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심재민] 말을 채 다 떼기도 전인 4살에 배우로 데뷔해 영화와 드라마 등 다양한 작품에서 몸을 사리지 않은 연기로 사랑받아온 배우 강수연. 그녀가 반세기에 걸친 배우인생을 마감하고 대중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기억될 별이 되었다. 지난 11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고(故) 강수연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이날 유족과 영화인 100여 명이 참석해 갑작스럽게 떠난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고(故) 강수연 영정사진 [연합뉴스 제공]

故 강수연은 4세에 집 앞에서 길거리 캐스팅으로 배우 인생을 시작했다. 이후 강수연이 생전 출연한 영화는 공식적으로 1975년작인 '핏줄'을 시작으로 가장 최근 촬영을 마치고 후반작업 중인 넷플릭스 영화 '정이'까지 무려 40여 편에 달한다. 어린나이에 시작한 그녀의 배우 인생사에는 한국 영화사가 오롯이 투영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故) 강수연 [사진작가 구본창씨 인스타그램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故 강수연은 한국 영화 역사에 있어 ‘원조’길을 걸어오며 다양한 길을 개척, 후배 배우들에게 선구자 역할을 해왔다. 먼저 길거리 캐스팅의 원조격이다. 배우 강수연은 4세에 집 앞에서 길거리 캐스팅으로 배우 인생을 시작했다. 당시 작은 얼굴에 올망졸망한 이목구비가 돋보였던 강수연은 '엄마', '아빠', '안녕하세요'와 같은 단어만 말할 수 있었던 때였는데, 연기에 대한 재능이 남달랐다. 특히 아역 배우가 많지 않았던 터라, 강수연은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고, KBS 청소년 드라마 '고교생 일기'(1983∼1986)로 손창민과 함께 당대 최고의 하이틴 스타가 됐다.

1987년 개봉 당시 영화 '씨받이'의 포스터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제공]

세계적 권위의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며 세계 속에 한국의 문화를 알린 것도 강수연이 원조다. 그녀의 대표작인 임권택 감독의 영화 '씨받이'(1987)에서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노출신으로 화제가 됐는데, 이때 나이가 불과 21세였다. 이 영화로 강수연은 베네치아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한국 배우 최초로 세계 3대 영화제 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로부터 2년 뒤 또 한번 임권택 감독과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로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춰 모스크바영화제 최우수여자배우상을 거머쥐며 한국 영화의 위상을 높였다. 특히 아제아제 바라아제에서 비구니 역을 맡은 강수연은 삭발 장면에서 실제 머리를 깎으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여배우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그녀는 연기의 혼을 불태웠다.

영화 '아제 아제 바라아제' [태흥영화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또 그녀는 80년대 90년대 영화에서 당시 시대의 여성상을 대변하기도 또 변화를 이끌기도 했다. 1980년대 '씨받이', '아제 아제 바라아제', '감자'(1987)로 고난을 겪는 한국 여인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깊이 있게 담아냈고, 1990년대 중후반에는 페미니즘 계열로 분류되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5),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 등'에서 여성상의 변화를 표현하기도 했다.

몸을 사리지 않는 배우로도 유명하다. 강수연은 '고래사냥2'(1985)에서 원효대교에서 한강으로 떨어지는 장면을 대역 없이 직접 소화했고, 35%대 시청률을 기록한 SBS 드라마 '여인천하'에서는 한겨울 촬영 때 얇은 소복만 입은 채 얼음물에 들어가기도 했다.

고(故) 강수연 [넷플릭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또한 강수연은 특유의 훌륭한 인성으로 특별한 잡음이나 갈등 없이 오랜 시간 톱배우이자 후배들의 위상으로 자리매김해왔는데, 특히 영화계에서 무명 배우나 스태프 등 주변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는 등의 미담이 끊이지 않는다. 아울러 강수연은 배우로서 뿐만 아니라 영화계의 대소사에도 앞장서며 영화계가 풍파에 흔들릴 때 중심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대표적으로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 출범 초기부터 심사위원·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했고,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사태로 영화제가 위기에 직면한 이후 2015∼2017년에는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제3회 강릉국제영화제 개막식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한 고(故) 강수연 [연합뉴스 제공]

"연기 잘하는 할머니 여배우가 되고 싶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강수연은 이렇게 말하며 연기에 대한 진심을 드러냈다. 이처럼 마치 자신의 소명처럼 작품마다 제 몸을 던지면서 배우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故 강수연, 대한민국 영화와 드라마의 성장이 투영된 그녀의 삶에 찬사와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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