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김병용 / 디자인 이연선]

▶ 도스토옙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
▶ 출생-사망 / 1821년 11월 11일 ~ 1881년 2월 9일
▶ 국적 / 러시아
▶ 활동분야 / 소설가

빈민병원 의사의 차남으로 태어나 젊은 작가로서 촉망받다가 처형을 당할 위기를 넘긴 후 ‘죄와 벌’, ‘카리마조프가의 형제들’ 등의 저서를 남긴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가.

-소년 도스토옙스키, 가난하고 핍박받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을 갖다

도스토옙스키는 1821년 11월 11일 모스크바에서 빈민구제병원 의사인 아버지 미하일 안드레예비치와 어머니 마리아 표도로브나 사이에서 7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당시 아버지 미하일 안드레예비치가 일하던 빈민병원은 모스크바의 빈민가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곳으로 주변에 죄수묘지와 정신병원, 고아원 등이 가득했던 곳이었다.

위험한 환경 탓에 밖으로 나가는 것이 금지되었던 도스토옙스키는 이를 어기고 자주 병원 밖으로 나가 환자들과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 시기에 도스토옙스키는 가난으로 핍박받으며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게 되었고 이는 후에 그의 작품세계에서 드러나는 인간을 향한 강렬한 연민의 토대가 되었다.

-청년 도스토옙스키, ‘니콜라이 고골의 환생’을 알리다.

이후 도스토옙스키는 공병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성 제도국 소위로 임명된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빅토르 위고 등의 문학을 공부하며 생긴 문학에 대한 열정을 저버리지 못하고 1844년 10월 제대하였다. 이후 1846년 데뷔작인 ‘가난한 사람들’을 출판하게 된다. ‘가난한 사람들’은 당시 비평계의 거물인 벨린스키로부터 ‘제2의 고골이 태어났다’며 극찬을 받아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된다.

벨린스키가 극찬을 하기 전, ‘가난한 사람들’ 초판을 읽은 당대 유명 문인 네크라소프는 당일 새벽, 잠들어 있는 도스토옙스키를 깨우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을 정도로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을 인정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공상적 사회주의를 신봉한 도스토옙스키, 처형 위기에 놓이다

도스토옙스키의 데뷔는 화려했으나 이후 발표한 ‘백야’, ‘분신’ 등은 혹평을 받게 된다. 이때부터 도스토옙스키는 서구주의 사상에 끌리게 되고 젊은 지식인들과 모여 공상적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정치 모임을 갖게 된다. 1849년, 도스토옙스키는 당시 황제 차르 니콜라이 1세가 개혁 모임을 잡기 위해 보낸 첩자에 의해 발각돼 체포된다.

체포된 도스토옙스키는 총살을 선고받았다. 도스토옙스키는 집행인이 형수들의 죄명과 형을 낭독하는 동안 겁에 질린 채 모든 것을 단념한다. 하지만 총살이 집행되기 직전, 형 집행이 중지되고 시베리아 유배로 감형되었다.

-처형 사건 이후, 새로운 가치관을 가지다

처형 사건 이후 도스토옙스키의 글은 어둡고 현실적으로 바뀌게 된다. 또한 수감 생활을 통해 그는 사회주의 사상에서 벗어나 신앙심을 바탕으로 한 인도주의 사상으로 바뀌게 된다. 동시에 그의 저서들도 폭력적인 혁명을 부정하고, 기독교의 사상을 담게 된다. 이 시기에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후에 ‘죽음의 집의 기록’을 집필하였다.

- 도박과 빚 그리고 ‘죄와 벌’과 ‘카리마조프가의 형제’의 탄생

유배 이후 도스토옙스키는 ‘학대받는 사람들’, ‘백치’, ‘악령’, ‘미성년’ 등을 발표하며 인기를 얻어 빈곤한 생활을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취미로 즐기던 도박으로 도스토옙스키는 창작 활동에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사업실패와 도박으로 많은 빚을 지게 된 도스토옙스키는 빚을 충당하기 위해 출판사와 무리한 계약을 하게 되고, 이때부터 원고료를 더 많이 받기 위해 긴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데 이 시기에 나온 작품이 바로 ‘죄와 벌’이다. 이후, ‘도박꾼’과 도스토옙스키의 최대 걸작이라 평가받는 ‘카리마조프가의 형제’ 등을 발표하며 러시아 최고 작가로 거듭나게 된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도스토옙스키는 내가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었던 단 한 사람의 심리학자였다. 그는 내 생애에서 가장 아름다운 행운 가운데 하나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배움을 준 작가로 기억되고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그의 저서를 통해 니체뿐만 아니라 현대에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무엇인가를 일깨워주는 “아름다운 행운”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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