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문선아] “처음 느낀 그대 눈빛은 혼자만의 오해였던가요~♬” 단 한 장의 앨범만으로 한국 대중음악계의 흐름을 바꾼 가수 유재하. 올해는 유재하가 우리의 곁을 떠난 지 30주년이 된 해이다. 이번에 열리는 제28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도 다른 때와 달리 그를 추모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이 더해져 그를 추억하는 팬들에겐 더없이 좋은 소식이 되고 있다.

유재하는 어렸을 적부터 ‘음악’과 함께 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고 했던가. 초등학교를 입학할 때에는 아코디언과 첼로를 연주했고 또래 친구들이 딱지치기며 담을 타고 놀 때 그는 대중가요를 부르며 노는 것이 행복이었다. 이미 중학교 때에는 가족들도 놀랄 만큼 기타 실력이 뛰어나 그는 자연스레 자신의 진로를 ‘음대’로 정했다.

(출처/ 위키백과)

한양대학교 작곡가에 진학한 유재하는 물 만난 고기처럼 자신의 실력을 뽐냈다. 그는 작곡뿐만 아니라 작사, 편곡, 그리고 바이올린, 피아노, 기타, 키보드 등 여러 악기에 능통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대중가요를 클래식과 재즈에 접목하는 음악적 지향점을 세우고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대학교 4학년 재학 시절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키보드 연주자가 첫 활동이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대중음반 분야의 아르바이트는 허가할 수 없다는 이유로 2개월 동안의 짧은 활동으로 막을 내렸지만 그에겐 더없이 좋은 경험이 되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군복무를 마친 뒤 어릴 적 친구였던 김종진이 속해 있던 김현식 밴드인 봄여름가을겨울의 객원 멤버로서 활동했다. 

(출처/유재하 1집 앨범)

6개월의 활동 후 그는 자신의 데뷔 앨범을 준비했다. 1987년 8월 서울음반을 통해 발표된 <사랑하기 때문에>는 당시에는 ‘음정이 불안하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심의에서 반려가 됐다. 기존의 대중가요와는 다르게 엇박으로 시작하는 시작되는 도입부나 종래의 가요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코드워크, 기존과는 전혀 다른 패턴의 멜로디 등이 방송가에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의 유일한 방송 출연은 KBS의 ‘젊음의 행진’에서 한 번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부른 게 전부였다.

(출처/유희열의 스케치북 방송 캡쳐)

그러나 대학가 부근 음반매장에선 유재하의 음반을 찾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조용필이 부른 '사랑하기 때문에'와 김현식의 '가리워진 길'을 작곡한 주인공이 유재하라는 사실을 아는 마니아들의 입소문을 통해 유재하의 음악이 퍼져나갔다.

그의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가 조금씩 인기를 얻기 시작할 무렵 그는 동창회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2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렇게 그의 첫 앨범이 유작이 되는 순간이었다. 

(출처/안테나 홈페이지)

그는 대중보다 유독 같은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에게 더욱 높게 평가되는데 그 이유는 바로 ‘편곡’ 능력 때문이다. 피아노, 바이올린, 기타, 첼로 등 악기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었던 유재하는 악기 하나하나의 음색까지 정확히 파악하여 곡 전체를 조율하고, 곡의 질감을 결정하는 비범한 '편곡‘ 실력을 가졌다. 자신의 앨범인 <사랑하기 때문에>의 전곡을 모두 작사, 작곡, 편곡을 도맡은 것도 이러한 실력 덕분이다. 가수 신승훈은 "작사, 작곡, 편곡이 모두 유재하로 표기되어있는 것을 보고 일대 충격을 받았다"라고 전했다.

게다가 흔히 클래식 음악의 교육을 받은 뮤지션들의 약점인 ‘가사 쓰는 것’ 또한 유재하는 직접 작사을 할 정도로 뛰어났고 가수 김수철은 당시 유재하의 앨범을 듣고 "노랫말이 너무 빼어났다"는 느낌이 앞섰다고 회고했다. 

(출처/신승훈 페이스북)

유재하가 세상을 떠난 후 작곡, 작사, 편곡 그리고 악기까지 생전에 멀티 플레이어였던 유재하의 음악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유재하의 아버지는 유재하 음악장학회를 설립하며 1989년부터 음악경연대회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는 다른 대회와 달리 작사, 작곡이 모두 가능한 싱어송라이터를 발굴하기 위한 대회로 유희열, 김연우. 스윗소로우 등 뛰어난 싱어송라이터를 배출시킨 권위 있는 대회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처럼 유재하는 죽음 뒤에도 음악을 남기고 자신과 같은 음악인들이 음악을 할 수 있도록 터전 또한 마련해놨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 3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회자되고 있는 이유는 이러한 그의 아름다운 마음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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