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문선아 / 디자인 김민서]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 유전체교정연구단장과 미국 오리건 보건과학대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교수 공동 연구팀이 인간의 수정란에서 유전병을 일으키는 돌연변이 유전자만 골라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3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된 이 연구는 "특정 유전자만 잘라낼 수 있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인간 수정란에서 비대성 심근증의 원인이 되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제거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제거한 유전병 비대성 심근증은 심장의 좌심실 벽이 비정상적으로 두꺼워지는 병으로 인구 500명당 1명꼴로 발생하는데, 이 연구의 발표로 난치성 질환을 일으키는 유전자 대물림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에서 특정 DNA만 골라 잘라내는 단백질 효소이다. 이는 '크리스퍼'라고 불리는 세균의 면역체계를 응용하여 만들어졌는데, 이 크리스퍼 세균은 이전에 침입했던 바이러스를 기억하기 위해 자신의 유전체 안에 바이러스의 DNA를 쌓아 뒀다가, 바이러스가 다시 침입하면 이 DNA를 인지해 잘라 버린다.

즉, 이전에 자신을 공격했던 적의 정보를 잘 지니고 있다가 똑같은 적이 나타났을 때 가지고 있던 정보를 바탕으로 적을 인지하고 공격하는 것이다. 

크리스퍼 가위는 DNA 중 잘라서 편집해야 할 부분을 찾아 주는 안내자 효소인 '가이드 리보핵산(RNA)'과 편집 지점을 자르는 '절단효소'로 구성된다. 리보핵산이 교정되어야할 특정 DNA를 찾아 나서고 특정 DNA를 찾아내면 그땐 절단효소가 그 부분을 자른다. 그 사이로 새로 만든 DNA 조각이 들어가 유전자를 교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유전자 가위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이전에도 특정 DNA를 교정하는 1세대 '징크 핑거 뉴클레이즈'와 2세대인 '탈렌'이 있었는데, 이를 거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능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되는 곳은 주로 유전성 질병 치료 분야다. 헌팅턴병이나 혈우병 등 유전성 난치병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자른 뒤 다른 DNA로 바꿔주는 '유전자 치료'가 가능해지며 더 나아가 농작물이나 가축의 유전자를 바꿔 품종을 개량하는 데도 쓰일 수 있다.

이번 연구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한국이 유전자 가위 기술에서 세계적 수준임을 인정받은 것이다. 2013년 초 김진수 단장과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 등 5개 그룹은 거의 동시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개발했으며 이번 연구에서도 한국은 핵심 기술인 유전자 가위를 제공했다. 다만 국내에서는 인간 수정란의 유전자 변형한 연구가 불법이라 실험은 미국에서 진행 된 것이다. 

이처럼 유전학 분야에서는 주목받는 기술이지만 여전히 안전성에 대한 논란도 있다. 올해 5월 학술지 '네이처 메소드'에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로 생쥐의 실명 유발 유전자를 교정한 것이 오히려 다른 유전자에서 돌연변이가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유전자를 변형·조작하는 기술인만큼 안전성과 윤리적인 논란을 넘어서야 하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부디 좋은 기술이 제대로 된 가이드 라인 안에서 좋은 방향으로 쓰여 희귀질환으로 고생하는 이들이 좀 더 적어지기를 바란다.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