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정광윤 정치평론가] 6·4 지방선거 결과는 한마디로 절묘한 선택이었다. 우리 국민들은 여당과 야당, 어느 쪽에도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처럼 한 편의 드라마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반적으로는 여당에 불리한 선거였지만, 우리 국민들이 이런 결과를 연출해낸 것은 박근혜 정부의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원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정당에 비해 인물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는 추세를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은 당초보다 좋은 성적을 거둔 데 대해 안도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예상 밖의 선전은 오로지 ‘박근혜 마케팅’에 힘입었다는 점에서 깊이 반성하는 것이 온당한 처사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새누리당은 2004년의 제17대 총선을 시작으로 그동안 박근혜라는 지도자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해 왔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 시대인 이번 지방선거에서조차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박 대통령의 존재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새누리당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웅변해 준다고 할 것이다.

 
   요컨대 새누리당은 자생력이 전혀 없는 정당인 셈이다. 언젠가는 박근혜 대통령이 정계를 떠날 것인데, 이렇게 스스로의 힘으로는 국민의 지지를 받기가 어렵다면, 사실상 존재의 이유가 없다고 하는 것이 온당한 해석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는 새누리당은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되었는가? 이런 현실은 새누리당이 국민에게 내세울 만한 브랜드 파워를 전혀 갖고 있지 못하다는 방증이다. 능력과 매력 중에서 한 가지라도 갖추고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기대할 수 있는데, 새누리당은 능력도 매력도 기대 이하인 것이다. 게다가 그럴 듯한 차기 대선주자의 부재도 새누리당의 처지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자생력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역대 선거에서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은 새정치민주연합도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고, 어떤 점에서는 새누리당에 행운이 작용한 탓도 크다.

   주지하듯이 새누리당은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오랜 집권 경험을 갖고 있다. 그리고 국회의원들 다수가 화려한 학력과 경력을 자랑하는 엘리트에 가깝다. 한마디로 ‘주류 인사’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주류 정당’이다. 이런 특성이 과거에는 지지 기반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세간에서 새누리당을 향하여 지칭하는 귀족 정당, 웰빙 정당, 권위주의 정당, 폐쇄 정당이라는 닉네임이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다. 시대정신에 반하는 모습으로 비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도 그런 경향이 강한 편이다. 비유컨대 ‘국민의 봉사자’보다는 ‘슈퍼 갑’의 이미지이다.

   예전에는 엘리트들이 지식과 정보 그리고 재력을 통하여 국민 대중들을 지배하기가 쉬웠다. 새누리당이 오랜 세월 집권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하지만 지금은 지식과 정보가 한없이 공개되고 유통됨으로써 엘리트 집단의 그러한 지배 기제는 사실상 사라졌다. ‘돈을 통한 지배’ 역시 법규의 강화와 국민의식의 변화로 쉽지 않게 되어 있다. 이번 지방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새누리당 당원들의 참여가 저조했는데, 이것 또한 새누리당의 위세가 예전과는 현격히 다르다는 점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면 새누리당이 국민의 지지를 계속 받고 당원 참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동기부여 수단을 강구했어야 했는데, 별다른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자생력의 위기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그동안 당 이름을 몇 차례 바꾸고 당 쇄신을 자주 약속했지만, 간판과 얼굴이 바뀐 것 말고는 본질적인 변화는 사실상 없었다. 새누리당의 지도부와 국회의원들부터가 시대 흐름을 감지하고 새로운 동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참신성과 유연성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참신하고 유연한 지도자와 인재들이 어느 정도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주로 당을 지배해 왔다는 뜻이다. 새누리당은 오는 7월 14일에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할 예정인데, 과연 당의 변화를 추동할 만한 지도부가 들어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이번에 새누리당 대표가 되겠다고 전당대회에 출사표를 던진 인사라면 새누리당을 미래 세대가 눈길을 줄 만한 매력과 능력을 갖춘 정당으로 만들 자신과 복안을 갖고 있어야 한다.

   7월 전당대회를 통하여 새누리당이 어떤 모습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지는 쉽게 예단할 수 없겠지만, 훌륭한 지도부가 들어서더라도 당이 안착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따라서 대통령과 정부의 부담이 변함없이 클 수밖에 없다. 여기에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의 후유증을 수습하고 ‘국가 대개조’ 과업을 추진해야 하는 입장이다. 당장은 국무총리 후보 지명자에 이어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에 대한 개편 작업을 마무리해야 한다. 오늘(10일) 박근혜 대통령은 새 총리 후보자에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을 임명했다. 이번만큼은 검증을 제대로 했다고 믿고 싶다. 현재로서는 비교적 무난한 인사로 보이지만, 대통령을 대신해 내각을 지휘하는 역량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대통령의 과부하를 덜어줄 수 있을지가 총리 후보자의 역량에 달려 있다. 남은 인사에서도 혁신 의지와 폭넓은 안목을 두루 갖춘 인사를 발탁하기를 바란다.

   국가 대개조는 이름 그대로 대단히 어려운 과제이다. 이런 거대 담론이 나올 만큼 대한민국 현대사 과정에서 쌓여 있던 폐단들을 도려내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국민적인 공감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따라서 국가 대개조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양질의 기획안을 만들되 각계의 공론을 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논자에 따라 국가 대개조에 대한 입장과 시각에 차이가 있겠지만, 공통분모를 찾는 것이 순리이다. 문제 해결의 과정에서부터 합리성을 띠는 것이야말로 국가 대개조의 첫걸음임을 박근혜 대통령은 명심해야 한다. 우리 국민들이 정치를 불신하는 것도 정치 지도자들이 상대방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 입장을 관철하려고 하는 오랜 관성 때문이다.

   새누리당과의 관계 설정도 중요한 과제이다. 새누리당이 설령 부족함이 있더라도 여론에 민감한 집단이라는 점에서 당-정 간의 활발한 소통은 문제 해결에 상당히 도움이 될 수 있다. 새누리당의 자생력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도 청와대가 당의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 청와대의 일방향적인 주도권 행사는 여당을 거수기로 희화화하고 정부를 독단적으로 비치게 할 뿐이다. 실제로도 정부의 의안 제출과 처리 과정에서 당-정 간의 브레인스토밍이 충분히 이뤄지면 훨씬 나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새누리당도 그에 맞는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여기에는 대한민국의 온갖 모순점들이 응축되어 있다. 선원들의 무책임, 선박 회사의 탈법과 불법 행위, 선박 회사 대표의 뻔뻔스러운 도피 행각, 공직자들의 부도덕성, 민관 유착, 우리 사회 전반의 안전 불감증 등이 어린 학생들을 비롯한 소중한 생명을 빼앗았다. 이런 엄청난 참사를 겪고도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에는 희망이 존재할 수가 없다. 특히 정부와 국회는 이 모든 문제의 해결 주체라는 점에서 남다른 각오를 다지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 대개조를 위해서는 정부와 국회의 자기 개혁이 전제되어야 한다. 정부와 국회 지도자들이 이 일에 성의를 보여야 국가 대개조 과업은 순항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의 역할이 더 없이 중요하다. 중심을 잡되 보다 유연한 자세로 이 난국을 수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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