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나 지역을 넘어 전 세계 각계각층에서 존경받는 사람들. 그런 역량을 갖춘 인재이자 국가나 기업을 ‘글로벌 리더’라고 부른다. 역사 속 그리고 현재의 시대를 이끌고 존경받는 사람들은 누가 있을까. 그들의 삶의 기록과 가치관 등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시선뉴스=정혜인 기자ㅣ미국의 종합 반도체 기업으로 수십 년간 매출로는 반도체 업계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인텔’. 1968년 설립되어 세계 최초로 NOR 플래시 메모리의 양산형 모델을 만들기도 했다. 인텔은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가 공동 창립했는데, 이중 고든 무어는 ‘무어의 법칙’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오늘은 고든 무어의 삶에 대해 살펴보겠다.

인연들을 만난 대학 시절

[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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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페스카데로에서 자랐다. 1950년에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화학 학사 학위를, 1954년에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에서 화학과 물리학박사를 받았다. 그는 버클리에서 공부하기 전, 샌어제이 주립대학교를 2학년까지 다녔는데, 이곳에서 미래에 결혼할 베티를 만났다. 그리고 1953년부터 1956년까지는 존스 홉킨스 대학교의 응용물리연구소 박사후연구원으로 지냈다. 이후 캘텍 동문 윌리엄 쇼클리와 벡맨 인스트루먼트의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에 입사했다.

퇴사, 그리고 창립

[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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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고든 무어를 비롯한 8명의 직원들은 사표를 내고 회사를 나왔다. ‘배신자 8인’이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항공 재벌 셔먼 페어차일드의 후원을 받아 쇼클리 연구소 인근에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설립했다. 페어차일드 반도체는 상업용 집적회로를 처음으로 발표하고, 1960년대 실리콘 밸리의 혁신 기업 중 하나가 되는 등 승승장구했다. 그러다 1968년, 고든 무어는 8명 중 한 명인 로버트 노이스와 손을 잡고, 지금의 우리가 알고 있는 ‘인텔’을 창립했다. 이때 페어차일드 상부와 경영 갈등을 겪어 회사를 나오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의 가능성을 연 ‘인텔’

[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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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 무어는 산타클라라 지역에 인텔을 창립하고, 컴퓨터에 사용할 수 있는 마이크로칩을 만들었다. 당시 다른 반도체 회사들이 급여, 회계 은행업무를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칩을 만들고 있었기에, 고든 무어의 선견지명이 남달랐다고 할 수 있다. 1971년, 인텔은 최초의 마이크로프로세서 ‘인텔 4004’를 발명했는데, 여기에는 12mm² 크기의 실리콘 조각에 2,300개의 트랜지스터가 장착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1985년에는 메모리 사업이 아닌 CPU 사업에 전념하면서 또 한 번 반도체 시장에 큰 반향을 이끌었다.

인텔의 명예 회장, 고든 무어

[사진/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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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이전까지 고든 무어는 부사장으로 근무하다가 1979년 4월에 이사회의 회장 및 최고경영자가 되었다. 1987년 4월, 앤드루 그로브가 후임 최고경영자로 내정되어 있었으나 고든 무어는 계속 이사회의 회장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1997년에 은퇴하며, 그는 인텔의 명예 회장이 되었다. 무어는 캘텍에 아주 큰 액수의 기부금을 전하기도 했다. 2001년, 무어와 그의 아내 베티는 6억 달러를 캘텍에 기부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부금이 캘텍의 연구와 기술 발전에 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무어와 베티는 인텔 주식 1억 7500만 주를 기부해 ‘고든 앤 베티 무어 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그는 2023년 3월 24일, 94세의 나이에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고,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수많은 CEO 사이에서 추모의 물결이 일렁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 대해 인텔 CEO 팻 겔싱어는 “고든 무어는 통찰력과 비전을 통해 기술산업을 정의했다”며 “수십 년에 걸쳐 기술자와 기업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말한 바 있다. 반도체 산업의 선구자였던 고든 무어가 부디 평안히 잠들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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