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양원민 기자ㅣ최근 정부가 식당, 편의점에서 일회용 종이컵 사용을 제한하는 규제를 철회했다. 자영업자의 친환경 제품 구입 비용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소비자의 불편함도 던다는 이유에서다. 또 플라스틱 빨대의 계도기간 무기한 연장과 비닐봉지 과태료 부과 철회 등도 발표했다. 이처럼 기존의 ‘탄소중립’ 중심의 정책에서 ‘그린래시’ 중심의 정책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린래시’는 녹색정책에 대한 반발을 일컫는 말로, 기후위기 대응에 반대하는 움직임을 말한다. 녹색과 친환경 등을 뜻하는 ‘Green’과 반발을 뜻하는 ‘Backlash’를 합친 말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지구 온난화’를 넘어선 ‘지구 열대화’가 거론될 정도로 심각해진 기후변화 상황에서 주요 선진국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화석연료 중심의 산업 및 일자리 감소나 친환경 정책에 경제적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 친환경 정책에 반발하는 것이다.

사례를 살펴보자. 먼저 지난 8월 영국에서는 노후 공해 차량에 대해 하루에 12.5파운드(약 2만 원)의 요금을 부과하는 초저배출구역(ULEZ) 제도가 확대 시행되고 있다. ULEZ는 런던의 공기질 개선을 위해 2019년 처음으로 런던 도시에 적용됐는데, 2021년 도심 주변으로 확대됐다가 런던 모든 자치구가 시행 대상에 포함된 것이다. 이에 대중교통 접근성이 떨어지고 상대적으로 노후 차량 소유 비중이 높은 도시 외곽 거주자들은 인플레이션으로 생활비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 시 당국이 가난한 시민들을 처벌하는 조치라며 반발했다. 

또 네덜란드의 경우 온실가스를 억제하려는 정부의 친환경 정책에 반기를 든 신생 정당인 ‘농민-시민운동당(BBB)’이 2023년 3월 총선에서 상원 제1당이 된 바 있다. BBB는 2019년 창당한 신생 정당이지만 탄소배출 감축을 위해 가축 사육 마릿수를 3분의 1로 줄이라는 정부의 환경 정책을 비판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2023년 초 정부가 석유 보일러의 생산을 단계적으로 중단하고 재생에너지로 구동되는 열 펌프로 전환하겠다는 보일러법을 내놓자, 이에 반발하는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이 부상하기도 했다.

이러한 ‘그린래시’ 문제는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대두되고 있다. 공화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주지사는 ESG(친환경·사회적 책임 경영·지배구조 개선 등  투명 경영을 통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는 것)경영으로 인한 과도한 규제가 경제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이어 미국 공영방송 PBS와 공영 라디오 NPR의 설문조사에서 미국인의 약 53%가 기후 위기를 선결 과제로 꼽았지만, 공화당원 가운데 72%는 기후 위기보다는 경제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렇듯 ‘탄소중립’과 ‘그린래시’는 이미 민감한 정치 이슈로 부상했다. 시민들은지지 정당을 선택할 때 탄소중립 정책에 대한 찬반을 잣대로 삼기도 한다. 환경 보호는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당장에 먹고살 길이 막히거나 어려워지는 것을 피하는 것이다.

탄소중립을 달성하는데 가장 큰 장애물은 막대한 비용이다. 하지만 세계 각국에서 그동안 추진해온 대규모 친환경 프로젝트들은 최근 고금리와 인플레이션 여파로 좌초될 수 있는 위기에 처해 있기도 하다.

한국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다만 이번 일회용품에 관한 규제 철회 및 완화는 이를 반하는 정책이다. 해외의 사례로 미뤄보아 내년에 있을 총선에서 탄소중립과 그린래시가 정치 이슈로 부상할 확률도 적지 않다. 우리는 앞선 유럽과 미국의 사례들을 타산지석 삼아 현실적인 목표 설정과 효과적인 실천 방안을 내놓을 수 있을까.

SNS 기사보내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