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 지난 국정감사(이하 국감)에서 이른바 ‘비리 유치원’의 명단이 공개되며 큰 파문이 일었다. 사립유치원들이 원생들에게 사용하라며 지급한 국가보조금을 개인적인 용도로 전용했다는 이유다.
  
이 명단이 공개되면서 박용진 의원은 2018년도 최고의 국감스타로 떠올랐고 학부모와 여론은 사립유치원 원장들이 보조금을 이용해 명품가방이나 외제차를 사는 등 사치를 부리고 가족 명의로 시설을 만들거나 친인척에게 더 많은 월급을 주는 등의 행태를 벌인 것에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
  
이에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이하 한유총)의 김용임 전북지부장이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새벽에 랜턴을 끼면서까지 유치원을 위해 일을 하는데 간첩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여론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가 입고 온 시장 표 셔츠도 이미 수십만 원의 명품 셔츠로 보였으니 말이다. 
  
사립유치원에게 폭풍 같은 국감이 지났지만 끝이 아니었다. 정부는 국공립유치원을 확대하고 2022년까지 국공립 비율을 47%에서 48%까지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사립유치원 법인화도 추진하여 유치원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고 국가관리 회계시스템인 에듀파인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 각 지방의 교육청은 유치원비리신고센터를 만들어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그동안 지원은 해주면서 운영은 깜깜이었던 사립유치원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이 예고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개혁이 ‘비리’로 인해 시발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개혁의 대상은 공개된 비리유치원뿐만 아니라 전체 사립유치원이라는 것. 즉 전체 사립유치원을 비리의 잠재적인 대상으로 보고 개혁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물론 일부의 사립유치원의 행태는 그야말로 경악 그 자체였다. 아이들을 위해 쓰라고 지급한 보조금을 성인용품 따위를 사는 데에도 썼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상적으로 운영을 하고 있던 유치원의 원장들 역시 현재 거의 같은 급으로 매도되고 있다. 이미 여론은 유치원이 비리 유치원인지 아닌지가 문제가 아니라 유치원 원장은 곧 비리를 저지르는 사람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A 원장은 시선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유치원을 운영하는 것은 아이들을 돌보고 교육하는 것 외에 건강과 생활의 전반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라 항상 긴장의 연속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생애 첫 교육을 책임지고 있다는 사명감과 우리 지역의 부모님들이 양육에 대한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린다는 자부심으로 힘들어도 참으며 운영을 해 왔는데 이제는 그런 자부심은커녕 어디서 유치원 원장이라는 말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토로했다. 
  
또한 “운영도 힘들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아 폐업을 하려고 하자 상황을 이렇게 만든 정부는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고 부모님들은 욕을 하면서도 아이들을 책임지라며 집까지 찾아온다.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A 원장의 유치원이 비리 유치원 명단에 포함되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A 원장은 비리를 저지른 파렴치한 사람으로 각인되어 버렸다. 게다가 아이들에게 유치원 원장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나쁜 사람’이라고 대답한 아이들도 있어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현대 사회에서 유치원의 존재는 양육정책의 핵심에 있다. 특히 사립유치원은 아이의 교육시설뿐 아니라 일을 하느라 늦게 오는 부모들 대신 아이들을 돌보아 주는 돌보미 기능도 함으로써 부모들의 부담을 크게 줄여주고 있다. 
  
그런데 비리 유치원과 그렇지 않은 유치원이 모두 비난을 당하고 있으니 이를 운영하고 있는 원장들의 기운이 빠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비리 유치원도 폐원을 하면 없애지 말라고 청원이 들어온다. 유치원은 그만큼 현대 육아에 커다란 부분을 책임지고 있다.
비리 유치원도 폐원을 하면 없애지 말라고 청원이 들어온다. 유치원은 그만큼 현대 육아에 커다란 부분을 책임지고 있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한다. 그래서 정상 운영을 한 유치원도 비리 유치원이라는 색안경을 쓰고 보고 있다. 작금의 사태를 겪으면서 사명감을 가지고 유치원을 운영할 원장이 있을까? '비리 유치원' 파문 이후 폐원을 추진하는 사립유치원이 늘고 있으며 사립유치원의 신설도 주춤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지역 교육청에 폐원을 신청한 곳은 전국 38곳이며 1곳은 원아 모집 중단을 안내했다. 이 중 비리에 관련되어 폐원을 신청한 곳은 3곳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고 나머지 유치원들은 원아모집의 어려움과 경영상의 악화를 이유로 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교육부는 폐원을 신청하는 유치원이 늘어나자 폐원을 검토 중인 유치원은 학부모 3분의 2가 동의해야 한다는 규정을 엄격하게 지키도록 한다는 방침을 보였다. 이에 A 원장은 “그러면 정부가 유치원을 사서 운영을 해 주라”며 답답해했다. 경영이 힘든데도 불구하고 폐업도 의지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리와 연관 없는 유치원들도 힘들지만 부모들도 조바심이 나는 상황이다. 당장 유치원이 없어지면 아이를 맡길 곳이 없기 때문이다. 
  
잘못을 저지른 유치원은 당연히 책임을 지고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유치원과 학부모는 무슨 죄가 있어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정부와 교육부, 그리고 언론은 이를 제대로 구분지어 선량한 사람들이 피해를 받는 것을 철저히 예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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