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0개월 가까이 이어진 무역전쟁의 확전을 멈추며 ‘휴전’에 합의했다. 관세 인하와 일부 조치의 유예가 병행되면서 긴장 수위는 낮아졌지만, 갈등의 기반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번 협상에서 주목받은 것은 ‘펜타닐 관세’다. 합성마약 단속을 명분으로 통상 보복이 이뤄지는, 전통적 무역 논리를 벗어난 새로운 유형의 경제 갈등이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펜타닐 관세(Fentanyl Tariff)’는 미국이 중국의 합성마약 펜타닐과 그 원료의 대미 유입 차단이 미흡하다고 보고 부과한 정치적 성격의 관세를 뜻한다. 즉, 무역수지 조정이나 산업 보호가 아니라 마약 단속 협력 여부를 근거로 한 비전통적 관세라는 점에서 기존 정책과 결이 다르다.

맥락은 이렇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1월 취임 직후 중국의 단속이 불충분하다고 판단해 중국산 수입품 전반에 20%의 ‘펜타닐 관세’를 매겼다. 이에 중국이 닭고기·대두·수산물 등 주요 품목에 10~15% 보복관세로 대응하면서 양국 평균 관세율은 한때 100%를 넘어섰다. 갈등은 곧 무역을 넘어 외교·안보 영역으로 번졌고, 기술 통제와 희토류 수출 제한이 포개지며 ‘경제전쟁’의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전환점은 지난 10월 30일 부산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펜타닐 원료 밀수출 단속 강화 약속을 받아내고 ‘펜타닐 관세’를 20%에서 10%로 낮추기로 하면서, 양국은 상호 24% 관세 부과를 1년간 유예하는 데 합의했다. 중국은 이에 호응해 희토류 설비·기술 수출 통제 강화 조치의 시행을 1년 유예하고, 미국산 농산물 구매를 재개하기로 했다. 더불어 해운·조선·물류 분야 조사와 보복 조치도 함께 멈추며 확전 방지는 확인됐다.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약속을 성실히 이행하면 남은 10% 관세도 폐지할 수 있다”고 밝혀, 관세 추가 완화를 단속 이행과 연동시키는 조건을 남겼다.
그럼에도 합의의 성격을 과대평가하기는 어렵다. 트럼프 1기 무역전쟁 당시 수세적이던 중국이 이번에는 희토류와 기술 통제, 농산물 카드 등을 앞세워 대등한 협상력을 보였다는 평가가 나오는 한편, 관세 수준 자체는 여전히 높다.
블룸버그통신이 “트럼프의 첫 임기 이후 중국의 체력이 강해졌음을 보여줬다”고 해석하고, 파이낸셜타임스가 “중국이 미국과 동등한 경제 초강대국임을 입증했다”고 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기업 현장으로 시선을 옮기면 분위기는 다르다. 관세율이 낮아졌다 해도 평균 47% 수준이 유지되고, 중국의 대미 수출은 1~9월 기준 전년 대비 17% 감소했다. 이미 다년간 진행된 공급망 다변화도 되돌리기 어렵다. 베트남·인도·멕시코 등으로 생산거점을 이전하려는 움직임은 “휴전”과 무관하게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진단이다.
기술·자원 분야의 충돌도 휴전으로 봉합되지는 않았다. 중국은 희토류 금속 수출 통제의 시행을 1년 미뤘지만, 필요시 언제든 강도를 높일 여지를 남겨뒀다. 반대편에서 미국은 중국 기업을 상무부 블랙리스트로 관리하고 있으며, 자회사 확대 적용의 유예 역시 잠정적 성격에 머문다. 인공지능 반도체와 양자컴퓨팅 등 전략 기술을 둘러싼 경쟁 또한 당분간 완화될 조짐이 없다. 요컨대 합의는 숨 고르기일 뿐, 구조적 대립을 바꾸지는 못했다.
결국 ‘펜타닐 관세’는 마약 단속이라는 비경제적 이슈가 무역정책의 근거로 직결된 상징적 사례다. 경제의 언어로 표현된 정치의 문장, 그것이 이번 관세의 본질이다. 무역의 기준이 이익에서 가치로, 산업의 논리가 안보와 윤리로 이동하는 국면에서 ‘펜타닐 관세’는 그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일 것이다.
시선뉴스=심재민 기자 / 디자인=김선희 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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