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박진아 기자 / 디자인=김선희 proㅣ제2차 세계대전 기간 영국 국민의 중요한 상징적 지도자였으며, 대영제국이 영연방으로의 탈바꿈을 가속화하고 전후 영국이 복지국가로 전환하는 데 가장 중요한 시기의 지도자였던 사람. 입헌군주의 책임을 지키고 심한 말더듬이라는 장애를 극복함으로써 존경을 받았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아버지. 바로 ‘조지 6세’다. 

영화 <킹스 스피치>라는 작품은 ‘조지 6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는 국왕으로서 치명적인 콤플렉스인 말더듬이 증세를 겪게 되지만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를 만나 치료를 받게 되면서 말더듬증 극복에 도전한다는 내용이다. 

조지 6세는 실제 어떤 사람이었을지 함께 알아보자. 조지 5세의 차남으로 태어난 조지 6세. 그는 늘 형 에드워드 8세의 그늘 아래서 지냈다. 사실 조지 6세는 왕위에 오를 마음이 없었다. 그런데 형 에드워드 8세가 사교계 명사였던 미국인 심프슨 부인과 결혼하고 왕위를 포기함에 따라, 그는 떠밀리다시피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에드워드 8세의 폐위는 전격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조지 6세는 3주간의 간단한 준비 후에 공식적인 행사에 들어가야만 했다. 갑작스럽게 왕이 된 그는 모든 것에 대해 신중할 수밖에 없었는데. 정치를 할 때도 한 가지씩 시험 대상에 올려놓고 얼마간 지켜본 후 결정을 내리는 신중함을 보이곤 했다.

조지 6세 재위 당시 유럽에는 전체주의 세력 파시즘과 나치즘이 팽배해 있었고 독일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가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부각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동의하지 않았던 조지 6세는 전쟁의 조짐이 보이자 대내외 정치에서 평화를 우선 원칙으로 삼는다. 그리고 영국에서 유화정책과 평화를 내세우는 ‘네빌 체임벌린’이 수상이 되자 그를 지지한다. 

그러나 독일의 움직임은 평화 쪽으로 진행되지 않았고 히틀러가 끝없는 욕망의 움직임을 보이자 이때부터 조지 6세는 생각을 바꾸게 된다. 미국을 방문해 영미공조 방안을 마련하고 곧 전쟁 준비를 한 것. 그리고 방송을 통해 영국 및 영국 연방 전역에 전쟁을 선포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은 독일군의 공습 때문에 어느 전쟁 때보다 막대한 피해를 입었는데, 죽음의 위기도 있었지만 조지 6세는 버킹엄 궁전을 떠나지 않으며 국민들과 함께했고 고통 받고 있던 민중들을 만나 그들을 위로했다. 그리고 마침내 독일이 항복하자 조지 6세는 버킹엄궁에서 그 누구보다도 큰 기쁨을 표현했다. 

영화 <킹스 스피치>를 본 사람이라면 조지 6세가 말더듬이를 극복하는 과정 위주의 내용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알고보면 그는 원치 않았던 자리에서도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저버리지 않았던 훌륭한 국왕이었다. 제2차 대전의 폭격에도 궁을 떠나지 않고 국민들 곁에 남아있었던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은 지금도 영국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왕으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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