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조재휘] 평범한 일상일 수도, 특별한 날일 수도 있는 오늘, 10년 전 오늘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10년 전의 이슈를 통해 그날을 추억하고 반성해 보는 시간을 가져본다.10년 전 오늘인 2011년 4월 22일에는 고등학교에서 선택과목이었던 한국사가 2012년부터는 필수과목으로 바뀌게 됐습니다.교육과학기술부와 국사편찬위원회, 역사교육과정개발추진위원회는 22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고교 선택과목인 한국사를 필수과목화하는 내용의 ‘역사 교육 강화 방안’을 공동 발표했습니다.이에 따라 전국 모든 고교생은 졸업 때까지 총 85시간
제4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 코로나19 여파로 지난 2월 8일 제46회 이후 5개월여 만인 27일 10시부터 진행됐다.제4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앞두고 국사편찬위원회는 응시자에게 입실 시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 및 발열 검사 등 협조를 당부했다. 또 코로나19 의심 증상이 있거나 격리 대상자인 경우 시험에 응시할 수 없다. 또한 시험 중 고열이나 기침 등을 지속할 경우 퇴실당할 수 있다고도 명시했다.한편 코로나19 확산 예방 및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국사편찬위원회는 취업, 승진, 진학 등 시험성적이 꼭 필요한 경
[시선뉴스 박진아 / 디자인 최지민] 임진왜란 때 바다를 거느리며 전쟁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명장이 있습니다. 바다에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일본군들을 제압하며 수도가 함락되는 위기에 처한 전쟁의 양상을 바꾸는 역할을 하기도 했죠. 전쟁에서 뛰어난 리더십과 전술가로서의 능력을 보여줬으며, 에서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 영웅. 바로 충무공 이순신입니다. 이순신은 어려서부터 무인의 길에 뜻이 있어, 늦은 나이임에도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고 서른두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무과에 급제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45세가 되어
[시선뉴스 이호 / 디자인 김미양]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는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고조선이 성립하게 된다. 이후 철기를 사용하면서 발전을 하였으나 기원전 108년 한 무제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게 되고 부여, 고구려, 삼한 등 여러 나라가 등장하게 된다.일본 지역은 조몬 시대가 열렸다. 신석기와 조몬 토기와 간석기를 사용했고 농경이 시작됐으나 수렵과 채집이 중심이었다. 그리고 대륙과 한반도에서 벼농사와 청동기, 철기가 전파되면서부터 여러 소국이 등장하게 되었다.고대 인도에는 불교와 자이나교가 등장하였다. 크샤트리아와 바이샤 계급이 성
[시선뉴스 심재민 / 디자인 김미양] 지난 13일 교육부는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기본계획’을 확정 및 발표하였다. 2018년 8월 발표된 ‘2022학년도 대학입학제도 개편방안’에 따라 국어, 수학, 직업탐구 영역 과목구조가 개편되었고, 제2외국어/한문 영역 절대평가 전환 등이 반영되었다. 이번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기본계획은 현재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해당된다.★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방안 주요 내용- 국어·수학·직업탐구 ‘공통+선택’ 구조- 사회·과학탐구 계열 구분 없이 최대 2과목 선택- 수학 및 과학
[시선뉴스 이호 / 디자인 김미양] 90년대 처절한 ‘고난의 행군’을 겪은 북한은 2000년 조선노동당 창건 55주년을 기념하며 고난의 행군이 끝났다고 선언했다.그러나 이는 민심을 달래기 위한 선언일 뿐 결코 경제 사정은 그렇지가 않았다.북한은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2002년 7.1 조치 도입으로 장마당을 경제의 주체로 공식적으로 인정하여 사실상의 가격자유화 조치를 취해 시장경제 체제를 일부 도입하였다. 또한 2005년 배급 정상화를 선언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모색해 봤지만 이미 무너진 기반을 세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게다가 GDP
인천광역시 교육청이 주관하는 2019년 7월 모의고사가 10일 오전 실시됐다. 이번 모의고사는 시·도 교육청이 출제하는 것으로, 평가원이 주관한 지난 6월 모의고사와 비교해 수능 출제 방향 및 난이도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평이다.오늘 모의고사는 재수생을 제외하고 현역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만을 대상으로 치러졌다. 또한 직업탐구와 제2외국어는 시험 과목에 포함되지 않았다.이날 모의고사 진행 시간표는 1교시 국어영역(8:40~10:00) - 2교시 수학영역(10:30~12:10) - 3교시 영어영역(13:10~14:20) - 4교시 한국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2020학년도 수능시험 시행 세부계획을 7일 공고했다.올해 11월 14일로 예정된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지난해와 같은 형식으로 치러지며 수능 응시원서 접수 기간은 8월 22일부터 9월 6일까지 12일간이다.성적통지표는 12월 4일까지 배부될 예정이다. 재학생은 재학 중인 학교에서, 졸업생이나 검정고시생 등은 원서를 낸 기관에서 받으면 된다.졸업생·검정고시생 편의를 위해 재학생을 제외한 모든 수험생은 수능 성적 온라인 제공 사이트에서 성적통지표를 발급받을 수 있다.수험생이 시험장에서 휴대할 수 있는 물품은 검은색 컴퓨
[시선뉴스 이호 / 디자인 김미양] 북한의 경제는 80년대 들어서면서 급격하게 기울게 된다. 70년대부터 진행되었던 당과 군 경제의 분리는 더욱 가속화 되어 북한의 대부분의 자원들이 당과 군 경제에 투입되었다. 그 결과로 민간 경제의 비율이 축소되며 경제가 침체되기 시작했고 1인 독재 체재의 강화로 인해 사회적 분위기 역시 크게 경직되어갔다.게다가 북한에 사상적, 물질적으로 지원을 해주던 소련 역시 계획경제의 한계로 인해 경기가 침체되기 시작하면서 사회주의 국가들이 전반적으로 불황을 맞이하였다.석유파동과 더불어 외채에 시달리기 시작
[시선뉴스 이호 / 디자인 김미양] 북한은 1970년대 초반부터는 소련을 본받아 농업의 기계화를 추진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소련에게 기술 이전을 받으려 했지만 소련은 1960년대 중반부터 기술 유출을 통제하는 정책을 시행하였기 때문에 어렵게 되었다.이에 북한은 농기계 개발을 자력으로 하게 되어 조선형 트랙터를 개발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이런 노력을 통해 북한은 농업 생산량이 북한 내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었고 어획량도 많아 명태를 무상으로 배급할 수 있었다. 또한 북한의 풍부한 자원을 수출하여 고급스러운
[시선뉴스 이호 / 디자인 김미양] 김정일은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하자 3년간의 유훈통치(遺訓統治)를 하겠다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발표와는 달리 사실상의 통치권자가 되었다.김정일은 김일성을 공화국의 영원한 주석으로 추대하여 사실상의 국가주석직을 폐지하고 명목상의 국가원수직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맡게 하되, 김정일 본인은 군사권을 장악한 국방위원장으로 실권을 행사하였다.김정일은 폐쇄적인 정책을 고수했던 1990년대 동구권의 몰락을 목격하면서 나진, 선봉의 무역지구를 대폭 확대하고 개성직할시 내의 개성공단과 함경남도 원산 등의
[시선뉴스 이호 / 디자인 김미양] 김정일은 세계 최악의 지도자 중 둘째가라고 하면 서러운 존재다.자신의 독재체제를 정치범을 처단했고 자유를 빼앗았으며 끔찍하게 인권을 탄압했다.또한 김정일이 권력을 잡기 시작하면서 북한은 극단적인 테러리즘 국가가 되었고 이런 행동들은 냉전이 종식되어 미국을 중심으로 재편된 세계정세에서 북한을 고립되게 만들었다.사회주의를 채택했던 동구권의 국가들이 경제체계의 한계를 느껴 인센티브제도를 도입해 생산성 향상을 꾀하는 1980년대에도 북한은 체재보장에 방해가 될까 두려워 협동농장을 유지했다.그 결과 농업생
[시선뉴스 이호 / 디자인 김미양] 1980년대는 김일성에 이은 권력의 대물림을 위한 준비를 해나가는 시기였다. 특히 후계자였던 김정일을 숭배하게 하는 작업에 몰두하였는데, 북한은 1987년부터 김정일이 백두산의 비밀아지트에서 탄생했다고 선전하기 시작했다.이후 1990년 5월에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9기 1차회의에서 확대 개편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고, 1991년 12월에는 김일성이 맡고 있던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추대되었다.이어 1993년 4월에는 ‘군사주권의 최고지도기관’으로 격상된 국방위원회 위원장에 취임하는
[시선뉴스 이호 / 디자인 김미양] 1970년을 전후하여 북한은 강경노선을 완화하고 경제건설과 대남 정책의 실패를 물어 빨치산세력 중 강경파를 숙청하고 실무형 관료와 혁명 2세대를 등장시켰다.1972년 김일성 족벌체제가 출범한 가운데 안으로는 김일성의 권력을 무한대로 높이기 위해 ‘인민민주주의헌법’을 개정하여 ‘사회주의 헌법’을 제정하였다.남한에서 10월 유신이 이루어진 것에 대한 대응하여 내각 수상을 주석으로 바꾸고 주석에 직속된 ‘중앙인민위원회’에 행정과 입법, 사법의 모든 권력을 집중시켜 세계적으로 역사상 유례없는 절대권력을
[시선뉴스 이호 / 디자인 김미양] 1960년대 남한은 한·일협정(1965)으로 한·미·일 안보체제가 구축되었다. 또한 베트남 파병 후 국군의 전력이 크게 강화되는 시점이었다.이와 반대로 북한은 소련·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국제적으로 고립상태에 되었다. 소련은 수르시초프(1958~1964)가 등장하여 스탈린 노선이 비판되고 수정주의와 평화공존이 추구되자 이에 위협을 느끼게 되었고 중국 역시 ‘문화대혁명(1966~68)’이 일어나 김일성을 수정주의자, 독재자로 비난하면서 양국관계가 악화되었다.그리고 1968년 미국 군함 푸에블로호가
[시선뉴스 이호 / 디자인 김미양] 북한은 전후 복구와 자립적 민족 경제 확립을 목표로 하여 1954년부터 ‘경제부흥 3개년계획’과 1957년부터 ‘1차 5개년계획’을 중공업과 경공업의 병진 정책을 시행하였다.1957년 북한은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구호를 내걸고 천리마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운동은 생산노동에 참여하여 성적이 좋은 사람을 영웅으로 높여 대중의 생산경쟁을 유도하였다. 이를 통해 대중적 영웅주의와 생산에서의 집단 혁신운동을 경제발전의 추동력으로 이용하였다.1958년에는 3대 혁명운동을 전개
[시선뉴스 이호 / 디자인 김미양] 6·25전쟁을 거치면서 김일성과 노동당의 독재가 더욱 강화되었다.북한 정권이 처음 수립될 당시에는 당이나 내각에 계파가 다른 공산주의자들이 다양하게 존재했었다. 하지만 전쟁을 치르면서 김일성계를 제외한 다른 계파의 인물들이 차례로 제거되기 시작했다.1950년 12월 연안파의 무정이 전쟁 기간 중 평양 사수 실패의 책임을 물어 숙청되었고1951년 11월 소련계의 대표적인 인물인 당 중앙위원회 비서 허가이가 전쟁기간 중 당 조직 운영의 실패를 이유로 비서직에서 해임됐다. 그는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
[시선뉴스 이호 / 디자인 김미양] 1946년 4월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이 ‘북조선공산당’으로 개칭되어 서울에 본부를 둔 ‘조선공산당’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독자적인 조직이 되었다.1946년 6월 24일 노동법령, 1946년 7월 30일 남녀평등권법령을 시행한 이후 ‘중요산업 국유화법령(1946. 08. 10)을 발표하여 일본인 흑인 민족반역자가 소유하던 기업소, 광산, 산림, 어장, 발전소, 철도, 운소, 체신, 은행, 상업, 문화관계 산업 등을 국유화시켰다. 이는 전체 산업의 90%를 차지했으며 나머지 소규모의 개인 수공업과
[시선뉴스 이호 / 디자인 김미양] 1945년 12월 17일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제3차 확대집행위원회를 통해 김일성이 공식적으로 전면에 나섰고 당이 통일된 조직체계에 의해 운영되기 시작했다.김일성은 소련군의 지원을 받고 더불어 기독교도가 많은 우파세력이 계속적으로 남한으로 내려와 저항세력이 미약했기에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다. 특히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조선독립동맹(속칭 연안파)’과 그 산하군대인 ‘조선의용군’이 무장해제를 당한 후 1946년에 뒤늦게 귀국해 주도권을 발휘할 수 없었고 중국공산당과 가까웠던 점 때문에 소련의
[시선뉴스 이호/디자인 김미양] 북한 정권은 해방이 될 무렵 소련의 점령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945년 8월 조만식 등 민족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평양에서 평남건국준비위원회가 조직되어 각지에 건국준비조직을 결성하고 자치활동을 전개하였다.1945년 8월 9일 소련군은 해방이 되기 이전, 만주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치르면서 이미 두만강을 건너북한에 진주하였고 1945년 8월 24일 평양에 치스차코프를 사령관으로 하는 사령부를 설치하였다. 하지만 소련군은 군정을 통한 직접통치를 피하고 각 지방별로 좌우합작의 ‘인민위원회’를 조직하여 자치를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