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박진아] 1960년 4월 19일은 학생과 시민이 중심 세력이 되어 반독재 민주주의 운동이 일어납니다. 오늘은 바로 4·19혁명이 일어난 지 55주년이 되는 날인데요. 4·19혁명이 일어나게 된 이유와 의미,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승만 정권은 1948년부터 1960년까지 발췌개헌, 사사오입 개헌 등 불법적인 개헌을 통해 12년간 장기 집권을 했습니다. 또한 1960년 3월 15일 제4대 정부통령을 선출하기 위해 실시한 선거에서 자유당은 반공개 투표, 야당참관인 축출, 투표함 바꿔치기, 득표수 조작 발표 등 부정선거를 자행했습니다.

그러자 같은 날 마산에서 시민들과 학생들이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당국은 총격과 폭력으로 강제 진압에 나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며 무고한 학생과 시민을 공산당으로 몰면서 고문을 가했습니다.

 

이후 1960년 4월 11일 1차 마산시위에서 실종되었던 김주열군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참혹한 시체로 발견되어 이에 분노한 시민들의 제 2차 시위가 다시 일어났습니다. 이어 1960년 4월 18일 고려대학교의 4천여 학생은 “진정한 민주이념의 쟁취를 위하여 봉화를 높이들자”는 선언문을 낭독하고, 국회의사당까지 진출하고 학교로 돌아가던 중 괴청년들의 습격을 받아 일부가 피를 흘리며 크게 부상당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전국의 시민과 학생들이 다음날인 1960년 4월 19일 총 궐기하여 “이승만 하야와 독재정권 타도”를 위한 혁명적 투쟁으로 발전, 독재정권은 총칼을 앞세운 무력으로 이를 진압하기 위해 비상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1960년 4월 25일 독재정권의 만행에 분노한 서울시내 각 대학 교수단 300여명은 선언문을 채택하고 학생, 시민들과 시위에 동참 합니다. 이러한 시위가 더욱 완강해지자 이승만 대통령은 결국 대통령직에서 하야하게 됐습니다.

4월은 잊지 말아야할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얼마전 있었던 세월호 참사 1주기였던 4월 16일 그리고 4·19혁명이 일어난 4월 19일까지. 당시 우리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찾기 위해 노력했던 피와 땀의 노력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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