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교육 현장이 또 한 번 큰 전환점을 맞았다. 올해 고1부터 전면 시행된 고교학점제가 그 주인공이다. 다만, 기대와 달리 현장에선 혼란과 반발이 거센데, 교사·학생·학부모 모두가 불편을 호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교학점제’는 대학처럼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수강하고, 정해진 학점을 채워야 졸업할 수 있는 제도다. 기존엔 출석일수와 필수 교과 이수만 충족하면 됐지만, 이제는 3년간 192학점을 채워야 하고 과목별 최소 성취 기준을 넘어야 한다. ‘학생 맞춤형 교육’이 취지다.

하지만 고교학점제 도입으로 교사들의 업무가 가중됐다. 한국교총·전교조·교사노조 등 교원 3단체가 지난달 발표한 ‘고교학점제 운영실태 공동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제도 시행 이후 교사 10명 중 8명은 2과목 이상 수업을 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택과목이 다양해지면서 교사 한 명이 세 과목 이상을 맡는 경우도 흔해졌다. 과목별 수업 준비, 시험 출제, 생활기록부 작성까지 해야하기에 업무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특히 ‘최소 성취수준 보장 지도’가 교사들의 가장 큰 부담이다. 출석률 3분의 2와 성취율 40%를 채우지 못하는 학생이 나오지 않도록 보충수업과 맞춤형 지도가 필수다. 때문에 방학에도 학교를 나와야 하는 교사들이 속출해 교원들 사이에서 불만이 극에 달하고 있다. 아울러 학업성취도 낮은 학생을 최소화하려고 평가 난도를 일부러 낮추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교원 수급 문제도 심각하다. 학급당 학생 수는 줄었지만, 고교학점제 도입으로 과목 세분화가 진행되어 교사가 더 필요하게 됐다. 그러나 정원은 오히려 감소하는 추세다. 서울의 한 학교는 학생 수 감소를 이유로 교사 6명이 줄었는데, 고교학점제 시행으로 남은 교사 46%가 세 과목 이상을 가르치게 됐다.

학생과 학부모도 혼란을 겪는다. 학생들은 원하는 과목보다 내신에 유리한 과목을 고르는 눈치싸움에 내몰리고 있다. 상대평가 체제 탓에 10명 수업보다 100명 수업에서 등급 따기가 쉬워, 과목 쏠림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또 상위권 학생이 있는 수업을 기피해야 하기에 고려해야할 사항이 많다. 

또 대학에서는 전공자율선택이라는 무전공이 확대되는 추세인데 고교학점제로 자신의 진로를 미리 결정해야 하는 상황은 서로 모순된다는 의견도 있다.

학부모들은 정보 부족 속에서 사교육에 의존하고 있다. 학원가에는 ‘고교학점제 컨설팅’이라는 새로운 시장까지 형성됐다. 부모들은 자녀가 적성보다는 입시 유불리에 따라 과목을 고르는 모습을 보며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반발은 수치로도 드러난다. 한국교총 조사에 따르면 고교 교사 72%가 전면 도입에 반대했다. 가장 큰 이유는 제도 이해 부족과 준비 미비였다. 교사 91%는 “과목 선택 확대 시 교사 수급이 불가하다”고 답했고, “대입에 유리한 과목 쏠림” 현상에도 90% 이상이 우려를 나타냈다.

지역 간 격차도 문제다. 도시 대형 학교는 비교적 다양한 과목 개설이 가능하지만, 농촌의 소규모 학교는 공동교육과정을 열기조차 힘들다. 물리적 거리가 멀어 학생 이동도 어렵다 보니 학점제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정부는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최소 성취 기준을 완화하고, 온라인학교를 설립해 부족한 과목을 원격으로 보완하는 방안 등이 추진 중이다. 사립·공립 간 교원 인사 교류도 확대돼 교사 배치의 유연성을 높이려 한다.

그러나 교원단체들은 ‘땜질식 처방’이라며 강하게 반발한다. 교사 업무 완화 수준이 아니라 제도 자체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학생 맞춤형 교육이라는 이상을 살리려면 제도 설계 자체가 다시 논의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교진 신임 교육부 장관은 이에 “고교학점제 취소는 없다”며 폐지론에 선을 그었다. 다만 교원 증원과 대학입시제도 개편이 병행돼야 한다는 점은 인정했다. 결국 제도의 성패는 정부가 얼마나 현장의 불만을 수용하고 장기적 개편안을 마련하느냐에 달려 있다.

고교학점제는 미래 교육을 위한 실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속도를 앞세운 도입은 교육의 질 하락과 불평등 심화라는 역설을 낳고 있다. 학생 중심의 교육을 꿈꾼다면 무엇보다 교사와 학생이 감당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시선뉴스=양원민 기자 / 디자인=김선희 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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