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연선]

▶ 서태후(西太后)

▶ 1835.11.29 ~ 1908.11.15

▶ 국적 / 중국 청(淸)

▶ 활동분야 / 정치

▶ 별칭 / 효흠현황후(孝欽顯皇后), 자희황태후(慈禧皇太后)

19세기 말, 청나라는 대내외적으로 복잡한 상황에 처해있던 상황이었다. 이런 복잡한 상황과 남성중심의 유교국가였던 중국에서 어떻게 황제가 아닌 태후가 황제를 무력화 시키고 47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통치를 할 수 있었을까?

 

- 궁녀로 선발된 서태후

서태후는 어린시절부터 매우 가난했다. 그래서 가난에서 벗어나기위해 자신의 애인을 버리면서까지 궁녀가 되려했다. 결국 16세의 어린 나이에 궁녀로 선발됐고 자금성에 귀인으로 들어가게된다.

서태후는 어린 나이와 아름다운 미모, 그리고 뛰어난 말솜씨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함풍제 주변 환관들의 환심을 사고 결국 황제의 눈에 들게된다. 그러면서 황제의 유일한 아들을 낳아 궁녀에서 귀비로 뛰어 오르게 된다.

- 수렴청정을 시작한 서태후

궁녀에서 귀비로 뛰어오른 서태후는 거기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함풍제의 정치에 조금씩 관여를 하기 시작한다. 이를 눈치챈 함풍제는 서태후를 경계하고 결국에는 불안감에 서태후를 죽일 계획까지 갖는다.

하지만 1860년 서구 열강의 북경 침범이 있으면서 함풍제는 31세로 요절을 하게된다. 유일한 후계자였던 황태자는 6살이었지만 함풍제의 요절로인해 황제가 된다. 그렇게 서태후는 수렴청정은 시작되고 서태후의 시대가 시작된다.

- 욕심과 야망에 아들까지 버린 서태후

욕심과 야망이 컸던 서태후는 자신의 아들마저도 경쟁자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황제와 황후를 괴롭히기 시작했고, 환관을 이용해 황제가 환락에 빠져들게 만든다. 황제는 궁궐 밖 홍등가에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몹쓸 병에 걸리게 된다.

서태후는 이러한 기회를 노려 자신의 아들이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병에 죽게 만든다. 그리고 황후 뱃속에 있던 손자까지 경쟁자로 생각해 황후를 구박했고, 황후는 결국 자살을 택한다. 그렇게 서태후는 자신의 권력을 빼앗을 경쟁자들은 모두 없애버려야 하는 존재라고 여긴다.

- 서태후 뒤로 물러나나?

서태후는 자신의 아들 황제가 죽고난 뒤 함풍제의 동생과 자신의 여동생 사이에서 난 광서제를 황제로 골랐다. 광서제는 불과 네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였고 결국 그것은 그녀가 중국을 계속 수렴청정으로 다스리겠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광서제는 서태후가 골라준 서태후 가문의 여인을 황후로 맞이했고 그러면서 자금성 북쪽에 있던 이화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는 광서제에게 권력을 주고 뒤로 물러난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궁안에는 서태후의 사람들뿐이었다.

- 실패로 돌아간 광서제의 변법자강운동

이런 와중에 광서제에게 자신의 나라를 자기가 직접 통치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러면서 청일전쟁을 통해 자신의 좁은 입지를 벗어나려 했고 서태후를 졸라 청일전쟁을 일으키게된다. 하지만 서태후는 광서제가 자신의 입지를 넓히지 못하게 하기위해 군비의 일부를 빼돌려 자신의 거처인 이화원을 치장하는데 쓰면서 방해공작을 펼친다.

결국 청일전쟁은 청나라의 패배로 돌아갔고 청나라는 국력이 형편없다는 것을 만국에 알리게 된다. 그러면서 광서제는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서태후로부터 벗어나도록 변법자강운동에 나서게 된다.

하지만 서태후는 광서제의 모든 계획을 듣게 되고 이를 기회삼아 광서제를 자금성 영대에 유폐시켜 버리고 변법자강에 나섰던 지식인들을 모조리 처형했다. 변법자강운동은 그렇게 끝이났다.

- 사치 그 자체 서태후

서태후는 어린 시절 그녀를 괴롭히던 가난에서 벗어난 뒤 최고의 권력자가 되자 이를 이용해 사치를 즐기기 시작한다. 한 끼에 128가지의 음식을 먹었으며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갈아입고 보석으로 자신의 몸을 치장했다.

그녀의 사치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가 바로 이화원이다. 나라가 망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군비의 일부를 빼돌려 자신의 거처를 꾸미기에 바빴다. 현재 이화원은 중국의 문화유산으로 남아 있으며 특히 바다 같은 인공호수는 그녀가 얼마나 사치를 즐겼는지 보여준다.

이렇게 야망과 욕심에 가득차 권력을 위해 자신의 아들까지 버리고 어떠한 행동도 마다하지 않은 서태후지만 세월에는 어쩔수 없이 지게 된다. 극심한 사치와 향락은 서태후에게 독이 되어 돌아갔고 광서제가 독약으로 요절한 뒤 얼마 되지 않아 생을 마감한다.

현재까지도 중국의 3대 악녀로 평가받고 있는 서태후. 권력과 돈에 눈이 멀어 자신의 아들과 심지어 나라까지 망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정치 앞에서 돈과 권력, 사치는 독약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인물로 남아있다. 올바른 정치인을 위한 길, 서태후가 주는 교훈을 제대로 알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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