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정혜인 기자 | 최근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주가연계증권(ELS) 사태가 불거졌다. 이에 지난 몇 년간 발행 규모를 줄여온 증권사들은 관련 상품을 재정비하고 내부 통제를 다시 한번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2024년 1월 31일 뜨거운 이슈 <ELS 사태와 금융 당국의 대처>에 대해 팩트와 함께 전달한다.

# ELS(주가연계증권, Equity Linked Securities)
ELS는 개별주식의 가격이나 주가지수 등에 연동하여 수익률이 결정되는 신종 유가증권으로 증권사에서 발행 판매하는 상품이다. 이는 주식, 채권 등의 일반적인 증권들과는 달리 파생상품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므로 기초자산의 가격이 투자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우 원금의 일부 또는 때로는 전부를 손실할 수도 있어 위험성이 높은 편이다.

일반적으로 최대 연 5~25%의 수익률을 확정해놓고 있는데, 그래서 예상대로만 시장이 흘러간다면 계약 만료시점에서 약정된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주가 또는 지수가 떨어지거나 올라도 미리 정해진 구간 안에서만 움직이면 약정한 수익률을 지급하지만, 조건 미충족 시에는 투자 원금의 손실(0~100%)이 발생할 수 있다.

ELS는 통상 6개월마다 기초자산 가격을 평가해 조기상환 기회를 주고, 만기 시 기초자산 가격이 일정 기준을 밑돌면 가격 하락률만큼 원금 손실이 발생한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 ELS 사태의 원인, 큰 폭으로 밀린 홍콩 증시
최근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삼은 ELS 손실 폭이 확대되는 일이 있었다. 이는 연일 약세를 거듭하던 홍콩 증시가 크게 주저앉으면서 나타났다. 지난 22일,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 50개 기업 주가로 산출되는 홍콩 H지수(HSCEI)가 3% 넘게 급락해 5,000선을 밑돌아 한국시간 기준 오후 4시께 4,950대에 거래됐다. 유안타증권에 따르면 홍콩H지수 연계 ELS가 대거 발행된 2021년 1월 홍콩H지수 평균은 11,339 정도다.

홍콩H지수는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 가운데 50개 종목을 추려서 산출하는 지수로, 변동성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ELS는 만기 상환일에 기초자산의 가격을 평가해 수익률을 확정하기 때문에 11,000대를 넘나들던 홍콩H지수가 절반 이상으로 급락하면 투자자는 지수 하락률만큼의 손실을 그대로 가져가게 된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 중국 정부의 소극적인 통화정책
이러한 홍콩 증시 약세는 경기 침체 우려에도 중국 정부가 통화정책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투자자들의 실망감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되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우려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기준금리인 대출우대금리(LPR)를 5개월 연속 동결했다.

# 국내 상장 ETN 상장폐지
22일 홍콩 증시가 크게 밀리며 홍콩증시에 상장된 중국 테크 기업 주가를 2배로 추종하는 국내 상장지수증권(ETN)이 상장폐지를 맞았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증권이 발행한 ‘삼성 레버리지 항셍테크 ETN(H)’은 이날 오후 3시 55분부터 매매거래가 정지돼 오는 24일부터 상장폐지 절차가 진행되었다.

거래소 유가증권시장 상장규정에 따르면 정규시장 종료 시점에서 ETN의 실시간 지표가치(IIV)가 전일 대비 80% 이상 하락하거나 1천 원 미만인 경우 투자자 보호를 위해 조기청산된다. ‘삼성 레버리지 항셍테크 ETN(H)’은 이날 정규장 종료 시점 실시간 지표가치가 988.05원으로 떨어져 조기청산 사유가 발생한 것이다. 본래 만기일은 오는 7월 19일로 예정돼 있었다.

이 상품은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 테크 기업 30종목으로 구성된 항셍 테크 지수의 일간 수익률을 2배로 추종한다. 항셍 테크 지수가 오르면 수익도 2배가 되지만, 떨어질 경우 손실도 2배가 된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 홍콩H지수 ELS 손실 규모
앞서 만기 도래한 홍콩H지수 기초 ELS의 원금 손실률은 최고 56.1%까지 뛰었다. 지난 21일 은행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에서 판매된 홍콩H지수 기초 ELS 상품에서 올해 들어 지난 19일까지 2천 296억 원의 원금 손실이 발생했다. 5대 은행에서는 8일부터 첫 원금 손실이 확정됐는데, 11일 만에 손실액이 2천억 원을 넘어선 것이었다.

이 기간 만기 도래한 원금 약 4천 353억 원 중 2천 57억 원만 상환됐으며, 전체 손실률은 52.8%(손실액 2천 296억 원)로 집계됐다. 만기 일자마다 다르지만, 일부 상품에서는 지난 17일 56.1% 손실률도 확인되는 등 손실률도 점점 커졌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 다가오는 상품들의 만기
홍콩H지수가 고점이던 2021년 판매된 상품들의 만기는 올해부터 속속 돌아올 예정이다. 따라서 손실 규모는 앞으로 더 불어날 가능성이 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5일 기준 홍콩H지수 기초 ELS 총판매 잔액은 19조 3천억 원으로, 이 중 15조 9천억 원을 은행에서 판매했다. 전체 잔액의 79.6%인 15조 4천억 원의 만기가 올해 도래하는데, 올해 상반기(1분기 3조 9천억 원·2분기 6조 3천억 원)에 만기가 집중돼 있다.

손실률이 60% 수준까지 오른다고 하면, 5대 은행에서 판매한 홍콩H지수 관련 ELS의 원금 손실 규모는 상반기에만 6조 원을 넘어설 수도 있다.

# 금융당국의 대처
금융당국은 홍콩H지수 연계 ELS 주요 판매사 12곳(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은행, 한국투자·미래에셋·삼성·KB·NH·키움·신한투자증권)에 대해 현장검사를 실시하고, 불완전 판매 여부 등을 파악하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홍콩 H지수 연계 ELS 사태와 관련해 “상품의 유형별 구분, 적절한 판매경로 등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제도 개선을 검토하겠다”고 지난 29일 밝혔다.

서유석 금융투자협회 회장은 지난 23일 홍콩증시 급락에 따른 대규모 손실 발생으로 당분간 주가연계증권(ELS) 시장 위축이 불가피하다면서 금융투자업계의 타격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현재 금융 당국이 국내 증권사의 중개를 금지한 해외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는 투자 수요가 커질 경우 현행법을 정비할 필요가 있으며 협회도 이에 대비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 은행 ELS 판매 중단
주요 시중은행들은 잇따라 ELS를 당분간 팔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어제(30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이날 오후 내부 회의를 거쳐 ELS 상품 판매를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신한은행도 이날 오후 비예금상품위원회를 열어 오는 5일부터 ELS(ELT·ELF)를 취급하지 않기로 했다. 앞서 하나은행은 29일 ELS 판매를 잠정 중단했다.

은행권의 이런 결정은 무엇보다 H지수 기초 ELS의 대규모 손실 사태를 계기로 은행의 공격적 고위험 상품 판매 행태에 대한 비난이 거세졌기 때문이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 정비에 나선 증권사들
어제(30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증권사들은 지난 2019년 이후 ELS 발행 규모를 점차 줄여왔다. 이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이 2019년 시행된 데다 얼마간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고수익이라는 ELS의 장점이 줄어들고 ELS 원금 손실 사태가 현실화하면서 증권사들이 발행 규모를 줄인 영향이었다.

그리고 이번 ELS 사태로 다시 관련 상품 재정비에 나섰다. 금융 당국도 최근의 ELS 사태에 예의주시하면서 증권사 입장에서는 발행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다.

금융감독원은 현재 ELS 판매사에 대해 검사를 진행 중으로, 이르면 다음 달 완료할 예정이다. 금융 당국에서 내리는 결과에 따라 ELS 판매가 아예 사라질 수도 있는 만큼, 금융권 관계자들은 내부를 점검하며 예민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SNS 기사보내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