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2009년부터 매년 이듬해의 소비 흐름을 분석해 <트렌드 코리아>를 발간해왔다. 최근 출간된 <트렌드 코리아 2026>은 다가오는 2026년 ‘붉은 말의 해’를 맞아 ‘호스 파워(Horse Power)’라는 키워드로 10대 소비 트렌드를 제시했다. 그중 ‘P’를 담당하는 ‘픽셀라이프(Pixelated Life)’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상징한다.

‘픽셀라이프’란 디지털 화면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 ‘픽셀(pixel)’처럼, 삶을 작고 세밀한 단위로 쪼개어 경험하는 트렌드를 말한다. 즉, 하나의 거대한 유행을 따라가기보다 짧고 다양하며 순간적인 경험을 중시하는 방식이다. 이 트렌드에서 소비자는 큰 흐름의 유행이 아닌 수많은 ‘픽셀 트렌드’를 짧게 즐긴 다음 빠르게 다음으로 넘어간다.

픽셀라이프의 세 가지 속성은 ‘작다’, ‘많다’, ‘빠르다’로 요약된다.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거대한 하나보다 작고 확실한 만족을 원한다. 음식·콘텐츠·여가 등에서도 ‘한 번에 많이’보다 ‘조금씩 자주’가 대세가 됐다. 대용량 대신 미니 사이즈 화장품을 여러 개 사는 소비, 짧은 영상으로 끝나는 숏폼 콘텐츠, 한 시즌만 열리는 팝업스토어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흐름의 배경에는 넘쳐나는 정보와 제품, 선택의 자유가 있다. SNS를 통해 수많은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접하는 시대에 소비자는 더 이상 하나의 브랜드에 충성하지 않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오히려 새로운 경험을 포기하는 것이 ‘기회비용의 낭비’로 여겨진다. 

산업계 역시 이에 맞춰 진화하고 있다. 제품을 완벽하게 완성해 출시하기보다 ‘최소 기능 제품’을 먼저 선보이고, 시장 반응을 실시간으로 반영하는 ‘영원한 베타(permanent beta)’ 전략을 가져가고 있다. 작고 다양한 시도, 빠른 업데이트까지 경쟁력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이 같은 트렌드는 양날의 검이다. 콘텐츠의 수명이 짧아지면서 브랜드 충성도는 급격히 낮아지고, 소비자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찾느라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경험의 다양성이 오히려 몰입의 결핍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기에 이러한 흐름 속 ‘많은 경험’보다 ‘나에게 의미 있는 경험’을 찾아내는 능력이 더욱 부상하고 있다.

하나의 픽셀은 한 가지의 색만을 표현하며, 그러한 픽셀들이 모여야 비로소 완전한 화면이 완성된다. 픽셀라이프는 작고, 많고, 빠른 시대의 생존 전략이지만, 동시에 그 속에서도 자신만의 색을 찾아야만 자신이 원하는 화면을 그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시선뉴스=양원민 기자 / 디자인=김선희 pro

SNS 기사보내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