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 / 디자인 김미양] 1960년대 남한은 한·일협정(1965)으로 한·미·일 안보체제가 구축되었다. 또한 베트남 파병 후 국군의 전력이 크게 강화되는 시점이었다.

이와 반대로 북한은 소련·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국제적으로 고립상태에 되었다. 소련은 수르시초프(1958~1964)가 등장하여 스탈린 노선이 비판되고 수정주의와 평화공존이 추구되자 이에 위협을 느끼게 되었고 중국 역시 ‘문화대혁명(1966~68)’이 일어나 김일성을 수정주의자, 독재자로 비난하면서 양국관계가 악화되었다.

그리고 1968년 미국 군함 푸에블로호가 북한 연안을 정탐하다가 나포된 사건은 북한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에 무장투쟁의 경력을 가진 갑산파(조국광복회)는 60년대부터 국방건설 정책을 최우선으로 하여 전인민의 무장화, 전국토의 요새화, 전군의 간부화, 전군의 현대화라는 4대 군사노선을 채택하여 군수공업발전에 박차를 가해 북한사회 전체를 병영으로 개편하였다.

이렇듯 북한의 국방비 비중이 국가 재정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높아지자 경제발전은 급속도로 둔화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1967년 박금철, 이효순 등 이른바 갑산파가 국방건설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부르주아 수정주의 사상으로 규탄받고 숙청되었다.

이리하여 북한은 김일성파의 독무대가 되어 버렸다. 남한에서 이승만의 권력이 강화되는 것과 북한에서 김일성의 권력 강화는 서로 병행하면서도 극단적인 대결구도를 구축하였고 전후 복구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김일성파는 위기 돌파 목적으로 김일성과 노동당의 독재를 강화하기 위해 이른바 ‘주체노선’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주(정치), 자립(경제), 자위(국방)을 강조하였고 김일성과 노동당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김일성 우상화와 김일성 가계의 성역화가 추진되었으며 김일성의 ‘교시’가 등장하였다. 이런 일련의 행위들은 고전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가 크게 수정된 것을 의미하였다.

북한은 1960년 12월 경제개발 7개년계획을 발표하여 “사회주의적 공업화를 실현하고 인민경제의 모든 부문을 현대적 기술로 꾸리고 모든 인민의 물질생활수준을 결정적으로 높여 사회주의의 높은 봉우리를 점령”할 것을 제시하였다.

그리하여 1961년부터 시작된 7개년계획 기간에 공업총생산은 3.2배, 알곡은 연 600만 톤 생산, 국민소득은 2.7배 성장, 그리고 무료교육·무상치료 등의 과제를 완수함으로써 사회주의 공업국가로서의 도약에 대한 청사진을 그렸다.

※본 기사는 청소년들에게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 시선뉴스를 구독하는 구독자들에게 한국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제작되는 기획기사입니다. 본 기사는 사실적인 정보만 제공하며 주관적이거나 아직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사건의 정보 등에 대해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혹은 해당 사실을 정확히 명시)을 원칙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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