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웃 슈퍼리치] 美 정유회사 ‘존 데이비슨 록펠러’...평가 엇갈리는 최고의 부자
[어바웃 슈퍼리치] 美 정유회사 ‘존 데이비슨 록펠러’...평가 엇갈리는 최고의 부자
  • 보도본부 | 심재민 기자
  • 승인 2019.05.01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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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심재민, 김아련] 미국 역사상 최고의 부자로 꼽히는 록펠러는 19세기 중엽 정유사업에 뛰어들어 1870년 '오하이오 스탠더드 석유회사'를 창설했다. 그 후 1882년 40여 개의 독립적인 기업들을 모아 미국 내 정유소의 95%를 지배하는 스탠더드오일 트러스트를 조직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록펠러는 석유 사업에서 생긴 거액의 이윤을 광산, 산림, 철도, 은행 등에 투자해 더 막대한 돈을 벌여들었다. 또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는 자신이 번 돈의 일부를 사회에 기부했고 1890년에는 시카고대학을 세웠으며, 1913년 록펠러재단을 설립하여 병원, 교회, 학교 등 자선사업을 하였다. 특히 일반교육재단, 록펠러의학연구소 등을 설립한 록펠러는 교육과 의학, 연구, 후원 사업에 큰 공을 세웠다.

남다른 경제관념을 가졌던 록펠러

[사진/wikipedia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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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 록펠러는 수많은 자기개발서에 등장하며 근검절약, 시간절약 등 성공과 돈에 관한 수많은 명언을 남겼다. 특히 그는 젊은 시절부터 꼼꼼히 돈의 흐름을 기록하고 절약하는 습관을 익혔다. 이런 습관은 1855년 클리블랜드의 센트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9월 26일 ‘휴이트 앤드 터틀’에 경리과 직원으로 입사해 회계장부를 기록하면서 갖게 되었다.

심지어 그는 중요한 경제관념을 갖게 해준 것을 기념하기 위해 훗날 첫 직장에 취업한 9월 26일을 그의 두 번째 생일로 기념했다. 또 이 회사가 있는 곳을 지나칠 때마다 자신이 주급 4달러를 받으며 처음 일을 시작했다고 눈물을 머금기도 했다고 한다. 록펠러는 ‘절약이야 말로 계획적인 삶의 필수 요소’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스탠더드오일'을 설립해 정유사업에 성공한 록펠러

[사진/wikimedia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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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펠러는 1863년 모리스 B. 클라크(Maurice B. Clark), 새뮤얼 앤드루스(Samuel Andrews)와 함께 정유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1865년 클라크는 회사를 떠났고 2년 뒤 헨리 M. 플래글러(Henry M. Flagler)가 들어와 1870년 ‘스탠더드오일’을 설립했다. 이후 수많은 기업들을 인수하여 경쟁사들을 물리치고 회사를 키웠다. 그렇게 록펠러가 수장으로 이끌던 정유회사는 1880년 기준 미국에 유통되는 연간 약 360만 배럴의 석유 중 95%를 유통했다.

하지만 스탠더드오일의 독점이 너무 심해지자 미국에서는 셔먼법을 제정해 독점과 거래제한을 금지시켰다. 이로 인해 1906년 스탠더드오일은 셔먼법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1911년 33개의 회사로 분할되면서 해체되었다. 이후 회사는 엑슨모빌(Exxon mobil Corporation), 모빌오일(Mobil Oil Corporation), 콘티넨털오일(Continental Oil Co.), 아모코(Amoco Corporation) 등으로 분할되어 지금까지 사업이 이어지고 있다.

막대한 재산을 사회에 기부한 록펠러

[록펠러센터/pixabay제공]
[록펠러센터/pixabay제공]

록펠러는 미국 최고의 재벌로 손꼽힐 만큼 큰 부를 쌓았지만 미국사회 내에서 그가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돈을 벌었다는 비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이런 오명을 씻기 위해서인지 그는 그동안 모은 재산을 탕진할 정도로 많은 재산을 사회에 쏟아부었다. 특히 기독교 신자였던 그는 게이츠 목사를 통해 자선단체를 설립하고 미국 최초의 의학연구소인 록펠러 의학 연구소를 세웠으며 대학을 세우기도 했다. 교육 사업에도 뛰어들어 실추되었던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록펠러는 1937년 5월 23일에 향년 97세로 생을 마감했다.

[시카고대학교/wikipedia제공]
[시카고대학교/wikipedia제공]

자수성가로 엄청난 부를 쌓은 록펠러. 1937년 사망 당시 그의 재산은 미국 국내총생산의 1.54%에 이르렀다. 현재의 가치로 환산하면 빌 게이츠의 3배나 된다. 하지만 그의 경영방식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어 오늘날 록펠러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지만 사회에 큰 공헌을 한 것에는 이견이 없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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