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양원민 기자 / 디자인=김선희 proㅣ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이 갑작스레 선포한 ‘비상계엄’. 이와 함께 발표된 포고령 제1호에 담긴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항목에 국민들은 경악하며 ‘메신저 이민’을 택했다.

‘메신저 이민’은 메신저 이용자들이 국가기관의 감청권(사이버 검열)이 미치지 않는 해외에 서버를 둔 서비스로 옮겨가거나 우회 접속 가능한 가상사설망(VPN)을 통해 개인 정보 유출 방지와 자유를 추구하는 행위를 말한다. 일종의 ‘사이버 망명’(디지털 망명)인 셈이다.

이날 ‘메신저 이민’이 격화한 가장 큰 이유는 온라인 소통이 중단될 수 있다는 공포가 확산하면서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한 시간 뒤인 3일 밤 11시엔 네이버·다음카페가 먹통이 되며 계엄사가 시위선동을 막기 위해 포털을 검열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과 괴담이 난무했다. 아울러 카카오톡에서 ‘계엄’ 등 일부 단어가 포함된 메시지를 전송하면 계정이 정지된다는 가짜뉴스까지 돌면서 혼란이 커졌다. 

이에 4일 엑스(X·옛 트위터)의 ‘실시간 트렌드’에 따르면 비상계엄과 관련된 트윗은 80만개가 넘었고, ‘텔레그램 깔아라’, ‘새벽 동안 지인들이 텔레그램 가입했다는 알림이 엄청 쌓였다’ 등 ‘메신저 이민’과 관련된 글들도 쏟아졌다.

다만, 네이버와 다음의 먹통은 이용자 폭증으로 인한 오류였다. 네이버와 카카오 모두 계엄사로부터 받은 통제요청도 없었다고 입장을 밝혔다. 네이버는 “트래픽 급증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시적인 장애”라며 “서비스 안정화를 위해 4일 0시30분부터 2시까지 총 90분간 긴급점검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카카오도 “개인 대화방에서 나누는 대화를 제재할 방법이 없다”라며 선을 그었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언제라도 표현의 자유가 억압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꼈고, ‘메신저 이민’은 가을 낙엽에 불이 번지듯 확산했다. 실제로 이날 저녁을 기점으로 해외 메신저 서비스인 ‘텔레그램’과 우회 접속이 가능한 VPN 앱 설치 횟수가 급증하기도 했다. 4일 오전 1시 30분 당시 한국 애플 앱스토어에서는 VPN 앱인 닌자VPN은 3위, 유니콘 HTTPS는 12위, 노드VPN은 22위로 떠올랐다.

VPN이란 PC·스마트폰 등 이용자 단말이 ‘VPN 서버’에 접속하면, 그 서버가 인터넷이나 기업·기관 내부망으로의 통신을 중계하는 연결 방식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웹사이트에 접속하려면 ‘사용자-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웹사이트’ 구조로 연결되는데, VPN을 이용하면 ‘이용자-ISP-VPN 서버-웹사이트’로 바뀌어 국내 ISP가 이용자를 제재하기 어려워진다.

이러한 메신저 이민은 사실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4년 9월 15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고 말하자 검찰 및 경찰은 당해 10월부터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을 차단하기 위해 인터넷 및 SNS를 감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다음카카오가 서비스하는 메신저 카카오톡의 일부 사용자들이 정부의 검열을 피해 텔레그램으로 이동하는 메신저 이민 현상이 나타난 바 있다.

한편, 전문가들은 계엄법에 관련 근거가 부족해 전국 통신망 차단 등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평가한다. 계엄법 제9조는 체포·구금·압수·수색·거주·이전·언론·출판·집회·결사 또는 단체행동에 대한 계엄사령관의 특별조치권만 명시했을 뿐 통신에 대한 언급은 없다. 

다만 일부 접속차단이나 감청 가능성은 남아있다. 이와 관련해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 교수는 “특정 사이트 접속을 막거나 정치인 등 일부 인물의 통화를 감청 또는 회선 자체를 차단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계엄법이 아닌 전기통신사업법으로 통신망 등이 차단될 수도 있다. 전기통신사업법 제85조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전시·사변·천재지변이나 국가비상사태, 그 밖의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경우 전기통신 업무 제한이나 정지를 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정상 중앙대 커뮤니케이션대 겸임교수는 “VPN을 사용한 각종 사이트의 우회 접속, 정보 전달까지 막으려면 물리적으로 통신망을 막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도 했다. 통신망을 끊는다면 VPN이나 해외 메신저도 무용지물이 되는 셈이다.

시대착오적인 비상계엄 사태에 국민들은 분노하며 이를 저지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비상계엄 선포와 동시에 국회 앞에는 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몰려들었고, 메신저 이민을 통해 상황을 공유하고자 했으며, 나아가 책임을 엄중히 묻는 시위들이 지속되고 있다. 민생은 뒷전으로 두고 정쟁만 치러온 국회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각성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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