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신승우] 여아가 지난 4월 7일 열띤 공방을 벌인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자리에서는 그간 인사청문회자리에서는 흔히 볼 수 있었던 병역의혹, 재산문제가 거론되지 않았다. 대신 28년 전 발생한 고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이 핵심 쟁점이 되었다.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가 고 박종철군 사건 수사 담당검사 중 한명이었기 때문이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란 전두환정권 말기인 1987년 1월 14일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군이 치안본부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중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사건을 말한다.

사건의 경과를 살펴본다면 경찰은 처음에 박종철군 사망을 단순 쇼크사로 발표했다. 이때 박종철의 사망원인에 대해 “책상을 탁!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라며 웃지 못 할 대답을 하기도 했다.

▲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이후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입증하는 부검의(剖檢醫)의 증언으로 경찰은 사건발생 5일 만인 19일 물고문 사실을 공식 시인했고, 수사경관 조한경과 강진규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사건진상의 일부가 공개되자 신민당은 정부여당을 강하게 비판하는 한편, 각계인사 9천 명으로 구성된 ‘박종철군 국민추도회’ 등을 주도했다. 이에 정부는 내무부장관 김종호와 치안본부장 강민창의 전격 해임과 고문근절대책 수립 등으로 사태를 수습하려 하였다.

그러나 5월 18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성명을 통하여 치안감 박처원과 경정 유정방·박원택 등 대공간부 3명이 이 사건을 축소·조작하였고, 고문가담 경관이 5명이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이로써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은 전두환정권의 정당성에 큰 타격을 주었고 1987년 6월 항쟁의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는 등 민주화운동의 촉매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박상옥 후보자는 사건은폐의혹과 관련해 강하게 부인하며 당시 자신은 말단검사라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고 항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말단검사였던 박상옥 후보자가 사건은폐와 관련해 얼마나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확실히 단언할 순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진정한 민주화를 위해 다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같은 일이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는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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