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 / 디자인 김미양] 1994년 북한에서 신과 같은 존재로 만들어 버렸던 김일성이 사망하면서 북한은 전반적으로 마비상태에 빠지게 된다. 게다가 1993년 제3차 7개년 계획이 실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새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할 여력도 없었다.게다가 소련과 중국, 동구권 국가들의 탈 공산화로 인해 무역상대국조차 줄어들었고 결정적으로1994년과 1995년 연이어 대홍수가 발생해 국제와 사회, 그리고 자연조차 북한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주었다.문제는 김일성의 사망이었다. 대홍수가 발생한 것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역량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김일성 주석 사망 25주기인 오늘(8일)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이날 조선중앙통신은 "김일성 동지 서거 25돌에 즈음하여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이신 절세위인을 사무치게 그리며 추모하는 인민의 충정이 조국강산에 더욱 뜨겁게 차넘치고 있다"라며 "김정은 동지께서 민족 최대의 추모의 날인 7월 8일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으셨다"라고 밝혔다.김 위원장은 금수산태양궁전에 있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입상에 경의를 표한 뒤 두 사람의 시신이 안치된 영생홀을 방문했다. 이날 참배에는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시선뉴스 이호 / 디자인 김미양] 1990년대 북한은 80년대부터 차곡차곡 쌓였던 경제 위기 조짐이 실체화 되는 시기였다.1989년 폴란드의 첫 자유총선에서 자유노조가 압승하는 것을 시작으로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몰락이 이루어졌으며 소련이 붕괴되었다.북한은 실질적으로 소련과 중국에 의존하는 상태였는데 소련은 물론이고 중국 역시 덩샤오핑의 주도로 개혁개방이 이루어져 북한의 대외시장은 사실상 고립되었다.주요 교역국이었던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자본주의로 노선을 변경하면서 혼란에 빠져 북한은 산업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나 생산재의
[시선뉴스 이호 / 디자인 김미양] 북한의 경제는 80년대 들어서면서 급격하게 기울게 된다. 70년대부터 진행되었던 당과 군 경제의 분리는 더욱 가속화 되어 북한의 대부분의 자원들이 당과 군 경제에 투입되었다. 그 결과로 민간 경제의 비율이 축소되며 경제가 침체되기 시작했고 1인 독재 체재의 강화로 인해 사회적 분위기 역시 크게 경직되어갔다.게다가 북한에 사상적, 물질적으로 지원을 해주던 소련 역시 계획경제의 한계로 인해 경기가 침체되기 시작하면서 사회주의 국가들이 전반적으로 불황을 맞이하였다.석유파동과 더불어 외채에 시달리기 시작
[시선뉴스 이호 / 디자인 최지민] 시선뉴스에서 매주 전하는 시사상식 노트7. 하루에 하나씩 딱 7가지의 상식만 알아두어도 당신은 스마트한 현대인이 될 수 있습니다. 2019년 6월 셋째 주 시사상식 모음입니다.1. BTS 월드전 세계를 열광하게 하는 월드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 그들의 뜨거운 인기를 바탕으로 게임까지 개발되어 많은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넷마블이 세계 시장에 출시를 앞둔 ‘BTS 월드’가 그 주인공입니다. BTS 월드(BTS WORLD, 개발사 테이크원컴퍼니)는 그룹 방탄소년단의 매니저가 되어 글로벌
[시선뉴스 심재민, 김아련 / 디자인 이연선] 김정은 위원장의 신뢰를 받고 있는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한 달 넘게 공식석상에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해 여러 추측들이 제기되고 있다. 김 부부장은 그동안 공식석상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가장 최측근에서 그림자처럼 업무를 수행해 왔기에 그 의혹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김여정 제1부부장은 김정은 위원장과 남매 관계로 김정일의 세 번째 부인인 재일교포 출신 무용수 고용희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김 위원장의 하나뿐인 여동생이자 백두혈통으로 불린다.백두혈통이란 북한에서 김일성의 직계 가
[시선뉴스 이호/디자인 김미양] 2011년 12월 17일 김정은이 사망하면서 그의 차남인 김정은이 권력을 세습하게 된다. 이로써 김정은은 역사상 전대미문인 3대 권력 세습에 성공하게 된다.김정은은 김정일과 고용희 사이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은 크게 드러난 것이 많지 않았고 장남인 김정남에 비해 외부에 드러나는 일도 거의 없었다.청소년기에는 유럽 스위스의 수도 베른에서 ‘박운’이라는 가명을 사용하여 유학생활을 외국문물을 많이 접하기도 하였다.김정은은 김정일이 사망하기 2~3년 전부터 등장하여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했다.
[시선뉴스 이호 / 디자인 김미양] 김정일은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하자 3년간의 유훈통치(遺訓統治)를 하겠다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발표와는 달리 사실상의 통치권자가 되었다.김정일은 김일성을 공화국의 영원한 주석으로 추대하여 사실상의 국가주석직을 폐지하고 명목상의 국가원수직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맡게 하되, 김정일 본인은 군사권을 장악한 국방위원장으로 실권을 행사하였다.김정일은 폐쇄적인 정책을 고수했던 1990년대 동구권의 몰락을 목격하면서 나진, 선봉의 무역지구를 대폭 확대하고 개성직할시 내의 개성공단과 함경남도 원산 등의
[시선뉴스 이호 / 디자인 김미양] 김정일은 세계 최악의 지도자 중 둘째가라고 하면 서러운 존재다.자신의 독재체제를 정치범을 처단했고 자유를 빼앗았으며 끔찍하게 인권을 탄압했다.또한 김정일이 권력을 잡기 시작하면서 북한은 극단적인 테러리즘 국가가 되었고 이런 행동들은 냉전이 종식되어 미국을 중심으로 재편된 세계정세에서 북한을 고립되게 만들었다.사회주의를 채택했던 동구권의 국가들이 경제체계의 한계를 느껴 인센티브제도를 도입해 생산성 향상을 꾀하는 1980년대에도 북한은 체재보장에 방해가 될까 두려워 협동농장을 유지했다.그 결과 농업생
[시선뉴스 이호 / 디자인 김미양] 1980년대는 김일성에 이은 권력의 대물림을 위한 준비를 해나가는 시기였다. 특히 후계자였던 김정일을 숭배하게 하는 작업에 몰두하였는데, 북한은 1987년부터 김정일이 백두산의 비밀아지트에서 탄생했다고 선전하기 시작했다.이후 1990년 5월에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9기 1차회의에서 확대 개편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고, 1991년 12월에는 김일성이 맡고 있던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추대되었다.이어 1993년 4월에는 ‘군사주권의 최고지도기관’으로 격상된 국방위원회 위원장에 취임하는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이 16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전망과 과제'를 주제로 한 한국국방연구원의 '2019년 안보학술세미나' 기조강연을 통해 냉전시대가 끝났고 "김대중-김정일, 노무현-김정일 시대와 비교해볼 때 대화 상대가 바뀌었다"며 북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주체사상을 갖고 있었다면 "김정은(국무위원장)은 자유민주사상에 접근한 상태"라고 말했다.이에 이언주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송 전 장관은) 도대체 자유사상이 무엇이라고 알고 있나. 신임 백두칭송위원
송영무, "김정은, 자유사상 접근“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은 16일 북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주체사상을 갖고 있었다면 "김정은(국무위원장)은 자유민주사상에 접근한 상태"라고 말했다. 송 전 장관은 이날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전망과 과제'를 주제로 한 한국국방연구원의 '2019년 안보학술세미나' 기조강연에서 "이제는 우리가 한국전쟁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때가 된 것 같다"며 이같이 밝혔다. 송 전 장관은 과거 북한은 구소련으로부터 군수물자를 지원받았지만, "현재 김정은
[시선뉴스 이호 / 디자인 김미양] 1970년을 전후하여 북한은 강경노선을 완화하고 경제건설과 대남 정책의 실패를 물어 빨치산세력 중 강경파를 숙청하고 실무형 관료와 혁명 2세대를 등장시켰다.1972년 김일성 족벌체제가 출범한 가운데 안으로는 김일성의 권력을 무한대로 높이기 위해 ‘인민민주주의헌법’을 개정하여 ‘사회주의 헌법’을 제정하였다.남한에서 10월 유신이 이루어진 것에 대한 대응하여 내각 수상을 주석으로 바꾸고 주석에 직속된 ‘중앙인민위원회’에 행정과 입법, 사법의 모든 권력을 집중시켜 세계적으로 역사상 유례없는 절대권력을
[시선뉴스 이호 / 디자인 김미양] 1960년대 남한은 한·일협정(1965)으로 한·미·일 안보체제가 구축되었다. 또한 베트남 파병 후 국군의 전력이 크게 강화되는 시점이었다.이와 반대로 북한은 소련·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국제적으로 고립상태에 되었다. 소련은 수르시초프(1958~1964)가 등장하여 스탈린 노선이 비판되고 수정주의와 평화공존이 추구되자 이에 위협을 느끼게 되었고 중국 역시 ‘문화대혁명(1966~68)’이 일어나 김일성을 수정주의자, 독재자로 비난하면서 양국관계가 악화되었다.그리고 1968년 미국 군함 푸에블로호가
[시선뉴스 이호 / 디자인 김미양] 6·25전쟁을 거치면서 김일성과 노동당의 독재가 더욱 강화되었다.북한 정권이 처음 수립될 당시에는 당이나 내각에 계파가 다른 공산주의자들이 다양하게 존재했었다. 하지만 전쟁을 치르면서 김일성계를 제외한 다른 계파의 인물들이 차례로 제거되기 시작했다.1950년 12월 연안파의 무정이 전쟁 기간 중 평양 사수 실패의 책임을 물어 숙청되었고1951년 11월 소련계의 대표적인 인물인 당 중앙위원회 비서 허가이가 전쟁기간 중 당 조직 운영의 실패를 이유로 비서직에서 해임됐다. 그는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
[시선뉴스 이호 / 디자인 김미양] 1946년 4월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이 ‘북조선공산당’으로 개칭되어 서울에 본부를 둔 ‘조선공산당’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독자적인 조직이 되었다.1946년 6월 24일 노동법령, 1946년 7월 30일 남녀평등권법령을 시행한 이후 ‘중요산업 국유화법령(1946. 08. 10)을 발표하여 일본인 흑인 민족반역자가 소유하던 기업소, 광산, 산림, 어장, 발전소, 철도, 운소, 체신, 은행, 상업, 문화관계 산업 등을 국유화시켰다. 이는 전체 산업의 90%를 차지했으며 나머지 소규모의 개인 수공업과
[시선뉴스]TV속 만화를 보듯 쉽고 편하게 풍자하는 '시선만평'(기획- 이호 / 일러스트-김미양)지난 7일 북한 평양 동쪽 미림 열병식훈련장에 군용 차량 217대와 초경량 무인기 10대가 집결되어 있는 모습이 인공위성 사진에 포착돼 김일성 생일(4월15일) 또는 '조선인민혁명군' 창설일(4월25일)을 기념하는 열병식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되었습니다.전문가들은 북한의 단계별 열병식 준비 상황에 비춰 두 무리로 나뉘어 있는 217대 가량의 군용 차량의 집결 상태는 초기 준비 단계라고 주장
[시선뉴스 이호 / 디자인 김미양] 1945년 12월 17일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제3차 확대집행위원회를 통해 김일성이 공식적으로 전면에 나섰고 당이 통일된 조직체계에 의해 운영되기 시작했다.김일성은 소련군의 지원을 받고 더불어 기독교도가 많은 우파세력이 계속적으로 남한으로 내려와 저항세력이 미약했기에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다. 특히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조선독립동맹(속칭 연안파)’과 그 산하군대인 ‘조선의용군’이 무장해제를 당한 후 1946년에 뒤늦게 귀국해 주도권을 발휘할 수 없었고 중국공산당과 가까웠던 점 때문에 소련의
[시선뉴스 이호/디자인 김미양] 북한 정권은 해방이 될 무렵 소련의 점령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945년 8월 조만식 등 민족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평양에서 평남건국준비위원회가 조직되어 각지에 건국준비조직을 결성하고 자치활동을 전개하였다.1945년 8월 9일 소련군은 해방이 되기 이전, 만주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치르면서 이미 두만강을 건너북한에 진주하였고 1945년 8월 24일 평양에 치스차코프를 사령관으로 하는 사령부를 설치하였다. 하지만 소련군은 군정을 통한 직접통치를 피하고 각 지방별로 좌우합작의 ‘인민위원회’를 조직하여 자치를 하
[시선뉴스 홍지수 / 구성 : 심재민 선임기자, 조재휘 기자]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 사회의 뜨거운 이슈를 다각적으로 살펴보는 이슈체크입니다.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2차 핵 담판이 두 주인공의 하노이 도착과 함께 카운트다운에 들어갔습니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26일 개최지인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했는데요. 오늘 이슈체크에서는 양 정상의 하노이 도착 과정과 북미정상 회담의 주변국들의 반응을 살펴보겠습니다.먼저 첫 번째 이슈체크에서 양 정상의 하노이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