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정혜인 기자 | 전국적으로 전세사기 피해자가 속출하면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콜센터 상담원 한 사람이 연간 1만 건 넘는 상담 업무를 처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경기 안산시 일대에서 ‘깡통 빌라’ 여러 채를 사들이며 19억 원 규모의 전세사기를 벌인 공인중개사가 구속 송치되기도 했다. 2023년 11월 08일 가장 뜨거운 이슈 <전세사기 수법과 예방법들>에 관해 팩트와 함께 전달한다.

# 가장 대표적인 사기 유형, 깡통 주택

전세 사기 사건을 살펴보면, ‘깡통 주택’이나 ‘깡통 빌라’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깡통 주택은 보증금과 대출금의 총합이 집값의 80%를 넘는 집을 말한다. 매매가격의 대부분이 세입자의 보증금과 빚으로 채워져, 사실상 임대인의 몫이 거의 없다. 이럴 경우, 임대인의 집이 경매로 넘어갔을 때, 세입자의 보증금이 떼이게 된다. 경매에 넘어가지 않더라도, 계약이 끝났을 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

깡통 전세라고 해서 무조건 ‘전세 사기’는 아니다. 전세 사기는 처음부터 보증금을 가져갈 생각으로 계약한다면, 깡통 전세는 집값과 전셋값이 떨어져 기존 보증금 수준으로는 임차인을 구하지 못할 때 생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깡통전세 임대인은 사기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커졌을 때, 어떻게든 형사처벌을 피하고자 보증금을 돌려주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말한다.

부동산 전월세 매물 사진 [사진/연합뉴스 제공]
부동산 전월세 매물 사진 [사진/연합뉴스 제공]

# 무자본 갭투자 방식

지난 8일,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사기 등 혐의로 공인중개사 A(65) 씨와 중개보조원 B(39) 씨 등 2명을 지난달 26일 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주택 매입 과정에서 A씨 등에게 명의를 빌려준 혐의(부동산 실권리자 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명의대여자 15명도 불구속 송치했다.

A씨와 B씨는 2020년 10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안산시 일대 빌라와 다세대주택들을 지인 명의로 사들인 뒤 전세 계약을 맺으며 임차인 15명에게서 전세 보증금 19억 원가량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안산시 소재 공인중개사무소에서 근무했던 A씨와 B씨는 당시 빌라·다세대 주택은 매매 수요는 낮지만, 전세 수요는 높다는 것에 집중해 범행을 준비했다. 현행법상 공인중개사가 자기 소유의 건물에 대해 임대차계약을 중개할 수 없다는 점을 활용해 지인들의 명의를 빌려 주택을 매입한 뒤 중개했다.

그리고 이들은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매입을 이어갔다. 임차인들이 지불한 임대차보증금으로 주택을 매입하는 계약을 동시에 진행하며 돈을 들이지 않고 주택 소유권을 취득한 것이다. 임차인들에게는 명의대여자들이 전세 보증금을 반환할 수 있는 정상적인 임대인인 것처럼 소개했다.

A씨 등은 매매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임대차 계약을 맺으며 주택 매매 자금으로 쓰고 남은 전세 보증금 2천 만~3천만 원과 중개 수수료 등을 챙겼고, 범죄 수익금의 일부는 명의를 대여하는 대가로 대여자들에게 1인당 200만~500만 원씩 지급했다.

경기남부경찰청 전경 [사진/경기남부경찰청 제공]
경기남부경찰청 전경 [사진/경기남부경찰청 제공]

# 이중~삼중 계약 사례들

세입자의 보증금을 가로채기 위해 월세 물건에 전세계약을 하는 ‘이중계약’ 사례도 많다. 집주인과 월세계약을 한 임차인이 마치 집주인인 것처럼 새로운 세입자와 전세계약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오피스텔 관리소장이 대리인 행세를 하며 보증금 차액을 가로챈 일도 있었다. 한 오피스텔 관리소장은 임대차 계약 위임장을 허위로 작성한 뒤 대리인 행세를 하며 오피스텔 임차인과 전세 계약을 맺고, 임대인에게는 월세 계약인 것처럼 속여 보증금 차액을 가져갔다.

동일물건 이중~삼중 계약 사기는 서류 검토를 꼼꼼히 해도 당할 수 있다. 동일물건 다중 계약은 하나의 임대물건에 2인 이상의 세입자와 각각 전세 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 피해자들은 이사 당일에 계약한 집에 다른 세입자가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기도 한다. 공인중개사와 집주인이 함께 공모해 여러 명의 세입자와 각각 전세계약을 체결하고, 그 보증금을 가지고 잠적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여러 피해자가 생긴다.

부동산 간판 [사진/연합뉴스 TV 캡처]
부동산 간판 [사진/연합뉴스 TV 캡처]

# 전세보증보험으로 보증금 회수될까

속출하는 깡통전세 사기 예방법 중 하나로 전세보증금의 반환을 책임져 주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금반환보증’ 가입이 꼽힌다. 전세금반환보증에 가입한 세입자가 계약 기간이 만료되었음에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HUG는 집주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하거나, 집주인 대신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먼저 돌려준다. 그리고 이를 회수하기 위해 해당 주택을 강제 경매에 부친다.

그런데 이는 또 다른 문제를 안고 있다. 바로 경매 낙찰자가 없으면, 돈이 바로 회수되지 못하고, 회수되더라도 전체를 회수하지 못하게 된다.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강제경매된 강서구 A 빌라는 경매가 15차례나 유찰되면서 감정가격이 대폭 하락했는데도 보증금 부담으로 인해 낙찰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HUG는 새 주인을 찾기 위해 보증금의 72.1%만 회수하는 결정을 해야 했다. 이에 따라 HUG는 4천만 원이 넘는 금액의 손실을 보게 되었다.

HUG가 지난달 31일 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전세보증보험 출시 이후 경매 실행 세부내역’ 자료에 따르면, HUG는 전세보증이 나온 2013년 9월부터 올해 8월 말까지 대위변제액을 회수하기 위해 경매에 넘긴 주택이 총 4,622채였다. 이 가운데 낙찰된 주택은 1,221채로 전체의 26.4%뿐이었다. 낙찰 후 금액을 회수하는 데에도 평균 1년 반 이상의 긴 시간이 걸렸다.

전세사기 피해자들 [사진/연합뉴스 제공]
전세사기 피해자들 [사진/연합뉴스 제공]

# 늘고 있는 HUG의 손실

전셋값이 한창 치솟았던 시기의 보증금을 HUG에 돌려줘야 하기에 빨리 낙찰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전세사기로 신규 전세보증 수요도 폭증하고 있어 HUG 손실은 더욱 가파르게 늘어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HUG 부실이 세금으로 메울 수밖에 없기에 악성 임대인들의 전세사기로 국민 혈세가 축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HUG가 경매로 넘긴 주택 중 악성 임대인이 소유한 주택은 10채 중 7채가 넘지만, 악성 임대인으로부터는 일반 임대인보다도 더 적게 돌려받고 있다. 이는 악성 임대인이 전세사기 등을 목적으로 보증금을 시세 대비 높게 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홍 의원은 “HUG의 전세보증 대위변제가 늘면서 올해 상반기(1∼6월) 순손실(1조 3,281억 원)은 지난해 동기 대비 7배 이상 급증했다”라며 “손실을 줄이기 위한 보증료율 현실화 및 차등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고 전했다.

전세사기 관련 상담 [사진/연합뉴스 제공]
전세사기 관련 상담 [사진/연합뉴스 제공]

# 빌라 기피 현상

정부는 지난 5월부터 전세 사기를 막기 위해 반환보증보험 가입 요건을 강화했다. 정부는 전세금반환 보증보험 가입 요건을 기존 공시가격의 150%에서 지난 5월 1일부터 공시가격의 140%, 주택 가격의 90%로 변경하며 공시지가의 126%까지만 전세 보증이 가능해졌다. 이는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빌라 기피 현상을 가속화하고 있다.

아파트 거래 비중이 빌라 거래 비중보다 월등히 높아지자, 정부는 몇 가지 대책을 마련했다. 비아파트에 대한 건설자금·보증 지원을 확대하고, 청약에서 무주택자로 간주하는 소형주택 범위를 확대하는 등이었다. 이를 통해 시공 기간이 짧은 빌라나 오피스텔을 빠르게 짓도록 유도해 전체 주택 공급량을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다. 그렇지만 부동산 업계 종사자들은 ‘비아파트 시장의 수요를 살릴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 [사진/연합뉴스 제공]
전세사기 피해자들 [사진/연합뉴스 제공]

# 공인중개사 의무 강화

전세 사기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국토교통부는 ‘공인중개사 의무 강화’라는 조치를 취했다. 국토부는 공인중개사의 중개대상물에 대한 확인과 설명 의무를 강화하는 내용의 공인중개사법 하위법령 개정안을 다음 달 18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이는 이르면 내년부터 적용된다.

개정안에 따르면, 공인중개사는 집주인의 세금 체납과 해당 주택에 선순위 세입자가 있는지를 임차인에게 반드시 설명해야 한다. 공인중개사들이 임차인의 보증금 보호에 필수적인 정보를 누락하거나 잘못 안내한 사례가 다수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원룸이나 오피스텔 같은 소형주택 관리비에 포함된 전기료나 수도료, 인터넷 사용료 등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 이는 집주인들이 세를 인상하기 위해서 관리비를 높여서 받는 편법을 막기 위함이다. 그리고 임차 주택 현장을 안내한 사람이 중개 보조원인지 또 개업 공인중개사인지도 명시해야 한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제공]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제공]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이번 개정은 임대차 계약 중개 시 안전한 거래를 위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해 전세사기와 같은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고 학생, 직장인들이 다수 거주하는 소형주택의 관리비도 보다 투명하게 하려는 것“이라며 ”특히 임대차 계약 시 주요 확인 사항에 대해 중개사와 거래당사자가 별도 서명토록 한 만큼 중개사고 및 분쟁예방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사전에 각종 서류들을 검토했는데도 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있었기에, 이번 개정안이 꾸준히 기승부렸던 ‘전세사기’ 문제를 진화할 수 있을지는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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