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홍시라] 오늘 4월 5일은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 중 하나인 ‘한식’이다. 한식은 동지(冬至) 후 105일 째 되는 날로 보통 음력으로는 2~3월에, 양력으로는 4월 초에 찾아온다. 이 날은 예부터 불의 사용을 금하고 찬밥을 먹는 풍습이 전해오고 있다. 그래서 금연일(禁烟日), 숙식(熟食), 냉절(冷節)이라고도 한다.

한식에는 왜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차가운 밥을 먹을까? 이는 고대 중국의 ‘개자추’를 기리면서 생긴 관습으로 알려져 있다. 춘추시대에 망명해 있던 진(晉)나라의 공자 ‘중이(重耳)’를 위해 충성하던 개자추라는 신하가 있었다. 중이는 오랜 기간 망명하던 중 먹을 것이 없어 신하와 함께 굶주리게 있었다. 이 때 개자추가 따뜻한 고깃국을 중이에게 바친다. 중이는 고맙고 신기한 마음에 “대체 이 고기를 어디서 났느냐”라고 물었지만 개자추는 대답하지 않았고, 그의 허벅지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즉 자신의 군주가 굶주리는 것을 볼 수 없어 개자추가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고깃국을 끓여 바친 것이었다.

▲ [사진= 찬밥을 먹는 날 '한식', 출처= 픽사베이]

이에 크게 감동을 받은 중이는 자신을 보필한 신하와 개자추에게 훗날 큰 보답을 할 것을 약속했다. 그 후 중이는 19년간의 긴 망명 생활을 마치고 63세의 나이에 마침내 진 문공(晉文公: 재위 B.C. 636~628)으로 즉위하게 된다. 그리고 진나라의 22대 군주가 된 진 문공은 자신과 긴 망명 생활을 함께한 사람들에게 높은 벼슬을 내렸는데, 이때 개자추를 잊고 아무런 벼슬을 내리지 않게 되면서 이에 분개한 개자추는 면산(聃山)으로 은둔하게 됐다.

개자추를 잊은 진 문공은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되고 개자추를 등용하려 했지만, 이미 개자추는 진 문공에게 마음이 돌아서 산 깊숙이 숨어 세상에 나오기를 거부했다. 진 문공은 개자추를 어떻게 하면 나오게 할까 고민하다가 산에 불을 질렀다. 진 문공과 함께 개자추를 불러내려던 그의 어머니는 개자추에게 달려갔고 끝내 뜻을 굽히지 않은 개자추와 함께 어머니까지 타죽고 말았다.

진 문공은 자신의 은인을 잊고 불에 태워 죽였다는 죄책감에 그 날을 기일로 정했으며,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 음식만 먹도록 했다. 이에 따라 ‘한식’이 명절로 이어져 온 것이다.

중국 뿐 아니라, 우리 조선시대에도 한식은 중요한 명절로 지켜졌다. 세종 13년(1431)에 한식 사흘 동안 불의 사용을 금지한다는 명령이 내려진 적이 있었고, 매년 임금은 내병조(內兵曹)에서 바친 버드나무를 마찰하여 일으킨 불을 궁중에 있는 관청과 대신 집에 나누어주는 풍습이 있었다. 또한 한식에 왕실에서는 종묘 제향을 지냈다.

백성들도 한식에는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로 여겨 성묘를 했고, 농가에서는 이날을 기하여 밭에 파종을 했다. 이렇듯 한식은 중국과 우리 한반도에서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명절로 여겨졌지만, 오늘날에는 그 의미가 많이 없어져 특별한 행사 없이 지나간다. 특히 불의 사용을 금지하거나 찬 음식을 먹는 풍속은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한식의 풍속은 잊혀져가고 있지만, 그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심리학 영역에서 ‘개자추 콤플렉스’란 전문용어로 쓰이고 있다. 누군가에게 섭섭하거나 억울함을 당했을 때 그것을 시원하게 말하거나 복수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망가뜨리는 것으로 분풀이를 해서 상대방의 자책과 타인의 동정심을 유발하려는 심리를 말한다. 즉 자신을 피해자로 만드는 일종의 자학심리로 볼 수 있다. 서양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동양 문화만의 독특한 심리라고 한다.

4월 5일 한식, 대부분이 오늘 하루 찬밥이 아닌 따뜻한 밥을 먹고 명절인줄 모르고 지나갔을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의 군주에게 충성하던 개자추의 마음을 기리고, 혹시나 자신이 ‘개자추 콤플렉스’로 스스로를 망가트린 적은 없었는지 생각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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