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역사상 가장 긴 시간 왕세자로 머문 윈저 왕가의 이단아

국가나 지역을 넘어 전 세계 각계각층에서 존경받는 사람들. 그런 역량을 갖춘 인재이자 국가나 기업을 ‘글로벌 리더’라고 부른다. 역사 속 그리고 현재의 시대를 이끌고 존경받는 사람들은 누가 있을까. 그들의 삶의 기록과 가치관 등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시선뉴스=양원민 기자ㅣ영국의 국왕 ‘찰스 3세’가 윤석열 대통령의 영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정부의 주요 정책을 발표하는 연설 ‘킹스 스피치’에서 윤 대통령 내외를 언급했다. 또 유럽 최대 한인타운인 뉴몰든 지역을 처음으로 방문하며 한영 수교 140주년을 맞아 한인 공동체와 소통에 나섰다. ‘찰스 3세’는 모친 엘리자베스 여왕의 오랜 재임 기간으로 일흔이 넘어서야 국왕의 자리에 앉게 됐다.

찰스 3세의 생애

영국 찰스 3세 국왕 [AFP=연합뉴스]
영국 찰스 3세 국왕 [AFP=연합뉴스]

1948년 런던 버킹엄궁에서 엘리자베스 2세의 네 자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리스-덴마크 왕실 출신의 필립 마운트배튼(Philip Mountbatten, 에든버러 공작)이다. 그의 본명은 찰스 필립 아서 조지(Charles Philip Arthur George)이며, 1952년 어머니가 엘리자베스 2세로 즉위하면서 세 살이던 해에 왕위 승계 1순위가 되었다. 1958년 왕세자인 웨일스 공(웨일스 왕자)이 되었고, 1969년 즉위식을 올려 정식으로 왕세자 자리에 올랐다.

영국 왕실 사상 최초로 일반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왕위 후계자다. 1956년 런던 힐하우스 스쿨을 시작으로 햄프셔주 침 스쿨, 스코틀랜드 고든스타운 스쿨에서 공부했다. 1967년엔 케임브리지대학교에 진학해 인류학·고고학·역사학을 전공했다. 군복무가 필수인 왕실 전통에 따라 공군사관학교와 해군사관학교에 다녔으며 1971년부터 1976년까지 해군에서 복무했다.

다이애나와 커밀라

영국 찰스 3세 국왕, 킹스 스피치[연합뉴스 제공]
영국 찰스 3세 국왕, 킹스 스피치[연합뉴스 제공]

찰스 3세는 1981년 영국 귀족 가문의 자녀 다이애나 스펜서(Diana Spencer, 1961~1997)와 결혼식을 올렸고, 이후 아들 윌리엄과 해리를 얻었다. 하지만 어릴 적 친구이자 결혼 전 연인이었던 커밀라 파커 볼스(Camilla Parker Bowles)와 계속해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다이애나비가 폭로했고, 이후 다이애나비는 영국 왕실의 이혼을 끝끝내 막으려던 엘리자베스 2세에게도 허락을 받아 1996년 이혼했다. 안타깝게도 다이애나비는 1997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2005년 찰스 왕세자는 불륜 상대였던 커밀라와 재혼한다. 커밀라는 결혼 후에도 빈 칭호를 받지 못하고 ‘콘월 공작부인’으로 불렸는데, 이는 엘리자베스 2세에게 결혼을 인정받는 조건이었다. 그러다 지난해 2월 엘리자베스 여왕의 즉위 70주년을 기념해 ‘국왕의 왕비’(The Queen Consort) 호칭을 허락했다. 하지만 이 또한 ‘배우자’(Consort)라는 호칭을 떼지 못한 것이었다. 이후 지난 5월 거행된 찰스 3세의 대관식 초청장에 ‘카밀라 왕비’(Queen Camilla)라는 호칭을 처음으로 표기하며 진짜 왕비가 되었다. 커밀라는 영국 국민에게 여전히 ‘불륜녀’로 미움받고 있으나 비호감 이미지 개선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간섭하는 왕자(Meddling Prince)

영국 현충일 행사 참석한 찰스 3세 국왕 등 왕실 인사들(로이터=연합뉴스)
영국 현충일 행사 참석한 찰스 3세 국왕 등 왕실 인사들(로이터=연합뉴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입헌군주제의 전통에 따라 영국 왕실은 현실 정치에 직접적인 의견을 표명하지 않아 왔다. 하지만 찰스 3세는 왕세자 시절 환경 문제 등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해 왔다. 특히 농업, 유전자 변형, 지구온난화, 사회적 소외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자신의 생각을 적은 편지를 정부 각료와 의원들에게 보내 논란이 됐고, 이어 ‘간섭하는 왕자’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최고령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다

김치 선물 받는 영국 찰스 3세 국왕[연합뉴스 제공]
김치 선물 받는 영국 찰스 3세 국왕[연합뉴스 제공]

2022년 9월 8일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에 따라 즉각 왕위를 계승하며 영국 역사상 최고령(74세)으로 국왕에 올랐다. 이후 2023년 5월 6일 열린 대관식을 통해 영국과 영연방 왕국의 군주로 공식 즉위했다. 이는 9살 때인 1958년 왕세자 책봉 65년 만으로, 모친 엘리자베스 여왕의 대관식 이후로 70년 만이었다.

찰스 3세의 대관식

영국 찰스 3세 국왕[AFP 연합뉴스 자료사진.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영국 찰스 3세 국왕[AFP 연합뉴스 자료사진.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대관식은 찰스 3세와 커밀라 왕비가 버킹엄 궁전을 출발하는 ‘왕의 행렬’로 시작했다. 찰스 3세 부부는 백마 6필이 이끄는 ‘다이아몬드 주빌리’ 마차에 올라 기마병들의 경호를 받으며 웨스트민스터 사원까지 행진했다. 대관식은 영국 국교회 최고위 성직자인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가 집전했으며, ‘승인·서약·성유의식·왕관 수여식·즉위’ 순서로 진행됐다.

대관식에 가장 먼저 입장하는 행렬에 국교회 외에도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유대교 등 다양한 종교 지도자들이 최초로 동참했다. 특히 여성 사제가 대관식 역사상 최초로 참석해 성경을 낭독했고, 찬송가도 영어 외에도 웨일스어, 아일랜드어 등으로 합창하는 등 다양성이 강조됐다. 물론 엘리자베스 2세 때보다 인원, 규모를 간소화했음에도 세금으로 치러지는 대관식 비용이 최소 1억 파운드(약 1,685억 원)로 추정돼 왕실 존립 반대파의 비난은 피할 수 없었다.

영국 왕실의 관행을 깨며 이단아의 면모를 보여준 ‘찰스 3세’. 여러 나라와의 수교를 공고히 하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며 선대 엘리자베스 여왕과는 조금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 찰스 3세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에 걸맞은 인물로 평가될지, 또 엘리자베스 여왕만큼 사랑받는 국왕이 될지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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