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3 러시아에서의 독립활동, 권업회와 대한광복군정부 [키워드한국사]
EP.153 러시아에서의 독립활동, 권업회와 대한광복군정부 [키워드한국사]
  • 보도본부 | 이호 기자
  • 승인 2017.10.22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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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이호/디자인 이정선] ※본 기사는 청소년들에게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 시선뉴스를 구독하는 구독자들에게 한국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제작되는 기획기사입니다. 본 기사는 사실적인 정보만 제공하며 주관적이거나 아직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사건의 정보 등에 대해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혹은 해당 사실을 정확히 명시)을 원칙으로 합니다※
 
러시아는 만주지역과 더불어 독립운동을 가장 활발하게 한 지역 중 하나다. 1884년, 조러통상수호조약을 체결한 이후에, 러시아 정부가 공식적인 이민을 인정하면서 한인들의 러시아로의 귀화를 추진하였는데 이들을 원호(元戶)라 한다. 원호는 러시아 정부로부터 토지를 분배 받고 세금과 군역의 의무를 지며 비교적 여유 있는 생활을 영유하며 경제력을 장악하였다.

반대로 러일 전쟁 이후 이주한 한인들은 여호(余戶)라 하는데 이들은 러시아 국적을 얻지 못한 미귀화인으로 토지 등을 분배받지 못해 원호와 러시아인의 토지를 소작하면서 생활하였다.
 
원호와 여호 사이에는 신분과 지위에서 상당한 격차가 있어 서로 혼인도 하지 않고 교류도 하지 않는 마치 다른 민족과 같은 양상을 보였다. 여호는 초기에 농민들이 많았지만  
 
1905년, 을사조약 후 연해주 한인 사회의 공동 이익을 목적으로 한민회가 조직되어 한민학교를 설립하였다. 또한 간도 관리사 출신의 이범윤과 연해주 한인 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뽐내고 있던 최재형 등이 중심이 되어 연해주 의병부대를 편성하였다.
 
3~4000명 정도의 이 병력은 러시아제 5연발 소총으로 무장하여 전제익, 안중근 등을 중심으로 국내진공작전을 전개했다. 하지만 잦은 전투에 따른 전력 소모와 지도자들 사이의 내분으로 전력이 분산되었다.
 
1910년에는 도총재 유인석이 총지휘 하고 이범윤이 창의군을, 이남기가 장의군을 맡은 13도의군이 창설되었다. 이들은 우수리스크 근처에서 의병과 계몽 운동 사이의 연합전선의 성격을 가졌다. 유인석과 이상설은 대규모 항일전을 전개할 계획을 가지고 고종에게 내탕금으로 군자금을 지원해줄 것과 아령파천을 건의했으나 항일 활동을 하기도 전에 대한제국이 멸망해 버렸다.
 
이에 13도의군의 간부들을 중심으로 성명회를 조직하게 된다(1910.8). 이들은 청년 50여 명이 결사대를 조직하여 일본인 거류지를 습격하는 등의 무장투쟁을 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일제는 러시아에 성명회 간부를 체포할 것을 요구하여 러시아는 성명회 간부에 대한 체포령과 항일 운동을 탄압하였다. 이로 인해 성명회는 불과 1개월만에 해체하게 된다.
 
일본에 뜨거운 맛을 보여주긴 했지만 성명회는 너무 빠르게 해체의 수순을 밟아야 했다. 때문에 이종호, 이상설, 최재형, 홍범도는 장기적인 항일 독립 운동을 계획하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권업회(1911)을 창립하게 된다.
 
권업회는 한인 사회의 경제와 항일 문제를 관리하여 궁극적으로 독립군 양성을 통한 독립 전쟁론을 구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두었다. 권업회는 연해주 전역에 걸쳐 지회가 분포되었고 신채호, 이상설이 주필을 한 권업회 주도의 신문 ‘권업신문(1912~1914)’를 창간 하는 등 활발한 언론활동도 수행하였다.
 
권업회의 이런 노력은 1914년 대한광복군정부를 건립하는 결과를 낳았고 이는 망명 정부의 효시로 남게 된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제정러시아와 일본이 동맹을 맺음으로써 권업회와 함께 1914년 9월 해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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