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심재민 기자 | 매년 6월 26일은 ‘마약퇴치의 날’이다. 우리나라의 마약과의 전쟁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마약소굴이 되어 버린 미국의 필라델피아의 모습이 각종 매체에 등장하면서,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이미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미국은 지난해 마약 퇴치를 위해 500억 달러, 50조 원의 기금을 마련했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처럼 마약은 삽시간에 도처로 퍼져 중독되기 때문에 무서운 범죄다. 이에 애초에 마약이 퍼지지 않기 위해 정부 당국의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데, 이에 입각해 매년 6월 26일을 ‘마약퇴치의 날’을 법정기념일로 지정해 경각심을 높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의 마약과의 전쟁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먼저 해방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에 가장 먼저 유입되어 남용된 마약은 ‘아편’이다. 시기는 구한말로 추정되며 중국인 ‘양대인’이라는 자가 퍼트린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일제강점기 세계대전 영향으로 아편 가격이 급등하자 몰래 ‘양귀비’를 재배하는 이들이 생겨났고, 이를 막기 위해 조선총독부는 1912년~1914년에 걸쳐 아편 단속법령을 공포, 재배자 및 사용자를 단속하기 시작했다.

이후 1945년부터 1950년대에 걸친 해방 후 만주 등에서 귀환한 동포 중 아편 중독자가 많았다. 하지만 한국전쟁까지 터지면서 정치행정 기능을 상실하고 사회질서는 더욱 교란되면서 사실상 마약의 생산, 사용, 유통을 통제하는 정책이 실행되지 못했다.

그러다 1960년대 들어 5.16군사정부는 마약 근절을 위해 1961년에 특정범죄가중처벌에 관한 임시법에 ‘마약사범’에 대한 가중처벌을 둬 강력한 단속을 실시했다. 하지만 실효성은 없었고 오히려 마약사범은 증가해 1963년부터 합성 마약인 메사돈이 널리 남용되어 마약사범은 증가했다. 특히 1965년에는 마약중독자가 35,000여명에 달하기도 했다.

이에 정부는 마약은 국가경제 발전에도 피해를 끼친다고 판단해, 1965년부터 대대적인 단속을 시작해 1967년부터는 마약사범이 감소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후 1970년대부터는 ‘대마초’가 젊은층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마땅한 단속 법규가 없어 단속을 하지 못했고, 문제가 심각해지자 1970년 8월 7일 습관성의약품관리법을 제정하여 단속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대마초 흡연은 각계로 깊숙이 퍼져1975년경 대학가는 물론 연예계에서 대마초로 인한 사회적 물의가 잦아졌다.

상황이 심각하자, 정부는 1976년 4월 7일 대마관리법을 별도로 제정해 대마흡연자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펼쳐, 무려 1,460명을 단속하는 등 관리를 강화해 1980년대 들어서는 대마초 사범이 감소했다.

그러나 혼란을 틈타 스멀스멀 고개를 들고 있는 마약이 있었다. 바로 ‘필로폰’이다. 이 당시 국내 필로폰 밀제조량이 급증하면서 연간 수십 kg미만이던 압수량이 1975년 104kg으로 대폭 증가했다. 그렇게 1980년대 들어 메스암페타민(필로폰)은 국내에서 가장 심각하게 대주된 약물로 등극했고 현재에도 우리나라에서 널리 남용되는 대표적 말썽 마약류가 되었다.

급속도로 빠른 경제 성장, 86년 아시안게임, 88년 서울올림픽 등을 거치면서 향락문화가 극에 달했고, 이와 함께 ‘필로폰’도 은밀하게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이에 정부는 1989년 대검찰청에 마약과를 신설, 필로폰 제조조직에 대한 집중 단속을 전개했다. 그리고 마침내 1989년부터 1991년에 걸쳐 국내 대부분의 필로폰 제조 기술자를 검거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이러니 하게도 국내에서의 필로폰 제조가 사실상 불가능해지자, 필로폰 가격이 20배 이상 폭등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이에 1993년경부터 대만, 중국, 홍콩, 필리핀 등지에서 제조된 값싼 필로폰이 한국에 밀수입되는 상황이 빚어졌다. 필리핀 수출국의 오명을 벗는가 싶더니 ‘필리핀 수입국’이라는 함정에 빠진 것.

이에 검찰은 이번에는 공급조직 위주로 대대적인 단속을 시작해 1995년을 기점으로 국내 필로폰 사범은 다시 감소했다. 하지만 끈질긴 제조기술자들이 이 시기 형기를 마치고 풀려나면서 중국 등지로 퍼져 필로폰을 제조해 국내로 밀수출 하기 시작했고, 1990년대 후반 경제 위기와 맞물리며 다시 중독자가 증가하게 되었다.

이후 2000년대 들어서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세계와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필로폰뿐만 아니라, 야바, 엑스터시 등 신종 마약류까지 밀반입되어 유학생, 외국인 등을 중심으로 퍼져나갔고, 국제마약조직의 경유지로 한국이 이용되기도 하는 등 여전히 마약과의 전쟁은 진행 중인 상황이다.

거리에 즐비한 마약중독자들. 지금은 지구 반대편 필라델피아의 이야기지만, 마약과의 전쟁에서 패하면 우리 역시 이러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하지만 몇 번의 과거 사례에서 볼 수 있는 엄격한 단속과 규제를 비롯한 빠른 대처가 이루어지면 마약이 뿌리박지 못하게 막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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