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문선아] 오늘부터(16일) 21일까지 씨름의 최대 축제이자 2016년 한 해의 씨름판을 총결산하는 ‘2016년 천하장사 씨름 대축제’가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장대하게 펼쳐진다. 현대인들의 관심에서 조금 멀어진 씨름이 다시 한 번 과거의 영광을 부흥시키기 위해 이번 축제에선 씨름의 고유의 멋과 재미 위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전통놀이 중 하나인 씨름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기록에 따르면 우리나라 씨름의 시작은 삼국시대 이전으로 알려져 있다. 4세기경으로 추측되는 고구려 고분인 각저총 주실 석벽에 두 사람이 맞붙어서 씨름하는 모습과 심판하는 사람이 서 있는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을 통해 삼국시대에 이미 씨름이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문헌에서 최초로 기록된 곳은 ‘고려사’로 충혜왕 때 왕이 용사들에게 씨름을 시키고 친히 구경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씨름은 우리나라에서 생겨난 고유의 전통 놀이인데 옛 중국 문헌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중국은 우리의 씨름을 ‘고려기’ 또는 ‘요교’로 불렀는데, 이는 우리의 씨름과 중국의 씨름이 서로 다른 특징이 있음을 의미한다. 요교라는 말의 ‘요’는 ‘붙든다’는 뜻이고, ‘교’는 ‘종아리 교’자로 ‘종아리(다리)를 붙들고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놀이’로 현재의 씨름의 모습과 흡사 하다.

삼국시대에는 무예로써 즐기던 씨름이 시간이 지나며 민간에서 놀이로 대중화 됐다. 조선시대 풍속도 화가 김홍도의 그림은 물론이고 각 종 실록을 살펴보면 단옷날 여자들은 그네를 뛰고 남자들은 함께 모여 씨름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씨름이 경기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굳어졌다. 1912년 10월 유각권구락부가 주관하여 극장 단성사에서 열렸던 씨름대회가 최초이다. 이를 시작으로 씨름 대회가 연례적으로 개최되면서 근대화된 경기대회로 발전해 나갔다.

본격적인 씨름의 근대화 작업은 여운형을 중심으로 ‘조선씨름협회’를 결성하면서 시작됐다. 협회는 지역별로 나눠져 진행됐던 씨름을 왼씨름 원칙으로 통일하고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 운동장에서 제1회 전조선씨름대회를 전국 규모로 열었다. 그러나 조선씨름협회는 일제의 탄압으로 오래가지 못하고 강제 해산 당했다.

씨름협회가 다시 부활하게 된 것은 광복을 기점으로 1947년 ‘대한씨름협회’로 명칭을 바꾸고 협회규약 및 경기심판규정을 만들어 운영을 강화했다. 더불어 씨름은 1947년 제28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시범종목으로, 1948년 제29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씨름의 전성기는 단연 70년대다. 대한씨름협회와 KBS가 공동 주최하고 문화공보부가 후원한 제1회 KBS배 쟁탈 전국장사씨름대회를 시작으로 큰 인기를 모았다. 경기가 중계방송을 통해 전국적으로 방송되면서 국민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70년대 후반에는 축구, 야구 등 기타 인기 종목에 눌려 침체된 듯하다 80년대 정부의 스포츠 장려정책 분위기로 불씨가 살아났다. ‘제1회 천하장사씨름대회’를 계기로 다시금 국민들의 크나큰 사랑을 받았지만 IMF 금융위기가 찾아오면서 씨름단의 연이은 해단으로 프로씨름의 존립이 위협 받기도 했다.

우여곡절 많은 일들이 있었던 우리나라 전통 씨름. 2016년 천하장사 씨름대축제는 이러한 씨름의 부흥과 세계화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코리아오픈씨름페스티벌'은 씨름 유사 종목을 보유한 국가를 초청해 각 나라의 전통 씨름을 교류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다양한 즐길 거리를 마련한 이번 축제에 가족들과 함께 직접 경기장을 찾아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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