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문선아]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로 시작되는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라는 시를 읽다보면 지금처럼 스산한 가을 그리운 이에게 편지 한 통 쓰고 싶어진다.

다양한 디자인으로 나오는 지금의 편지지처럼 ‘선비의 나라’로 불리던 조선시대에도 선비들이 편지를 쓸 때 사용했던 종이가 있었는데, 바로 ‘시전지’다. ‘시전지’라 불리는 이 종이는 시나 편지를 쓰기 위해 별도로 만든 무늬가 있는 종이로 17세기 무렵부터 사용됐다.

 

시전지는 백색의 한지에 갖가지 모양을 새긴 목판에 색을 칠해 찍어냈다. 선비들의 절개와 지조를 상징한다는 의미에서 매화, 대나무와 같은 사군자 무늬가 많이 새겨졌으며 연꽃, 새, 병에 담긴 꽃 등도 많았다. 꽃무늬가 주로 많았기 때문에 '화전지'라고도 불렸다.

또한 이러한 무늬 이외에도 길상이나 편지를 의미하는 문구를 함께 넣기도 했으며, 특히 중국을 왕래하던 많은 선비들이 북경 ‘유리창’에서 다양한 다색 목판화 시전지를 수입했다. 나중에는 화상들에 의해 수입되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선비들의 기호품이 되기도 했다. 조선시대의 선비와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명, 청 시대에 중국 화보류가 많았으며, 특히 중국의 다색 목판화 시전지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애정(愛情) 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전지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인쇄 방법도 달라졌다. 조선 중기인 16∼17세기에는 종이 전면에 문양을 찍었기 때문에 크기가 크고 무거운 판목을 아래에 두고 그 위에 종이를 올려 찍는 방식으로 인쇄하였다. 19세기에는 시전지의 크기가 작아지면서 종이를 아래에 두고 시전판을 위에서 찍는 스탬프 방식으로 변화하였다.

우리나라 고판화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대표 시전지는 '십죽재화보', '고씨화보', '당시화보', '팔종화보', '방씨묵보', '정씨묵원', '개자원화보', '만소당죽장화전' 등으로 시전지의 의미는 단순히 편지지 그치지 않는다. 시전지의 각양각색의 무늬는 당시 유행하던 동아시아 문양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스마트폰에 있는 노란 메신저 앱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는 세대에게 손 편지는 까마득한 옛 추억이 되고 있다. 500년 전 자신의 진심을 전하기 위해 하얀 한지 위에 손수 여러 문양들을 찍어 시전지를 만들고 그 위에 자필로 자신의 고백을 써내려간 선비들이야말로 진정한 로맨티스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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