수양의 상징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정신을 담아 1,000원권 앞면에는 퇴계 이황의 초상이, 뒷면에는 그가 설립한 도산서원이 함께 수록되었다.

5,000원권_율곡 이이 (1536–1584)
율곡 이이는 1536년 강릉에서 태어나 13세에 시를 지었고, 29세까지 과거 시험에서 아홉 차례나 장원급제했다. 그는 조선의 현실을 직시하며 국방, 행정, 조세 등 전 분야의 개혁안을 제시한 실용주의 유학자였다.

『성학집요』, 『동호문답』, 『만언봉사』 등의 저서를 통해 임금 교육과 정치 제도의 정비를 촉구했다. 특히 그는 10만 양병설을 주장하며 왜란을 예견했고, 조선의 국방 체계를 준비해야 한다는 현실적 주장을 펼쳤다. 실천적 지식인의 모범으로 평가받는 그는 5,000원권의 인물로 선정되었으며, 뒷면에는 그의 생가인 강릉 오죽헌과 어머니 신사임당의 '초충도'가 함께 새겨져 있다. 이는 그의 인생이 예술과 교육, 정치와 철학이 어우러진 것이었음을 상징한다.

10,000원권_세종대왕 (1397–1450)
세종대왕은 조선 제4대 왕으로, 백성을 위한 정치를 실현한 위대한 민본주의 군주였다. 그는 훈민정음을 창제해 백성들이 스스로 읽고 쓸 수 있게 하였고, 집현전을 운영하여 학자들의 연구를 지원했으며, 『농사직설』, 『용비어천가』 등 다방면의 문화·과학 서적을 편찬했다. 또한 측우기, 해시계, 혼천의 등 과학기술의 발전에도 앞장섰다.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는 단순한 문자 개발을 넘어, 세계 문자사에서 유례없는 혁신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국민 모두가 읽고 쓸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지극히 현실적이고 따뜻한 군주였다. 10,000원권 앞면에는 그의 초상이, 뒷면에는 혼천의와 천상열차분야지도가 함께 담겨 있어 그의 과학적 통치철학과 천문에 대한 깊은 관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50,000원권_신사임당 (1504–1551)
신사임당은 1504년 강릉에서 태어나 시, 글씨, 그림, 자수 등 다양한 예술분야에서 재능을 드러낸 여성 지식인이었다. 그녀는 조선 중기 여성으로는 드물게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했으며, 초충도, 산수화, 묵포도도 등 수많은 걸작을 남겼다. 또한 아들 율곡 이이를 훌륭히 교육하며 '현모양처'의 전형을 형성했다.

신사임당은 단순히 교육적인 어머니상이 아니라, 자립적이고 창의적인 여성 지식인의 상징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그녀는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제한되었던 시대에도 예술과 교육을 통해 영향력을 발휘한 인물이었다. 50,000원권 앞면에는 그녀의 초상이, 뒷면에는 월매도(매화도)**와 묵포도도가 함께 실려 있어 여성의 예술성과 감성을 화폐에 담은 상징이 되었다.

이처럼 화폐는 단순한 거래 수단을 넘어 우리가 존경하는 가치와 인물을 되새기는 거울이다. 지금의 지폐 속 얼굴들이 그렇듯, 앞으로의 화폐에는 어떤 인물이 또 어떤 정신이 담길까? 

시선뉴스=심재민 기자 / 디자인=김선희 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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