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 국회출입기자 / 박용한 북한학 박사] 예상과 다름없었다. 새해 들어 북한은 한국에 대화를 제의했다. 명분이 좋았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참석의사를 밝히며 만나자는 얘기였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직접 신년사에 메시지를 담아 강한 의지도 드러냈다. 북한 조선중앙 TV는 지난 1일 오전 9시 30분부터 약 30분간 김정은이 발표한 신년사를 방송했다.

조선중앙tv/ytn

북한은 새해를 맞아 신년사를 공개해 왔다. 김일성 사망 이후에는 매년 1월 1일 ‘노동신문’, ‘조선인민군’, ‘청년전위’ 등 관영매체가 함께 게재하는 ‘신년공동사설’ 형태로 바꿨다. 김정은도 집권 직후인 2012년에 신년공동사설을 발표했다. 새해 첫날을 불과 2주 앞둔 12월 17일 김정일이 사망한 직후였다. 집권 2년차인 2013년부터는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김정일이 TV에 모습을 드러내거나 목소리를 전달하기를 꺼렸던 행보와 달랐다. 김정은의 경우는 오전 또는 정오에 방송에 나와 직접 신년사를 읽어내려갔다.
 

이번 2018년 신년사를 보면 대남 관련 발언이 증가했다. 2017년보다 50% 정도 늘었다. 평창올림픽을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라며 “대회가 성과적으로 개최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평가했다. 이어 “한핏줄을 나눈 겨레로서 동족의 경사를 같이 기뻐하고 서로 도와주는것은 응당한 일”이라며 한민족을 강조했다. 이번 신년사에서 민족을 32번이나 반복했다. 정상회담을 개최했던 2007년 49번 이후 가장 많이 언급했다. 김정은 집권 시기만 보더라도 20번 전후로 언급하던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다.
 
그러나 긍정적인 견해만 들어있지 않았다. “외세와의 모든 핵전쟁연습을 그만두어야 하며 미국의 핵장비들과 침략무력을 끌어들이는 일체 행위들을 걷어치워야”한다며 비난 수위를 높였다. 이어 “북남관계문제를 외부에 들고다니며 청탁하여야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오히려 불순한 목적을 추구하는 외세에게 간섭의 구실을 주고 문제해결에 복잡성만 조성한다는것을 알아야”하다고 목소리 높였다. 이는 한국에 미국과의 공조를 끊으라는 재촉이다. 
 
북한은 한국에 남북대화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국제공조는 그만두라는 요구를 강조했다고 풀이된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이를 막으려는 국제사회의 일치된 견해와 북한 핵무기 위협을 방어하려는 한ㆍ미 동맹을 무조건 비난했다. 이 때문에 북한이 신년부터 평화공세에 나섰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픽사베이

신년사 앞머리에는 미국을 향해 던진 경고가 가득했다. “미국은 결코 나와 우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걸어오지 못한다”며 김정이 직접 힘주어 말했다. 이어 “미국 본토전역이 우리의 핵타격 사정권안에 있으며 핵단추가 내 사무실책상 위에 항상 놓여있다는것 이는 결코 위협이 아닌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에 대한 핵 포기 노력을 그만두라는 요구였다. 북한이 원하는 형식에서 협상을 시작하자고 미국을 압박했다.
 
한국에 보낸 대화제의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이 강조한 ‘민족자주’와 ‘우리 민족끼리’가 ‘통남봉미’로 해석되는 이유다. 미국에는 경고장을 던지고 한국에는 유화 신호를 보였지만 결국은 미국과 거리를 두라는 의미다. 그러나 대화를 하더라도 핵문제는 거론하지 말라고 하니 대화가 잘 되기 어렵다. 
 
북한 신년사에 큰 의미 두지 말자는 주장도 나온다. 절반은 맞는 말이다. 어차피 여기서 제기한 말들이 지켜지거나 실현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대외 정책은 복잡한 전략이 숨어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간과할 수 없는 이유도 있다. 신년사는 북한 사회가 체제의 정책적 방향을 전달하는 가장 유용한 수단이다. 앞으로 한 해 동안 집행할 정책의 실행 지침을 전달해서다. 북한 사회는 신년사가 나오면 각계각층이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을 골몰한다. 신문 한 면 반을 가득 채운 신년사를 암송하는 고통도 피할 수 없다.
 
남북대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돌다리도 두드리며 가라고 조언을 해야겠다.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급한 마음을 이미 여러 차례 드러낸 정부라 걱정이 크다. 북한은 ‘빅딜’을 제안할 가능성이 크다. 협상장에 나온 김에 북한이 원하는 카드를 모두 꺼낼 수 있다. 협상이 틀어져도 올림픽 참가를 포기하면 그만이다. 오히려 여기에 기대가 컸던 한국 정부가 난감한 입장을 견뎌내기 어렵다고 북한도 이미 간파했다. 올림픽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북한은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현실주의 정치에서 순수하게 평화만을 외친다면 무능하다. 북한이 새해 첫날에 내놓은 신년사에 한국 정부의 고민은 깊어간다.
 
 박용한 북한학 박사 / 중앙일보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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