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김지영] 요트는 우리가 만든 탈 것 중 가장 느린 수송수단이라고 한다. 이를 한 단어로 표현한 요트가 있다. ‘아라파니호’. 바다라는 뜻의 순 우리말 ‘아라’와 달팽이라는 뜻의 순 우리말 ‘파니’를 합성해서 만든 요트의 이름이다. 요트의 이름만 들어도 느림의 미학이 느껴지는 아라파니호는 2014년 10월 19일 왜목항을 출항해 2015년 5월 16일 다시 왜목항으로 입항했다. 총 209일, 아라파니호와 지구 한 바퀴를 돌아낸 해양모험가, 김승진 선장을 만나보았다.

PART 1. 단독 무기항 요트 세계 일주, 그 이야기를 다시 들어보다

무기항 요트 세계일주, 사진제공/김승진 선장

- 안녕하세요~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저는 바다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해양모험가 김승진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선장님이 단독 무기항 요트 세계 일주를 하셨잖아요. 이것이 무엇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단독 무기항 요트 세계 일주는 혼자서 논스톱(Nonstop: 탈것이 중간에 서는 곳 없이 목적지까지 감)으로 지구를 한 바퀴 돌아온다는 그런 모험종류를 이야기합니다. 뒤에 또 하나를 붙인다면 ‘무원조’인데요. 단독 무기항 무원조 요트 세계 일주. 도중에 원조를 받지 않는 거죠. 세계적으로 몇 가지 룰이 정해져있어요. 하나는 항해를 하는 총 거리가 지구의 적도둘레보다 많이 항해해야 해요. 약 40,000km 이상을 항해해야 하고, 또 하나는 ‘적도를 2회 이상 통과해야한다’이고요. 그리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경도를 통과해야 한다’ 그러니까 완전히 360도를 돌아야 된다는 뜻이죠. 여기에 ‘혼자서만 가야한다’는 것은 당연하고요. ‘출발한 항구로 반드시 되돌아와야 한다’. 이렇게 다섯 가지 정도의 룰이 있어요.  

무기항 요트 세계일주, 사진제공/김승진 선장

-그 룰을 다 지킬 경우 성공을 했다고 하는 거군요. 6번째 성공자인 것으로 알려져 있던데 맞나요?

그것은 잘못된 사실입니다. 전 세계에 성공한 사람이 100명이 좀 안돼요. 아시아에서 대략 6명 정도인 것 같아요.

-그렇군요. 원래 PD일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갑자기 일을 그만두고 요트 세계 일주를 떠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사실 크게 다르지 않은 게 PD라는 직업이 전 세계를 활동하는 범위 안에 들어가 있잖아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그곳에서 취재를 해 보여주는 그런 일을 했었기 때문에 극적인 모험활동은 아니지만 유사한 활동은 하고 있었고요. 바다에 관한 것은 특히 대학시절 바다를 처음 접한 뒤 가까워져서 저에게 낯선 장소는 아니었습니다. 늘 바닷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으니까요. 오랫동안 스킨스쿠버다이빙도 해왔고요.

그 와중에 제가 마흔살이 됐을 때 ‘아 내 유전자는 모험가구나’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그렇다면 모험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 중에 특히 요트와의 만남은 결정적이었던 것 같아요.

무기항 요트 세계일주, 사진제공/김승진 선장

-요트는 어떻게 처음 접하게 되셨나요?

외국 출장 나갔다가 굉장히 많이 정박되어 있는 요트를 보고 깜짝 놀랐죠. 그전에도 요트를 본 적은 있었지만 마음속에 훅 들어오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서른아홉 때 갑자기 눈에 들어오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3살짜리 딸아이를 태우고 먼 거리를 항해한다면 자연을 가르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때부터 요트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기 시작했죠.

-그럼 단독 무기항 요트 세계 일주를 한다고 했을 때 가족들의 반대는 없었나요?

가족들에게 그렇게 정확하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어요. 한다고는 이야기했는데 말해줘도 사람들은 그게 무엇인지 잘 몰라요. 왜냐면 그전에도 세계여행을 두 차례 했었기 때문에 ‘또 하나보다’ 이정도로 생각했죠. 그리고 그전에도 요트활동을 계속해왔기 때문에 그 일환정도로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세계일주 마쳤을 때 딸아이가 고등학생이었는데 나중에 제가 돌아오고 나서 그랬다고 하네요. ‘아빠가 이렇게 위험한 일을 했었어?’라고요. 하하.

무기항 요트 세계일주, 사진제공/김승진 선장

-그러셨군요! 세계 일주 전에 어떤 준비들을 했나요?

정말 많은 준비가 필요한데요. 그냥 가벼운 조종이 아니고 어떠한 환경에서도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는 요트 조종 능력이 있어야 해요. 강풍 속에서도 항해를 해야 하니까요. 그 다음으로는 정신적 여유 같아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정신적으로 무너지지 않아야 하고요. 그리고 요트가 있어야겠죠. 그래서 자금이 많이 필요해요. 팀 운영하는 비용도 상당히 많이 들어가요. 항해를 2년 동안 하니까 육상지원팀 운영하기 위해서는 요트 구입비용보다 더 들어요.

또 배에 새로운 장비들 부착도 필요하고요. 마지막으로 경험이죠. 전 세계 바다를 어느 정도 알아야 해요. 그래서 제가 그 이전에 논스톱이 아니고 항구에 들려가면서 지구를 거의 한 바퀴 돌았어요. 트레이닝 항해를 2번 정도 한 뒤에 논스톱에 도전하게 된 거죠.

무기항 요트 세계일주, 사진제공/김승진 선장

-바다 위에서 용변과 음식은 어떻게 해결했나요?

가정집과 똑같아요. 요트 안에 부엌도 있고 거실도 있고 방도 있고 화장실도 있었죠. 다른 점이라면 흔들리면서 움직인다는 것과 장시간 쇼핑할 수 없다는 것이죠. 하하. 그래서 식재료를 얼마나 신선하게 보관하는지가 문제였어요. 그래서 다 건조시켜 갔어요. 물도 마실 만큼 싣고 갔고요. 비타민이 문제였는데 김치가 있어서 쉽게 해결이 됐어요. 그리고 무 씨앗도 가져갔어요. 솜에 길러 재배해서 먹었죠. 용변은 그냥 바다로 버리는 거예요. 왜냐하면 물고기들의 먹이가 되거든요.

무기항 요트 세계일주, 사진제공/김승진 선장

-낚시도 했나요?

거의 안 해요. 그런데 항해 끝나기 한 달 전에 식재료를 점검해보니 먹을 양이 충분치 않더라고요. 그래서 남중국해 올라왔을 때 낚시를 시도했어요. 한 두시간만에 4마리를 잡아서 먹을 게 넘쳐나더라고요. 하하.

무기항 요트 세계일주, 사진제공/김승진 선장

-하하. 그럼 바다 위에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세 가지가 있었어요. 하나는 적도지방을 통과할 때인데 돌풍이 굉장히 많아요. 바람이 없어졌다 강풍이 불었다를 반복하니까 돛을 접었다 폈다를 계속 반복해야 해서 정말 힘들어요. 두 번째는 돌고래 떼를 촬영하러 바다에 들어갔다가 상어를 만나서 죽을 뻔했어요. 상어를 보자마자 ‘내 인생 여기서 끝났구나’ 이 생각을 했는데...침착하게 대응해서 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셀카봉으로 위협했다 도망가고 다시 상어가 따라오면 셀카봉으로 위협하고 도망가고. ‘뒤를 보이면 안 된다, 빨리 움직이면 안 된다’ 이런 이야기를 학창시절 들은 적이 있어서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무기항 요트 세계일주, 사진제공/김승진 선장

마지막은 유빙이에요. 남극해는 가장 무서운 바다예요. 집채만 한 파도가 끊임없이 와요. 파도가 심하면 수평선이 안보여서 ‘바다가 좁아진다’라고 표현해요. 여기에 얼음이 나타나면 제가 피할 수가 없어요. 작은 얼음이라 하면 3~40m크기인데요. 거대한 얼음은 레이더에 잘 잡혀서 괜찮은데 작은 얼음은 물 표면에 떠있어요. 파도가 얼음보다 높죠. 그래서 레이더가 감지를 못해요. 그냥 운명에 맡기는 거죠.

무기항 요트 세계일주 항해일지, 사진제공/김승진 선장

-듣기만 해도 위험해 보이는데, 또 한편으로는 행복했던 순간도 있었을 것 같아요.

출발하는 날부터 도착하는 날까지 행복했어요. 내가 꿈에 그리던 모험을 하고 있다는 것은 최고의 행복이죠. 제가 언젠가 그날이 올 때를 고대하며 조금씩 준비했던 거였고, 드디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된 그 순간이었기 때문에 모든 날이 최고의 행복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어려웠던 그 모든 일들도 행복하게 항해했어요.

요금이 떨어져 통신이 두절됐던 그 순간에도 어느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아 묘한 자유를 느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는 김승진 선장. 다음 시간에는 그런 그가 세계 일주를 통해서만 느꼈던 경험과 바닷사람으로서 그의 일상에 대해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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