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나 지역을 넘어 전 세계 각계각층에서 존경받는 사람들. 그런 역량을 갖춘 인재이자 국가나 기업을 ‘글로벌 리더’라고 부른다. 역사 속 그리고 현재의 시대를 이끌고 존경받는 사람들은 누가 있을까. 그들의 삶의 기록과 가치관 등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시선뉴스=정혜인 수습기자ㅣ2008년부터 10년 동안 셀린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한 피비 파일로. 이때의 셀린느는 ‘올드 셀린느’라고 불리는데, 이후에 에디 슬리먼이 셀린느의 디자이너로 활동할 때에도 올드 셀린느를 그리워하는 팬들이 많았다. 지금도 피비 파일로는 옷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워너비이자 패션계의 아이콘으로 불리고 있다.

타고난 미적 감각을 가진 소녀

[사진/phoebephilodiary 인스타그램]
[사진/phoebephilodiary 인스타그램]

1973년, 파리에서 태어난 피비 파일로는 측량사인 아버지와 그래픽 디자이너였던 어미니 밑에서 자랐다. 그녀의 아버지는 토지 표면의 형태, 고도, 면적 등을 섬세하게 측량하는 일을 했고, 어머니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데이비드 보위의 앨범 커버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러한 부모님의 감각을 물려받은 피비 파일로는 14살 때부터 자신의 옷을 직접 제작했다. 10대가 만들었다기에는 높은 완성도를 자랑했고, 이후 여러 패션 디자이너가 진학한 것으로 유명한 센트럴 마틴즈에 진학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상업적 성공을 거둔 끌로에

[사진/위키미디어]
[사진/위키미디어]

피비 파일로는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스텔라 메카트니를 도우며 끌로에의 디자이너를 활동했다. 스텔라 메카트니가 수장의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피비 파일로는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었는데, 2004년부터 2005년 사이 매출을 4배 이상 끌어올렸다. 화려함에 집중하고 있던 당시 패션계에서 피비 파일로는 단순함과 실용성에 집중했는데, 그래서 노출이 있거나 타이트한 드레스보다 편안한 색깔의 절제된 디자인을 선보였다. 그 결과, 끌로에는 패딩턴 백 등으로 히트하며 당시 여자들의 로망으로 자리 잡았다. 

트렌드의 선두 주자, 셀린느

[사진/phoebephilodiary 인스타그램]
[사진/phoebephilodiary 인스타그램]

끌로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던 피비 파일로는 몇 년의 공백기를 가진 뒤 2008년 셀린느의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합류했다. 피비 파일로가 있기 전의 셀린느는 침체기에 머물렀지만, 그녀가 함께한 뒤부터는 출시되는 아이템마다 모두 매진하는 성과를 달성했다. 그렇게 10년간 셀린느에서 부드럽고 유려한 디자인, 편안한 착용감을 특징으로 하는 ‘우아한 미니멀리즘’을 이끌었다.

피비 파일로의 영향력
과하지 않으면서도 편안하게 차려입은 패션을 말하는 놈코어룩(Normal과 Hardcore의 합성어)도 피비 파일로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셀린느가 11 FW 시즌으로 카키색 폴로넥 스웨터, 검은색 테일러드 팬츠를 보였는데, 이때 함께 조합한 아디다스 스탠 스미스가 품절되는 사태가 있었다. 피비 파일로의 팬들이 만든 SNS 계정만 해도 각각 39만 명과 17만 명이라는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그녀의 인기는 ‘파일로 파일(Philo-phile)’이라는 단어에서도 드러난다. 여기서 ’파일(phile)’은 ‘~을 좋아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사진/phoebephilo 인스타그램]
[사진/phoebephilo 인스타그램]

지난 2월, 인스타그램에는 ‘피비 파일로’라는 이름의 브랜드 계정이 개설되었다. 현재는 회원 가입이 가능한 공식 웹사이트도 오픈되어 있다. 셀린느를 떠난 뒤 휴식기를 갖던 피비 파일로가 복귀 소식을 알린 것이다. 그녀의 새로운 컬렉션이 LVMH의 서포트를 받아, 또 런웨이가 아닌 공식 웹사이트로 이번 9월 공개된다고 밝혀진 가운데, 다양한 패션계 인사들도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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