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심재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을 지낸 정진석 추기경이 2021년 4월 27일 향년 90세를 일기로 선종했다. 故 정진석 추기경의 묘비명은 1970년 주교품을 받으며 첫 사목 표어로 삼았던 '모든 이에게 모든 것(Omnibus Omnia)'으로 결정됐다. 민족의 복음화와 일치를 이룩하고, 평화를 증진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묘비명처럼 실제로 故 정진석 추기경은 스스로 희생과 나눔을 실천하며 민족의 복음화와 평화 증진에 이바지 하는 삶을 걸어왔다.
故 정진석 추기경은 1931년 12월 서울 중구 수표동의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나 1954년 가톨릭대 신학부에 입학했으며 1961년 3월 사제품을 받았다. 이후 서울대교구 중림동 본당 보좌신부를 시작으로 서울 성신고 교사(1961∼67),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총무(1964∼65), 성신고 부교장(1967∼68)을 지냈다. 1968년에는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라 1970년 교황청 우르바노 대학원에서 교회법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고인은 만 39세 때인 1970년 청주교구장으로 임명되면서 최연소 주교로 서품됐다. 그리고 1998년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되며 대주교로 승품했으며,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하게 된 그는 2012년 서울대교구장에서 사임하기까지 14년간 교구를 대표했다. 이처럼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 온 2006년 2월 교황 베네딕토 16세로부터 추기경으로 임명됐다. 한국에서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두 번째 추기경이었다.
故 정진석 추기경은 '교회법 전문가'로도 꼽힌다. 가톨릭교회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때인 1983년 새 교회법전을 펴냈는데, 당시 청주교구장이던 정 추기경이 교회법전 번역위원장을 맡아 동료 사제들과 한국어판 번역 작업에 나섰다. 정 추기경은 교회법전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해설서 첫 권을 펴낸 데 이어 2002년까지 총 15권의 교회법 해설서 편찬작업을 마무리했다. 또 고인은 많은 역서와 저서를 남긴 것으로도 유명한데, 교회법전, 교회법 해설서 15권을 포함해 50권이 넘는 저서와 역서를 펴냈다.
故 정진석 추기경은 그의 빈소가 마련된 명동성당과 인연이 깊은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우선 故 정진석 추기경은 출생 나흘 만에 '니콜라오'라는 세례명으로 유아세례를 받는데, 그 장소가 바로 명동성당이었다. 그리고 1939년 7월 23일 명동성당에서 첫영성체를 했으며, 1941년 6월 1일에는 명동성당에서 신앙을 보다 성숙하게 하는 견진성사를 받았다. 또한 정 추기경이 사제품을 받고서 신부가 된 곳도 명동성당이다. 아울러 그의 사제 수품 50주년인 '금경축(金慶祝)', 수품 60주년인 '회경축(回慶祝)' 기념하는 자리도 명동성당에서 있었으며, 지난 5월 1일에는 장례미사가 명동성당에서 거행되기도 했다. 90년 전 가톨릭교회와 처음 인연을 맺었던 자리에서 작별 인사를 하는 셈이다.
故 정진석 추기경은 1970년 주교품을 받으며 사목 표어로 삼았던 '모든 이에게 모든 것'(Omnibus Omnia)을 숨을 거두는 날까지 지켰다. 본인의 유지에 따라 마지막까지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남김없이 주고 떠난 것. 정 추기경은 지난 2월 22일 건강 악화로 입원하게 되자 사흘 뒤인 25일 자신의 통장 잔액을 꽃동네(2천만원), 명동밥집(1천만원), 서울대교구 성소국(동성고 예비신학생반·2천만원), 교구 청소년 아동신앙교육(1천만원), 가칭 '정진석 추기경 선교장학회'(5천만원)로 직접 지정해 모두 기부한 바 있다.
이후 두 달가량 병원에 있으면서 교구에서 매월 지급해온 비용과 보훈처 참전수당 등이 다시 통장에 쌓였고, 잔고는 800만 원으로 불었다. 이에 병석에 있던 정 추기경은 나머지 통장 잔고는 그동안 자신의 치료를 위해 수고한 의료진과 수녀, 봉사자들에게 전달해달라는 말을 남겼다. 그의 뜻을 받들어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고인이 통장에 남긴 약 800만원을 그의 병 치료와 장례 과정에서 수고한 서울대교구 사제, 직원, 의료진, 봉사자, 2005년 그가 직접 설립한 교구 생명위원회에 감사 성금으로 전달할 계획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선종 후로는 그의 장기기증 서약에 따라 안구 적출 수술이 이뤄지기도 했다. 정 추기경은 2006년 '사후 각막기증' 등을 약속하는 장기기증에 서명한 바 있다. 정 추기경은 생전에 나이로 인해 안구 기증이 어려울 수 있다는 의료진의 소견을 듣고 연구용으로라도 써달라고 요청했던 것으로 전해졌고, 실제로 고인의 각막은 실험 연구용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말없이 뒤에서 묵묵히 할 일을 다 하신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랑하고 나누며 베풀라는 추기경님의 메시지를 항상 기억할 것" "예쁘게 살다 가셨다. 그분의 삶을 본받아 나누겠다" 추모객들은 고인의 삶을 높이 평가했다. 자신의 신앙적 소신대로 묵묵히 한 길을 걸어오며 삶을 통해 종교의 의미를 세상에 알린 故 정진석 추기경은 영원히 종교계의 별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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