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심재민 기자 | 의사 수 부족이 지역·필수 의료의 붕괴로 이어지는 등 우려가 커지자, 정부가 내년 대학입시부터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2천명 늘리기로 했다. 이처럼 27년 만에 이뤄지는 의대 증원을 두고 의사단체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2024년 2월 7일 가장 뜨거운 이슈인 <‘의대’ 입학 정원 증원, 의사단체 ‘반발’ 정부 ‘강경’>에 관해 팩트와 함께 전달한다.

#우리나라 의사 수, 어떤 현실인가?

2021년 우리나라 임상의사 수(한의사 포함)는 인구 1천 명당 2.6명으로, OECD 전체 회원국 중 멕시코(2.5명) 다음으로 적다. OECD 평균은 3.7명이고, 오스트리아(5.4명), 노르웨이(5.2명), 독일(4.5명) 등은 우리나라의 2배 안팎 수준이다. 2020년 기준 국내 의대 졸업자는 인구 10만명당 7.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3.6명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의료 붕괴’ 위기감
이러한 의사 수 부족가 지역·필수의료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실제로 이미 지방 병원들은 의사 구인난에 허덕이고 있고, 환자들은 새벽 KTX를 타고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원정 진료'를 다니고 있다. 심지어 응급실에서 의료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응급환자를 받지 않아 환자들이 구급차를 타고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위험한 상황에 부닥치는 '응급실 뺑뺑이'도 잇따르고 있다. 특히 이른바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로 불리는 필수의료 분야를 지원하는 의사는 갈수록 줄고 있고,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쏠림이 심해지고 있다.

진료 예약 순서 기다리는 환자들 2024.2.6 [단국대병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진료 예약 순서 기다리는 환자들 2024.2.6 [단국대병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보건복지부 “의대 증원” 추진
상황이 이러자, 복지부는 지역·필수의료 위기의 중요 원인으로 의사 수 부족을 지목하고 지난 2022년 하반기 의대 증원 추진 방침을 밝힌 뒤 1년 반에 걸쳐 꾸준히 의대 증원을 추진해왔다. 특히 지난 1일 민생토론회에서 10년 뒤인 2035년도까지 1만5천명의 의사를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이 2035년 의사 수가 1만명가량 부족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여기에 취약지역의 부족한 의사 수 5천명을 더해 1만5천명의 의사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2천명 늘리기로 확정

보건복지부는 2025학년도 입시 의대 입학정원 증원 규모를 발표, 내년 대학입시부터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2천명 늘리기로 했다. 증원 규모는 올해 정원의 65.4%에 달한다. 늘어난 정원은 지방 의료를 강화하는 데 활용할 방침이다. 현재 40% 이상인 비수도권 의대의 지역인재전형 비율은 60% 이상으로 상향 조정된다.

의대 정원 확대가 제주대 의대가 신설됐던 1998년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의대 증원은 27년 만에 이뤄지는 셈이다. 당시 의대 정원은 3천507명이었으나, 2000년 의약분업 때 의사들을 달래려고 감축에 합의해 2006년 3천58명이 됐고 이후 쭉 동결되어 왔다.

복지부는 "비수도권 의과대학을 중심으로 (증원분을) 집중 배정한다"며 "추후 의사인력 수급 현황을 주기적으로 검토·조정해 합리적으로 수급 관리를 하겠다"고 밝혔다. 증원 규모는 복지부가 작년 11월 대학들을 상대로 진행한 의대 증원 수요 조사 결과(2천151∼2천847명)보다는 다소 적지만, 당초 증원 폭이 1천명대 초반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던 것을 고려하면 파격적으로 큰 수준이다.

5년 이상 유지
복지부는 2천명 늘린 정원을 5년 이상 유지할 방침을 밝혔다. 2025학년도 의대 입학생은 2031년 의대를 졸업해 의사가 되는데, 이때부터 매년 2천명씩 의사를 배출해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계획이다. 일단 의대 정원을 대폭 늘리지만, 의사인력을 충분히 확보한 후에는 인구 감소 등을 반영해 의대 정원을 다시 줄이는 등 탄력적인 조정의 가능성은 열어둔 것으로 파악된다.

의과대학 [연합뉴스 제공]
의과대학 [연합뉴스 제공]

#당장 4월 말까지 대학별 증원 규모 확정

7일 교육계에 따르면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는 의과대학을 운영하는 전국 40개 대학을 대상으로 증원 수요조사를 실시한 뒤 4월 말까지 대학별 증원 규모를 확정, 각 대학에 통보할 계획이다.

증원은 주로 비수도권대를 중심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지방 국립대를 '지역의료 거점'으로 육성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비수도권 국립대 의대의 증원 규모가 특히 클 것으로 예상되고, 정원이 40명 이하인 '미니 의대'도 큰 폭의 증원이 예상된다. 현재 국내 40개 의대 가운데 서울 8곳, 경기 3곳, 인천 2곳을 제외한 27곳이 비수도권에 자리 잡고 있다. 입학정원 50명 미만의 미니 의대는 경기, 인천과 비수도권에 모두 17곳이다.

우려도 있다
정부가 전국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2천명 늘리기로 하면서 의대 교육환경이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특히 정부가 비수도권 의대를 중심으로 증원 계획을 밝힘에 따라 이들 의대에 증원이 집중된다면 당장 교육의 질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부분의 대학이 정부에 증원 필요성을 건의하기는 했지만, 학교별로 처한 여건에 따라 강의실이나 교수진, 실습·연구시설 확충 등 교육환경 유지를 위해 당장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실제로 의대에서는 지금도 유급자가 많은 학년의 경우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자리를 잡기 힘들고, 해부용 시신이 부족해 해부학 실습이 차질을 빚는 현상이 연출되고 있다. 이 때문에 교육의 질이나 교육 부담 등을 감안해 아예 증원에 반대하는 의대 교수들도 적지 않았다는 게 대학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에 정부가 비수도권 의대를 중심으로 증원 계획을 밝힘에 따라 지역 의대들이 당장 교수 충원과 실습·연구를 위한 시설 확충에 나서야 하며, 이에 대한 정부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의사단체 반발...“집단휴진, 파업 등 예고”

의대 증원 발표에 의사단체들은 집단휴진, 파업 등 단체행동을 예고하면서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정부의 의대증원 발표가 나오자 강도 높게 비판했으며,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의대 증원을 강행하면 전공의들과 함께 총파업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파업 시 가장 파급력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회원 4천200명(전체의 28%) 대상 설문 조사에서 86%가 의대 증원 시 단체행동에 참여할 의사를 밝혔다고 엄포를 놨다.

의대정원 증원 규탄하는 대한의사협회 [연합뉴스 제공]
의대정원 증원 규탄하는 대한의사협회 [연합뉴스 제공]

#정부, ‘강경 대응’ 방침

복지부는 불법 집단휴진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 대응' 기조를 세우고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일단 의협 집행부에 대해서는 의료법 59조에 근거해 '집단행동 및 집단행동 교사 금지' 명령을 내린 상태다. 의료법 제59조에 따라 정부는 집단 휴진, 즉 집단적인 진료 거부에 나선 의료인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릴 수 있다. 명령을 위반하면 1년 이하 자격정지, 3년 이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업무개시명령 위반으로 금고 이상의 형에 처하면 지난해 개정된 의료법에 따라 의사 면허가 취소될 수 있다. 의료법에서 의료인은 모든 범죄에 대해 금고 이상의 형 선고 시 최대 10년까지 면허취소가 가능하다.

의료인이 집단으로 진료를 거부하면 의료법 외에도 응급의료법, 공정거래법, 형법상 업무방해죄 등에 따라 처벌될 수 있다.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의협 회장이 의료기관에 휴진을 강요한 데 따른 업무개시명령 및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의사 면허가 취소된 바 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7일 대한의사협회 총파업 등 의사의 집단행동에 대비하기 위해 17개 시도 보건국장 회의를 열고 비상 진료체계를 점검했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에서는 의대 증원에 따른 의사 집단행동 동향과 설 명절 연휴 응급실 운영 등 비상 진료 대책 등을 논의했다. 정부는 의사 집단행동으로 비상진료가 필요한 상황에 대비해 지자체별 비상진료대책 수립과 비상진료대책상황실 설치 등을 요청했다. 이를 통해 비상 진료 기관 현황 등 정보수집 체계를 마련하고, 응급실, 중환자실 등 필수의료에 대한 24시간 비상진료체계를 가동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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