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심재민 기자 |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하는 계기가 됐던 고(故) 김용균(당시 24세) 씨 사망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단이 7일 나왔다. 대법원은 이날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 고(故) 김용균 씨 사망 사고의 형사 책임을 원청 기업 대표에게 물을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이에 대해 김용균 재단은 "기업이 만든 죽음을 법원이 용인했다"며 규탄했다. 이슈체크에서 <'故김용균 사건' 원청대표 무죄 확정...>에 대해 팩트와 함께 살펴보자.

# ‘중대재해처벌법’ 계기된 故김용균 사건
김씨는 2018년 12월 11일 오전 3시20분께 석탄 운송용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서부발전의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김씨가 숨진 뒤 시민사회와 정치권에서는 중대한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를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하자는 요구가 잇따랐다. 이와 관련해 정의당과 김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2020년 12월부터 29일간 단식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이듬해 1월 업계와 경제단체 등의 반대를 뚫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작년 1월27일 시행됐다.

시선뉴스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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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 “책임 있다”...1·2심은 “무죄”
검찰은 김씨 사망 사건을 수사한 뒤 2020년 8월 원·하청 기업 법인과 사장 등 임직원 14명에게 사망 사고에 대한 형사 책임이 인정된다며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법원은 1·2심 모두 김병숙 전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심 법원은 "피고인이 컨베이어 벨트 설비의 현황이나 운전원들 작업방식의 위험성에 관해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태안발전본부 내 개별적인 설비 등에 대해서까지 작업환경을 점검하고 위험 예방 조치 등을 이행할 구체적, 직접적 주의의무를 가진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김씨 사망 원인으로 꼽힌 컨베이어벨트의 위험성이나 하청업체와의 위탁용역 계약상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대표이사는 안전보건 방침을 설정하고 승인하는 역할에 그칠 뿐, 작업 현장의 구체적 안전 점검과 예방조치 책임은 안전보건관리책임자인 태안발전본부장에게 있었다는 이유였다.

# 태안발전본부장 역시 결국 ‘무죄’
그렇지만 함께 기소된 권모 전 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장 역시 1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무죄로 뒤집혔다. 김씨 사망의 원인이 된 석탄 취급설비와 위탁용역관리 관련 업무는 기술지원처가 담당해 김 전 사장과 마찬가지로 직접적·구체적 주의 의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서부발전 법인 역시 김씨와의 실질적 고용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7일 오전 대법원 앞에서 열린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 사건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7일 오전 대법원 앞에서 열린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 사건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 대법원, ‘원청대표’ 무죄 확정
검사가 불복했으나 대법원은 원심판결에 잘못이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7일 확정했다. 대법원은 "원심판결에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에서의 안전조치 의무 위반, 인과관계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 관련자 10명도 실형 피해
이 밖에 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 기술지원처장, 연소기술부·석탄설비부 책임자들, 백남호 전 발전기술 사장, 태안사업소장 등 10명과 발전기술 법인은 이날 유죄가 확정됐다. 이들은 업무상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아 김씨를 사망에 이르게 하거나, 최소한 산업안전보건법상 요구되는 안전조치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는 점이 인정돼 대부분 금고형이나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실형을 선고받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 김 씨 母 "법원이 죽음 용인"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당시 24세)씨 사망 사고와 관련해 원청 기업 대표가 7일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자 김용균 재단은 "기업이 만든 죽음을 법원이 용인했다"며 규탄했다.

김씨의 어머니인 김미숙(53) 김용균 재단 이사장은 이날 선고 뒤 대법원 앞 기자회견에서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사장이 현장을 잘 몰랐다면 그만큼 안전에 관심이 없었단 증거 아니냐. 그런데도 무죄라고 한다면 앞으로 다른 기업주들은 아무리 많은 사람을 안전 보장 없이 죽여도 처벌하지 않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과 정부 기관이 수십년간 이해관계로 얽혀 사람의 중함은 무시된 채 목숨조차 돈과 저울질하게 만든 너무도 부당한 사회를 만들어 놓았다"며 "거대 권력 앞에 무너지는 사람들의 인권을 찾기 위해 이 길에서 막힌다 해도 또 다른 길을 열어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회견 중간중간 눈물을 훔치던 김 이사장은 회견이 끝난 뒤 대법원을 바라보며 "용균아, 미안하다", "대법원은 당장 용균이에게 잘못했음을 인정해라"고 외치기도 했다.

지난 4일 오전 서울 대법원 앞에서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 사건 관련 대법원의 책임 있는 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려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호소문을 읽고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지난 4일 오전 서울 대법원 앞에서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 사건 관련 대법원의 책임 있는 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려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호소문을 읽고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 변호인들 “법원의 실패” “산재 사망률 순위 최상위권”
김씨 유족을 대리한 박다혜 변호사는 "구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하든 개정법을 적용하든 충분한 증거와 법리가 갖춰져 있는 사건임에도 법원은 위탁 계약과 원·하청 관계라는 형식에 눈이 멀어 그 실체를 보지 못했다"며 "오늘 대법원 선고는 그저 법원의 실패일 뿐"이라고 말했다.

김용균 특조위에서 활동한 권영국 변호사는 "수십년간 대한민국이 산재 사망률 순위 최상위권을 달릴 수 있었던 이유는 기업의 문제도 있지만 법원이 깃털과 같은 판결을 해왔기 때문이라는 사실임을 오늘 대법원 판결이 그대로 드러내 주었다"며 판결을 규탄했다.

회견 참가자들은 손팻말을 든 채 "판결 거부한다. 원청이 책임자다", "죽음을 만든 자, 원청을 책임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 한편,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연장’ 논란
중대재해처벌법은 50인 이상 사업장(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이상)에서 노동자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고 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 등을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다. 상시 근로자 50인 미만 사업장과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건설 현장에는 유예기간을 거쳐 다음 달 27일부터 적용될 예정이었는데, 정부와 대통령실, 국민의힘은 전날 고위 협의회를 열고 유예기간을 2년 연장하는 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에 양대노총은 4일 정부와 여당이 상시근로자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유예해선 안 된다고 촉구했다. 이와 관련해 민주노총은 이날 오후 서울 중구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간담회를 열고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유예는 노동자 생명과 안전을 완전히 져버린 것"이라면서 "사업장에서 (사고로) 죽어 나가는 노동자는 민생이 아니란 말인가"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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