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모두가 현 교육의 파탄을 말하고 있다. 서점에는 교육현장의 붕괴와 이에 따른 암담한 미래를 예언하며 해결방안을 절실히 요구하는 책이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시중에 출시된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대안은 핀란드식 선진 교육제도의 국내도입, 학교의 부정부패를 일소할 시스템이나 대안세력의 육성 정도다. 하지만 국내 정서에 핀란드식 교육제도가 맞을지에 대한 의문과, 학교의 감시와 대안세력의 육성은 정치적 갈등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 선뜻 이 대안을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이것 외에 교육당국이 자신만만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자유학기제가 있지만 자칫 전시행정으로 흐를 우려가 있다. 실제로도 가장 중요한 학생들의 만족도는 그리 크지 못해 효과가 의문시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소설 <나의 교육개혁안>이 전혀 새로운 각도의 입시개혁을 제시하고 있어 화제다.

 

소설 <나의 교육개혁안>의 주인공은 고교생이다. 우선 이 설정으로 보면 평범한 청소년 성장소설로 보인다. 하지만 주인공인 고교생은 일반적인 성장소설 속 주인공과는 다르게 남자로, 사회인으로 자립할 것을 선언한다. 그리고 현재의 교육시스템을 학생이나 아이가 아닌 고객의 눈으로 분석하고 평가한다.

어느 날 갑작스레 눈 뜬 고교생 주인공은 주입된 통설이 아닌 순전히 자신의 눈으로 학교를 관찰한다.

학생을 인격체가 아닌 어떤 자유의지도 없는 무기물 덩어리로 보고 자기네들만이 이를 쓸 만한 작품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시설',

이런 오만한 마인드로 학생을 일방적으로 주무르지만 결과는 항상 모두에게 실망을 주는 '무능한 시설',

교육의 독점권에 안주하며 고객만족이나 효율성은 훨씬 전부터 안드로메다로 보낸 '무성의한 시설',

명색이 교육시설이라면서 학생들 개개인의 소질과 창의성을 여지없이 깔아뭉개고 입시지옥 하의 무한경쟁만을 강요해 교실붕괴를 일으킬 뿐인 '모순된 시설'

그러면서도 퇴출을 거부하고 자기보존 본능에 의해 의미 없이 계속 가동되는 '대책 없는 노후시설'.
한마디로 말해 '낡아빠진 부품공장'. 이것이 학교에 대한 주인공의 최종분석이다.

주인공은 지금의 학교는 더 이상 교육의 장이 아니며, 자립을 위한 진짜 공부를 하기 위해선 지금의 학교를 거부하고 뛰쳐나와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정말 가출해 홀로서기를 감행한다. 당연히 따라오는 집안의 완강한 반대, 세상의 수군거림, 경제적 어려움, 고독, 그리고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짓누르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의문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모든 걸 감내하지만 끝끝내 '학교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거부한다.

그렇다면 주인공은 과연 그토록 원했던 자립에 성공했을까? 소설은 밝히지 않는다. 대신 주인공이 주창한 고객으로서 최초의 권리주장과 고객으로서의 학생이 원하는 교육서비스의 모습을 보여준다.

주인공이 제시하는 대안은 독특하다.

지금까지의 입시와 취업을 위한 '입력위주'의 교육이 아닌, 각자의 자립을 위한 '출력위주'의 교육,

학교가 일방적으로 정해주는 교과 시간표가 아닌, 학생 각자가 자기 적성과 흥미에 맞는 교과를 선택해 만드는 자기만의 시간표.

입시용의 몇 안 되는 과목이 아닌, 학생 개개인의 자립을 위한 500여종 이상의 선택 가능한 다양한 과목.

입시개혁 수준의 땜질식 처방이 아닌 근본적 인식부터 전혀 다른 교육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인공은 주장한다. 이를 위해 주인공은 '교육민영화'와 '교육신도시'를 전제 조건으로 제시한다.

주인공이 말하는 '교육민영화'는 학교재단이 아닌 기업체가 학교를 세우고 다양한 가르침을 학생들에게 직접 가르치는 것이며, '교육신도시'는 이런 학교를 한곳에 밀집시켜 학생들의 다양한 선택을 충족시키고 배우려는 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함이다.

즉, 거대한 교육의 장(場)을 만들고 그 안에서 학생들을 풀어놓아 저마다 흥미 있는 과목을 선택해 자유롭게 배우게 하라는 것이다.

소설말미에 등장한 주인공의 주장을 종합해 정리하면 이렇다.

지금의 군대 내무반 같은 통제위주의 학교를 부수고 전부 단과학원처럼 만들어 학생 각자가 자립을 위해 필요한 배움을 과목단위로 스스로 선택해 배우게 한다,

교육 민영화로 기업이 자유롭게 학교를 세울 길을 열어놓는다. 각 기업은 특성에 맞춰 잘 가르칠 수 있는 과목을 개설하고 경쟁을 통해 고객(학생)들의 선택을 받도록 유도한다,

교육을 의무가 아닌 서비스로 바꿔 고객만족을 유도한다. 이를 위해 대규모 교육신도시를 건설한다.

과연 이것이 고교생 한명이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의 구상일까?
작가의 개입이 너무 심하다. 출판사측도 인정할 정도다. 하지만 소설을 읽어가며 주인공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이런 결론이 자연스럽게 도출돼 나오는 것을 보게 된다. 처음엔 건조한 듯 보이지만 읽어갈수록 작가의 스토리구성능력이 대단히 탄탄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주제의식이 집요할 만큼 투철하며 거기에 더해 생명력 넘치는 주변 캐릭터들의 등장으로 읽는 재미까지 보장한다.

이전 청소년 성장소설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투신이나 의미 없는 위로로 끝맺는 결말이 아닌, 주체성을 가진 의지의 주인공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세계.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입시의 굴레에서 벗어난 이 땅의 청소년 본연의 힘과 기상이 아닐까. 우리는 그동안 '청소년은 무력하다'라는 편견을 갖고 청소년자살 등의 한심한 모습을 확대•재생산하는 이야기만을 읽고 쓰며 지내온 것은 아닐까.

청소년 성장소설의 주인공에 대한 선입견은 독자라면 누구나 많든 적든 갖고 있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이런 선입견을 여지없이 박살낸다. 그리고 이제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청소년 상(像)을 여봐라는 듯 제시하고 있다.

거침없고 당돌한 주인공과 이런 주인공이 제시한 전혀 색다른 교육개혁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독자 각자의 몫이다. <나의 교육개혁안>을 문학소설로 봐야할지 그저 정책제안을 위한 조금 재미있는 스토리텔링 정도로 봐야할지도 독자의 몫이다. 그러나 학생이 아닌 고객의 입장에서 학교를 서비스 제공자로 보고 평가를 내렸다는 점, 모든 결정권을 사회와 학교에 맡긴 채 어떻게 좀 해보란 수동적 입장에서 벗어나 고교생 주인공이 직접 뭔가를 저지르고 교육시장의 고객으로서 직접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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