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심재민] 1910년 일본에 의해 한일병합조약이 강제체결 되고 그들의 손에 의해 ‘대한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 후 한국을 강제 점거한 일본은 점점 조선의 근간을 훼손하고 통치하려 갖은 만행을 저지르기에 이르렀다. 이에 당시 우리 국민은 여지저기서 독립의 투혼을 불태우며 강하게 저항했고 다시금 빼앗긴 주권을 되찾고자 목숨을 건 투쟁을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사라진 조국의 이름을 대신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란 1910년 3·1운동 직후 조국의 광복을 위해 중국 상하이에서 조직하여 선포한 임시정부로 3·1운동 이후 일본의 강제 통치에 조직적으로 항거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19년 4월 11일 임시의정원을 구성하고 각도 대의원 30명이 모여서 임시헌장 10개조를 채택하였으며, 4월 13일 한성임시정부와 통합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해 선포하였다.

각료에는 임시의정원 의장 이동녕, 국무총리 이승만, 내무총장 안창호, 외무총장 김규식, 법무총장 이시영, 재무총장 최재형, 군무총장 이동휘, 교통총장 문창범 등이 임명되었다. 이후 임시헌법을 제정해 공포하고 이승만을 임시대통령으로 선출하는 한편 내각을 개편하였다. 그리고 국내에는 ‘연통제’라는 비밀 연락망을 두어 활동을 전하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기도 했다. 또 ‘독립신문’을 발행하여 임시 정부와 독립군의 활동을 사실을 모르는 국내외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왜 일제에 의해서 사라진 ‘대한제국’의 이름을 그대로 계승하지 않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칭호를 사용하게 된 것일까? 3·1 운동에서 민족 전체의 힘을 본 독립 운동가들은 왕을 내세우는 ‘대한 제국’이 아니라,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 되는 ‘대한민국’을 건설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20년대 후반 일본의 방해로 국내에서의 지원도 끊기고 독립 운동가들의 생각이 하나로 합쳐지지 않으면서 중심을 잃게 되었다. 이때 김구 선생이 다시 임시 정부를 강화시키고 해외에서 자금을 모았으며 각종 군사 활동과 의거 활동을 지원해 독립운동의 중심으로 다시금 자리 잡게 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약은 비단 각지에서 벌어진 독립운동에 그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독립의지를 세계에 알리는 등 대한민국의 정부로서 외교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대표적으로 1919년 7월, 스위스에서 열리는 만국사회당대회에 조소앙(조용은)을 파견하여 ‘한국독립승인결의안’을 통과시켰고 미국 국회에 한국 문제를 상정시키고 태평양회의에서 한국국민의 상황을 세계여론에 알리기도 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노력으로 한국의 광복에 시초가 된,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이 정식으로 승인되기도 했다. 또한 1945년 포츠담선언에서 한국의 독립을 다시 확인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은 야욕에 눈이 먼 당시 일본에 눈엣가시가 되었다. 이 때문에 일본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무력화 시키고 해체하고자 갖은 공격과 핍박을 가했다. 일본의 이러한 발악 속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5년 8·15광복에 이르기까지 상하이, 항저우, 전장, 창사, 광저우, 류저우, 치장, 충칭 등지로 청사를 옮기며 힘겹게 광복운동을 비롯한 활동을 전개하해야 했다.

그리고 1945년 이윽고 기다리던 대한민국의 광복을 맞이하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요 간부들이 개인 자격으로 귀국하게 되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념과 사상은 대한민국의 뿌리가 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도이념인 ‘자유주의 이념과 삼균주의 이념’은 1948년 ‘대한민국헌법’에 반영되어 광복 ‘한국의 기초이념’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대한민국헌법 전문이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라고 명시되며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가 한국 독립의 모태가 되고 대한민국 건국의 정신적, 사상적 기반이 되었음을 확고히 하게 되었다.

이렇듯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과거 일본의 침략을 강하게 거부하고 독립의 의지를 집약시킨 근간이 되었고 현재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의 뿌리, 기초가 되었다.

8월 15일 광복절인 오늘. 단순한 휴일이 아닌 숭고한 희생으로 되찾은 소중한 날임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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