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정혜인 기자 / 디자인=김선희 proㅣ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의 봉쇄로 물과 연료 공급이 끊겼다. 이에 가자지구 주민들은 식수 부족으로 심각한 탈수 증세를 겪고 있다. 이번 전쟁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마스’의 공격으로 시작되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의 대표적인 무장단체다. 1987년 말 아마드 야신이 창설한 하마스는 ‘이슬람 저항 운동(Harakat al-Muqaqama al-Islamiyya;Islamic Resistance Movement)’을 뜻하는 아랍어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아랍어로 ‘용기’를 의미한다. 

1987년에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무장 투쟁 ‘제1차 인티파다’가 일어났다. 아흐메디 야신은 아라파트가 이끌었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온건 노선에 반대하며 하마스를 결성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하마스는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몰아내고 팔레스타인 전역에 이슬람 국가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들은 테러 등 무장투쟁을 중시하는데, 특히 이스라엘의 존재를 부정하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토 점령에 대한 무력 저항을 주장한다. 창설 이후 이스라엘군에 많은 공격을 가하다가 1993년부터는 민간인에 대한 테러 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이스라엘군의 전초기지나 국경지대를 주로 공격했고, 팔레스타인 영토 내의 다른 무장 조직과 충돌하는 일도 있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억압에 대항하며 팔레스타인 빈민들의 지지를 확보하게 된다. 이때 PLO가 시도한 평화적 외교가 실패하면서 하마스는 2006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총선에서 압승했다. 132석 가운데 73석을 차지하며 40년 동안 집권해 온 파타당을 누르고 집권당이 된 것. 

이후 팔레스타인은 파타당 정부와 가자지구의 하마스 정부로 분열되었다. 2007년 하마스는 가자지구에서 파타 정파를 몰아내고 독자적인 통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자국민 보호를 내세우며 경제 봉쇄를 강화하면서 하마스 정권의 지배력은 가자지구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리고 2012년, 가자 지구에서 하마스와 이스라엘 사이에 전면전이 벌어졌다. 이스라엘이 하마스 최고 군사령관 아흐마드 자바리를 암살한 것이 시발점이었다. 이 전쟁으로 팔레스타인 내에서 수십 명의 피해자가 있었다. 이로부터 2년 뒤에는 더욱 큰 규모의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2014년에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에 더욱 치열한 전쟁이 일어났다. 이해 7월 이스라엘 청년 3명이 살해되었고,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이 사건의 배후로 지목했다. 지금까지도 정확한 배후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당시 분노한 이스라엘은 보복 범죄를 자행했다. 당시 하마스와 이스라엘군 모두 전례 없는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2006년 이후로 가자지구는 하마스에 의해 통치되고 있지만, 여전히 이곳의 영공, 해안선, 지상 경계선 등에 대한 통제권은 이스라엘에 있다. 또한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예루살렘 전체를 자국의 수도라고 주장하지만, 팔레스타인은 동예루살렘을 앞으로 건설되리라 희망하는 자신들의 국가의 미래 수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언제 충돌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이번 전쟁으로 너무나 많은 희생자가 나오고 있다. 유엔(UN)에 따르면 지난 한 주 동안 서안 팔레스타인 주민 사망자 수는 2005년 이후 최대치다. 하지만 아직 이스라엘이 예고한 ‘가자지구 작전’은 시작되지 않아 주민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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