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한지윤 에디터] 한국인들이 즐기는 여가활동으로 영화 관람이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지만 요즘 들어 미술계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아트페어나 축제, 그리고 완성도 있는 작품들이 전시에 나오는 경우도 많다. 서양화가 강형구는 대중들 사이에서는 ‘얼굴을 그리는 작가’로 유명한 만큼 그 자신의 얼굴도 잘 알려져 있다. 수북한 흰 머리와 흰 수염 그리고 날카로운 안광을 가진 그는 전형적인 ‘괴짜화가’ 같은 스타일로 호기심을 자극했다. 남들 다 들어본 이야기 말고 아직 들어보지 못한 강형구 작가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PART 1. 나는 화가 강형구가 아닌 ‘초인’ 강형구가 되고 싶은 사람

-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서울은 물론 북경, 상하이 등지에서 주로 개인전을 위주로 활동하고 있는 서양화가 강형구입니다.

- 화가로서 강형구 선생님은 어떤 사람인가요?

저는 스스로 직업적인 ‘화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미술제도권 밖에서 활동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미술활동을 해오면서 화단이나 교직에 몸담아 본 적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언더’로 활동을 해왔습니다. 저는 공적인 활동은 안하고 홀로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운이 좋아서 국제적인 호응을 얻을 수 있었고, 국제무대에서의 성과 때문에 지금의 자리에 오른 것 같습니다.

작품이 좋은 반응을 얻은 이유는 제가 ‘그림’으로만 접근하지 않고 역사 그리고 시대의 일부를 읽는 창으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한 특정인물을 모델로 작업했고 그 인물들은 주로 한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링컨을 그린 작품은 미국의 역사성을 떠오르게 하고 마릴린 먼로는 20세기 중엽 미국사회를 상징하죠. 또 제 그림은 사람마다 각자 자유로운 해석의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감상자들이 좋게 생각해 준 것 같습니다.

▲ tiger,2010,Oil on aluminum,240x240cm

- 초상화로 유명하신데 다른 작업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말고도 역사나 우리 사회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미술대학에 가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인물이라는 소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초상이나 인물이라는 소재는 미술에서 영원한 소재기도 하구요. 그렇다고 초상 외에 다른 그림을 그리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제가 초상화로 세간에알려져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제가 초상화를 그리는 작가라고 알고 있는데요, 제 개인 작업을 보면 얼굴이 70%, 나머지가 30% 정도 됩니다. 동물의 얼굴이나, 풍경화, 정물화도 그리고 설치작업이나 퍼포먼스를 하기도 하죠. 재미난 작업들을 말하자면 손이나 인체의 특정한 부분을 확대해서 그린다거나 달 표면을 그리기도 합니다. 또 초상 외에 다른 그림들을 발표하기도 했고요. 그래도 사실 ‘초상화 작가’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긴 합니다. 작품 중 초상화가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고 대중들도 절 초상화를 그리는 작가로 많이 알고 있으니까요.

- 서양화가의 길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일단 꼬마였을 시절부터 그림을 다른 사람보다 잘 그린 것 같긴 합니다. 칭찬도 많이 받았고 자신도 있었죠. 어린 나이에는 화가라는 직업에 대해서는 막연하면서도 일종의 ‘판타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반 고흐의 전기문을 읽고 감명을 받아서 그렇게 화가의 길을 걷게 됐죠.

- 존경하거나 영향 받은 화가가 있으신가요?

고흐나 다빈치 같은 화가들은 생전에 불행한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화가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죠. 살아있을 때 화가로서 영광을 누린 살바도르 달리나 파블로 피카소 작가들도 물론 훌륭하고 존경스럽지만요. 또 앞서 말했듯이 고흐가 제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주고 커리어를 인정받게 해준 인물이기도 해서 애착이 많이 갑니다. 또 제가 느끼기에 고흐나 다빈치는 ‘화가’처럼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직업적인 화가라기 보다는 선비 같다고 생각하죠. 시대도 다르고 그렸던 그림의 장르도 다르지만 두 사람의 그런 매력 때문에 끌렸습니다.

전 두 사람이 미술에만 폭 빠져있던 사람이라고는 보지 않는 거죠. 다빈치 같은 경우는 의학, 과학, 문학 거기에 요리까지 하던 다재다능한 사람이었습니다. 넓은 영역에서 재능을 펼친 사람들이 굉장히 존경스럽습니다. 단순히 화가가 아니고 세상을 다루던 사람이었죠. 저는 화가가 현실이 함부로 평가할 수 없는 성직이라고 생각합니다. 고흐나 다빈치같은 사람들은 탈현실한 ‘초인’이라고 볼 수 있죠. 제가 그 점을 참 부러워합니다.

▲ Lincoln,2016,oil on canvas 194x159cm

- 일반적인 초상화와 선생님의 초상화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제가 그리는 초상화는 쉽게 말하면 피사체가 없는 ‘허구의 얼굴’을 대상으로 합니다. 보통 초상화 같은 경우는 사람의 얼굴을 닮게 묘사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제가 그리는 초상화는 얼굴에 상당한 연출 효과가 들어갑니다. 예를 들어 80살이 된 마릴린 먼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겠죠.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안중근의 얼굴도 우리가 피사체로써 감상할 수 없는 ‘얼굴’입니다. 하지만 제 초상화로 감상자들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얼굴을 감상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이런 연출 속에서 초상화의 주인공이 살던 시대나 역사를 반영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파란색의 반 고흐, 2007년>이 홍콩 크리스티 경매가 7억 6,000만원을 기록하며, 세간에 널리 알려졌는데 전부터 초상화를 그리셨나요?

저는 이전부터 지금과 같은 스타일의 그림을 그려왔습니다. 사실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낙찰된 파란색의 반 고흐는 제 미술인생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 작품을 통해 생활고를 해결하고 경제적인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생활이 안정되자 흔들리지 않는 작품성이 확립하게 되었죠.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자 작가로서 자신감과 용기가 생겼고, 감상자에 대한 고마움과 배려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또 그 경매를 통해서 이전에 그려왔던 작품들도 다시 평가받게 되었어요.


- 작품의 규모가 굉장히 큰 게 특징이고 긁은듯한 독특한 표현이 인상적인데 작업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나요?

그림이란 게 제 손끝에서 아주 원시적으로 흘러나오는 것이지만 설명을 하자면 저는 붓을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에어 브러쉬라고 하는 분무형태로 된 채색도구를 사용해 물감을 분사시켜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붓자국이 없으니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사진처럼 느낄 수 있죠. 일반적으로 유화는 덧칠을 해나가는 방식으로 그리는데 저는 반대로 뿌려서 그린 그림을 지우기도 하고 철로 된 솔로 깎아내려서 머리카락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림을 조금씩 닦아나가는 방식이죠. 유화물감을 사용하긴 하지만 에어 브러쉬를 사용해서 얇게 뿌리면 지우개로 닦아낼 수가 있거든요. 에어 브러쉬를 이용해 색을 깔고 지워내는 과정을 반복하면 그림이 극사실적으로 보이는 단계에 도달합니다.

특정인을 그릴 경우에는 참고사진을 이용하기도 하고 지점토로 작은 인물상을 만들어 모델로 사용하기도 하고 동영상을 캡처하기도 합니다.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시대를 살다간 인물들의 얼굴을 주로 그리게 된 서양화가 강형구씨. 어린 시절부터 지금가지 동경의 대상이었던 천재작가들의 소박한 삶을 부러워했다고 한다. 강형구 작가의 얼굴과 그들의 얼굴이 닮았나 한 번 보니 세월의 풍파는 물론 미술작품을 만드는 예술인의 고뇌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강형구 작가가 보는 한국 '현대 미술계'는 어떠한지 다음 인터뷰에서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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