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정혜인 기자 | 어제(5일) 한국은행은 ‘돌봄서비스 인력난·비용부담 완화 보고서’를 통해 돌봄 서비스를 위한 외국인 근로자 활용 및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제안했다. 이는 국내 근로자만으로는 돌봄 노동 수요를 채울 수 없다는 판단에서 비롯되었다. 2024년 3월 6일 뜨거운 이슈 <외국인 가사근로자에 대한 뜨거운 논쟁>에 대해 팩트와 함께 전달한다.

# 돌봄 수요·공급의 불균형
먼저 우리나라의 ‘외국인 가사근로자 적극 활용’에 관한 얘기는 늘고 있는 돌봄 수요, 그리고 이를 따라가지 못한 노동 공급에서 시작되었다. 2022년 19만 명이었던 돌봄 서비스직 노동 공급 부족 규모가 2032년 38만∼71만 명, 2042년에는 61만∼155만 명까지 커질 것으로 보이는 상황이어서, 약 20년 뒤에는 돌봄 서비스직 노동 공급이 수요의 30% 수준에 머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간병·가사 도우미 비용 추이 등 [사진/한국은행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간병·가사 도우미 비용 추이 등 [사진/한국은행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제안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이슈는 2022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국무회의에서 이를 제안하면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지난해 3월 조정훈 국회의원이 다시 언급하며 논란이 되었다. 이때 조 의원은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을 전제로 최저임금 적용을 배제하는 가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면서 사람들로부터 ‘현대판 노예제’를 만든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지난해 5월, 윤석열 대통령은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을 적극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후 두 달 만에 공청회가 열리고 나서 시범 기관 모집이 시작됐다. 정책이 빠르게 추진되기 시작한 것이다.

강연하는 오세훈 서울시장 [사진/연합뉴스]
강연하는 오세훈 서울시장 [사진/연합뉴스]

# 정부의 시범사업 확정
정부는 ‘외국인 가사근로자 시범사업’을 지난해 9월 확정했다. 이 시범사업은 가사와 자녀 양육을 돕는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을 위한 것이다. 정부는 서울시를 시범 지역으로, 검증된 외국인 가사근로자 100명을 도입해 상대적으로 수요가 높은 20~40대 맞벌이 부부, 한부모가정, 다자녀가정 등을 우선 대상으로 선정 운영할 방침을 밝혔다.

외국인 가사근로자가 한국에 들어오면, 비전문 외국인 체류자격인 ‘E-9’ 비자로 한국에 입국해 일하게 된다. E-9 비자는 일정 자격이나 경력 등이 필요한 전문 직종이 아닌 제조업체, 건설공사 업체, 농업, 축산업 등 비전문 직종에 취업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발급되는 비자로,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다.

# 시범사업 시행 시기
이 시범사업은 본래 지난해 말 시행을 목표로 했으나 지금까지도 시행 시기가 불투명해졌다. 시범사업을 하기로 한 필리핀 정부와 우리나라 정부 협약이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협약이 체결된다고 가정해도 시행 시기는 알 수 없다. 한국에 올 가사근로자의 선발 과정, 의무 교육 시간, 정주 여건 등의 준비 과정을 위한 기간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용부는 외교적인 사안이라며 구체적인 지연 사유를 밝히고 있지 않지만, 외국인 가사근로자의 직무 범위와 관련해 양국의 입장차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부 관계자가 “필리핀과 협의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현재로선 시행 시기가 확정된 것은 없다”고 말하며 올해 상반기 시행도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임금 문제
전문가는 외국인 근로자 중에서 필리핀인이 선정된 데 필리핀이 개발도상국이라는 부분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필리핀은 내국인의 외국인력 수출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행법과 국제 협약상 외국인 가사근로자는 최저임금 적용 대상이므로 시범사업 시행에 앞서 내국인 가사근로자와 임금 차이가 거의 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논란이 되고 있다. 시범사업을 통해 서울에서 일하게 될 필리핀 국적 가사근로자 100명은 최저임금법 대상에 포함되기에 급여 산정 때 올해 최저임금을 적용받게 된다. 그러면 이들의 월급은 약 200만 원 정도가 되는데, 월 200만 원의 지출은 일반적인 중산층 가구에도 버거운 금액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국적에 따라 최저임금을 달리 적용하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었으나, 이는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위반이다. 한국은 고용·직업상 차별을 금지한 ILO 111호 협약 비준국으로, 현재 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업종별로만 가능하다.

# 한은의 제안
한은이 이번에 보고서를 통해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제안한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었다. 보고서에서 한은은 외국인 고용허가제 업종에 돌봄 서비스를 추가하고, 해당 업종의 최저임금을 상대적으로 낮게 설정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고용허가제는 구인난을 겪는 사업주가 비전문 취업비자(E-9) 외국인력을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게 한 제도로, 업종이 제한돼 있다. 또한 고용허가제 외국인도 최저임금을 적용받는다.

그래서 ILO 협약을 어기지 않으면서 외국인 돌봄 서비스의 비용을 낮추는 방안으로 한은이 개별 가구가 ‘사적 계약’을 통해 외국인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게 하는 방식이나, 돌봄 업종에 대한 최저임금을 낮추는 방안을 꺼낸 것이다.

# 최저임금 ‘차등적용’
‘임금 차등적용’은 경영계와 노동계의 간극이 쉽사리 좁혀지지 않는 주제다. 실제로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차등해 적용한 건 제도 도입 첫해인 1988년뿐이었다. 먼저 최저임금의 구분 적용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외국인력을 염두에 두었다고 해도 돌봄 업종 전체의 최저임금을 낮추는 것은 내국인 돌봄 인력의 처우를 더 열악하게 만들 수 있다는 문제가 수반된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 노동계의 반응
한은의 제안에 같은 날 노동계는 ‘한은의 제안이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각각 논평을 통해 한국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해 꼬집었다.

한국노총은 “우리나라 돌봄 서비스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에 대한 근본적인 지원 정책과 대안 마련은 국가의 당연한 책무”라고 비판했고, 민주노총도 “돌봄 노동자들은 이미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에 노출돼 있다”며 “더 낮은 임금과 더 열악한 노동조건의 이주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짚었다.

# 오 시장의 반응
반면, 오세훈 서울시장은 외국인 인력에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제시한 한국은행 발표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 오 시장은 오늘(6일)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2년 전부터 제가 거론했는데 신중한 한국은행이 이런 의견을 낸 것은 그만큼 상황이 시급하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돌봄 인력 부족과 비용 가중에 따른 가계 부담, 여성 경력 단절과 저출생까지 맞물리는 국가 경제 차원의 부작용을 거론한 한은의 주장에 공감을 표하며 전향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세훈 서울시장 '시장을 무시한 정책은 필패' [사진/오세훈 서울시장 페이스북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오세훈 서울시장 '시장을 무시한 정책은 필패' [사진/오세훈 서울시장 페이스북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 시범사업 vs 제도 개선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저출생 위기가 심각하기 때문에 다양한 정책을 먼저 시도해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반대로 이를 반대하는 이들은 ‘부모가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노동시간 등 제도 개선이 먼저’라고 주장한다. 특히 아직 돌봄이 필요한 나이대의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들은 “많은 민간기업이 아직도 육아 돌봄 지원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의 빠른 추진을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약자에 대한 보호를 제공하는 데에는 최소 몇 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데, 다소 급한 속도로 정책과 제도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현 상황에 대한 다양한 입장차가 존재하기에 정책의 시행만큼이나 작은 목소리도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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