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여행_음식] ‘뭐지?’ 싶다가 ‘또’ 생각나는 마성의 음식, ‘얼죽냉’ 마니아층 두터운 [평양냉면]

시선뉴스=평양냉면 | 사람들의 취향과 입맛은 저마다 다 다르기에, 음식들은 호(好)/불호(不好)가 나뉠 수밖에 없다. 일부 특색이 강한 음식은 이 호/불호가 강하게 나뉘게 되는데, 단순히 ‘맛있다’ ‘맛없다’로 평가하는 음식의 완성도를 떠나, 개성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호/불호가 강한 음식일수록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호/불호 음식에는 추운 겨울에도 마니아들을 줄 서게 하는 마성의 ‘평양냉면’이 있다.

구수한 메밀 국수에 차가운 육수를 부어 만든 평양의 향토 음식 ‘평양냉면’. 양념을 적게 해 짜지도 않고 맵지도 않은 담백한 맛을 즐기는 지역의 풍토에서 형성된 평양냉면은 꿩이나 소고기 육수에 동치미 국물을 섞어, 소금·묽은장·식초 등으로 간을 맞춘 차가운 육수에 메밀면을 말아 먹는 음식이다.

필자는 불호에서 호로 바뀐 케이스인데, 평양냉면에 빠진 이들의 대다수가 이런 류다. 처음, 평양냉면 마니아를 자칭하는 한 지인의 재촉에 못 이겨 서울 마포구의 한 전통 있는 평양냉면 맛집 ‘을X대’를 찾았다. 명성에 걸맞게 골목 골목 길게 늘어선 대기줄, 그렇게 큰 기대 속에 긴 대기시간을 버텨내고 이윽고 ‘평양냉면’을 마주했다. 기다림과 굶주림 탓에 더 맛있을 거라 생각하며 한 젓가락 크게 입에 넣는 순간, 흐릿한 맛에 머리가 띵했다. ‘뭐지...음식이 잘못 나왔나’ 나는 서둘러 식초와 겨자를 찾았다. 하지만 ‘본연의 맛을 느껴봐야 제대로다’라는 마니아를 자칭하는 지인의 거센 만류가 이어질 뿐이었다.

처음 맛본 평양냉면은 내가 알던 감칠맛이 휘돌고 새콤달콤한 자극적인 냉면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고, 나의 반응을 은근히 기대하던 지인의 얼굴을 보니 괜히 미안한 마음까지 올라오는...그런 맛이었다. 너무 담백?한 육수때문일까, 메밀면 자체의 고소한 맛이 느껴지는 게 오히려 신기할 뿐. 애써 ‘괜찮네’라는 화답을 지인에게 건네며 첫 평양냉면 경험을 마무리하고 그렇게 기억 속에서 평양냉면은 지워져 가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보통 주기적으로 시원한 냉면이 오늘의 끼니 목록에 떠오를 즘, 여느 때와는 달리 그날의 심심했던 평양냉면이 살포시 침샘을 자극했다. 국물이 자극적이지 않아 오히려 냉‘면’의 면 맛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던, 적당한 감칠맛과 적당한 짠맛이 어우러졌던 것 같은... 첫인상과 180도 다른 기억으로 말이다.

착각이겠거니, 다시 평양냉면의 정체를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에 그곳을 또 찾아 이끌리듯 줄을 섰다. 그렇게 두 번째 만난 평양냉면을 별 기대 없이 입에 밀어 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지어졌다. 자극적이지 않고 재료의 맛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특히 메밀의 향이 가득 입에 퍼지는 것이 썩 마음에 들었다. 극구 식초와 겨자를 넣지 말라던 지인의 자신 있는 가르침? 역시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평양냉면이 불호에서 호로 바뀌는 순간이었고, 나 역시 주기적으로 평양냉면을 찾게 되는 시발점이었다.

아마도 이러한 패턴으로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했을 평양냉면. ‘원효대사 해골 물 맛이다’ ‘행주 빤 물 맛이다’라는 오명을 비웃듯 전국팔도 구석구석에 자리한 평양냉면 맛집들은 애타는 긴 대기줄을 만들어가며 점점 더 많은 마니아를 양성하고 있다.

맑고 찬 육수에 소소한 고명과 투박한 메밀면이 무심하게 담겨 나오는 평양냉면. 거기에 가게마다의 비법과 부위로 만들어지는 수육, 바삭한 녹두전 등 곁들이 음식까지, ‘을X대’ ‘을X면옥’ ‘진X면옥’ '정X면옥' ‘봉X양’ ‘평X면옥’...오늘도 전국의 숨어있는 평양냉면 맛집 입구에는 추종자들의 줄이 길게 늘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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