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심재민 기자, 디자인=김선희 pro | '미지의 왕국' 혹은 '사라진 역사'로 불려온 ‘가야’. 그 비밀스러운 유서(由緖)를 깊이 간직하고 있는 ‘가야고분군(Gaya Tumuli)’이 지난 9월 17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기원 전후부터 562년까지 낙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작은 나라의 총칭으로 금관·아라·대가야 등이 잘 알려져 있다. 가야는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존재했지만 남아있는 기록이 많지 않아서, 역사를 공부할 때 쉽지 않은 주제로 꼽혀 왔다. 실제로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에는 가야에 관한 기록이 다른 나라보다 현저히 적게 남아 있으며, 그마저도 단편적이거나 일부에 그치는 사례가 많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 가야는 주변에 있는 여러 작은 나라 중 하나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가야 유적에서 출토되는 각종 유물을 조사한 성과가 쌓이면서 가야의 존재가 서서히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가야의 옛 무덤, 즉 고분이 있었다. 가야 고분은 '잃어버린 역사', '잊힌 왕국'이라 일컬어지던 가야의 역사·문화를 드러내는 보고이자 '타임캡슐'이다. 때문에 가야 고분 유적 7곳을 묶은 '가야고분군'(Gaya Tumuli)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세계에서도 가야의 위상을 인정받은 것이라 의미가 남다르다. 

한국 16번째 세계 유산이 된 ‘가야고분군’은 1∼6세기 중엽에 걸쳐 경남 김해 대성동·함안 말이산·창녕 교동과 송현동·고성 송학동·합천 옥전과 경북 고령 지산동, 전북 남원 유곡리에 존재했던 고분군 7곳을 하나로 묶은 연속 유산이다. 가야의 역사와 문화는 물론, 강력한 중앙집권화를 이룬 주변 다른 동아시아 국가와 공존하면서도, 정치적으로 연맹 체계를 유지했던 독특한 동아시아 고대 문명을 잘 보여주기에 가치가 높다. 

우리나라에는 가야와 관련한 고분군이 780여 곳에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각 무덤은 대가야가 멸망하는 562년까지 꾸준히 조성돼 왔으며, 그 숫자가 수십만 기에 이른다. 그 중 가야고분군은 '사라진' 가야 문명을 복원할 수 있는 주요한 유적이다. 무덤은 시대에 따라 형태나 조성 방식이 조금씩 달라지는데 그 안에 매장된 다양한 유물을 통해 당시 신분 질서와 사회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때문에 가야고분군 7곳의 특징과 주요 출토 유물 등에 관심이 상당하다. 

- 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군
5∼6세기 가야 북부 지역을 통합하면서 성장한 대가야를 대표하는 고분군으로, 연맹의 중심 세력으로서 대가야의 위상과 가야 연맹이 최전성기에 이르렀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유적이다. 가야 사회의 계층구조와 대내외 문물 교류를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고분군이다. 백제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 그릇, 일본 오키나와(沖繩) 산 야광 조개로 만든 국자 등은 당시 대가야의 활발한 대외 교류 관계를 보여주는 유물로 평가받는다. 

- 경남 함안 말이산 고분군
아라가야의 왕과 귀족 무덤이 조성된 고분군으로, 말이산(末伊山)은 '머리'와 '산'을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우두머리의 산'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 고분군은 일제강점기 때 처음 조사했는데, 당시 봉토(封土·흙을 쌓아 올린 부분) 지름이 39.3m, 높이가 9.7m에 이르는 무덤이 확인돼 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여러 출토 유물 가운데 말이산 45호분에서 나온 상형 도기 세트는 지난해 10월 보물로 지정된 유물로 여러 점이 세트를 이뤄 출토된 데다 가야인의 독특한 문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 경남 김해 대성동 고분군
1∼5세기 가야 연맹을 구성했던 금관가야의 문화를 보여주는 고분 유적이다. 조사 결과 당시 지배집단이 묻혔으며 고인돌, 널무덤, 덧널무덤 등 여러 형태의 무덤이 확인됐다. 대성동 고분 일대에서는 토기류와 철기류, 중국제 거울 등이 출토됐다. 특히 중국에서 들여온 청동거울, 북방에서 수입한 청동 솥 등은 당시 이 지역에서 활동했던 정치체가 중국, 가야, 일본 열도로 이어진 국제 교역에서 활발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 경남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창녕 일대에 분포한 고분군으로, 비화가야 최고 지배자 묘역으로 추정된다. 100기가 넘는 무덤이 확인되며 출토 유물과 구조 양상을 볼 때 5∼6세기가 중심 연대일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5세기 후반부터 6세기 전반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63호분은 그동안 도굴의 피해를 보지 않아 무덤 축조 방식과 유물을 부장하는 양상이 온전하게 확인된 주요한 무덤이다. 이곳에서는 금동관, 구슬 목걸이, 은 허리띠 등 화려한 장신구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

- 경남 고성 송학동 고분군
5세기부터 가야 연맹의 유력한 해상 세력으로 떠오른 소가야 왕과 지배층의 무덤이다. 전체적인 무덤 숫자는 적은 편이나, 무덤을 군집해서 조성해 온 가야 연맹의 특성을 보여준다. 무덤에서는 소가야식 토기뿐 아니라 토기, 마구 등 교역품으로 쓰였을 유물이 다양하게 발견됐다.
학계에서는 백제와 가야, 일본 열도를 잇는 해양 교역의 창구였던 소가야의 특색이 잘 드러나는 유적으로 보기도 한다. 

- 합천 옥전 고분군
낙동강의 한 지류인 황강변 구릉에 있는 4∼6세기 전반의 가야 고분군이다. 무덤이 총 1천여 기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며, 토기류, 철제 무기류, 갑옷 마구류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고, 특히 화려한 장식의 귀고리, 목걸이 등이 나와 주목받기도 했다.

- 전북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가야의 서쪽 영역과 그 범위를 엿볼 수 있는 유적으로, 운봉고원의 가야 정치체를 대표하는 고분이다. 전북 지역에 있는 가야 고분군 중에서는 규모가 매우 큰 편으로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무덤에서는 가야뿐 아니라 백제의 흔적도 곳곳에 묻어있다. 특히 토착 세력, 가야, 백제의 특징을 보여주는 유물이 함께 출토돼 5∼6세기 전북 동부 지역의 고대사와 고대문화 연구에 있어 중요한 유적으로 꼽힌다. 호남 지역의 가야 유적으로서는 처음 사적으로 지정됐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가야고분군. 이로써 전 세계적으로 가야 문명의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상당하다. 앞으로 각 지자체는 정부와 긴밀히 협력해 세계 유산적 가치 보존과 관리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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