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정광윤]   기획재정부는 지난 5일에 ‘지역 공약 이행 계획’을 발표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발표했던 각종 지역 공약의 실천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먼저, 박근혜 정부가 공약 이행 방안을 보다 구체적으로 국민들에게 알린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이 계획은 박근혜 대통령이 평소에 자주 강조해 온 ‘국민과의 약속은 지킨다.’는 신념 아래서 나온 것 같다. 그럼에도 이행 계획 가운데 신규 사업의 경우에는 타당성과 우선순위를 따지겠다는 구상은 ‘공약이라고 해서 무조건 추진하겠다.’는 것은 아님을 의미한다. 이런 박근혜 정부의 자세는 너무나 온당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역대 선거에서 대통령 후보들은 지역별 공약을 남발하기 일쑤였고, 대통령 당선자는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가급적 그 공약을 지키려는 편이었다. 공약을 어겼을 때 오는 해당 지역의 반발에 대한 부담 때문이기도 하고, 대체로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기 쉬운 지역 공약을 실천함으로써 정부의 업적을 과시하려는 욕구 때문이다. 말하자면 국가의 재정 여건이나 백년대계보다는 지역 민심이 우선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손쉬운 선택을 해 온 것이다. 사업의 타당성과 효과성과 효율성 따위는 당연히 뒷전이었다. 그것도 정부와 국회의 권력 실세들에 의해 국가 재정이 요리되었던 만큼 지역 간 불균형을 오히려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국가 재정의 낭비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행정수도의 이전이다.

 
   박근혜 정부가 공약 가계부를 발표하고 알뜰한 정부 살림을 펴겠다고 천명한 것도 더 이상 국가 재정의 방만한 운용을 방치했다가는 커다란 위기에 봉착하리라는 예견 때문이었다. 때마침 그리스 등 남부 유럽의 재정 파탄을 통해 소중한 교훈을 얻은 탓도 있다. 혹자는 대한민국 정부의 재정은 아직 견딜 만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하는 공공기관까지 포함하면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황이 아니다. 게다가 고령화 등에 따라 복지 등 어쩔 수 없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경직성 재정 수요를 감안할 때, 세출 예산에 대한 엄격한 관리가 선행되지 않으면 대한민국 역시 상당수의 남유럽 국가들의 전철을 따르지 말라는 법이 없다.

   물론, 경기가 침체된 상태에서 지역 경기를 활성화시키는 데 중앙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고, 그 일환으로 SOC 등 지역 투자를 할 필요성은 어느 정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일수록 정부가 투자의 타당성과 효과성과 효율성을 제고해야 실제로 지역에도 도움이 될 터이다. 요컨대 단기적인 안목에서 재정을 투입할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효과를 겨냥한 투입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부가 이번에 지역 공약 이행 계획을 발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런데 지역 발전에 깊은 이해관계를 가진 국회의원들이 과연 정부의 이런 충정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중앙정부의 예산에 대한 심의·의결권을 가지고 있는 국회가 기존의 관행대로 원칙 없이 접근한다면 정부의 의지가 공염불이 될 공산이 크다. 결국은 박근혜 정부가 국회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가 관건이고, 그 중에서도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 지도부와의 의사소통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각 지방정부들은 기로에 서 있다. 서울 등 일부 대도시나 중견도시의 지방정부를 제외하고는 스스로 재정을 꾸릴 수가 없는 여건이다. 국고보조금 등 중앙정부의 지원이 없으면 연명하기조차 어려운 지경이다. 그럼에도 재정난을 타개할 자구책을 강구하는 지방정부는 찾아보기 어렵다. 제도적인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지만, 제한된 제도 속에서라도 해법을 찾아야 하는데 그런 노력조차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오히려 호화 청사를 건립하고 불필요한 지역 축제를 남발하는 등 재정난을 심화시키는 데 지방정부가 스스로 앞장서고, 여기에 중앙정부도 부화뇌동했다는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경상남도가 도립 진주의료원을 폐쇄하기로 결정한 것은 시사점이 크다.

   주지하듯이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도 선진적인 지식·정보 국가이다. 기업 등 민간 부문은 지식·정보화의 덕을 많이 보고 있다. 생력화(省力化) 등 효율성을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자리가 줄어드는 폐단은 있지만, 역기능보다는 순기능이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정부 역시 지식·정보화의 흐름에 따라 민원서류 등 국민에 대한 서비스를 크게 개선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인적 구조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특히 지방정부의 경우에는 산업화 시대의 구조를 그대로 갖고 있다. 대부분의 지방정부가 그 관할 인구가 많이 줄었는데도 공무원 수에는 변함이 없다. 사회복지 등 행정 수요가 늘어나는 측면도 있지만, 지식·정보화는 이를 상쇄하고도 크게 남는다는 사실을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이와 맞물리는 것이 행정구역 개편이다. 현행 행정구역 자체가 농경사회 및 산업사회의 산물이다. 따라서 그 개편의 필요성이 지대하다. 역대 정부들이 이를 시도해 왔지만, 그 결과가 미미한 것은 기득권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지방정부의 공무원들에 대한 구조 조정이 어려운 까닭이다. 행정구역을 개편하려는 가장 큰 이유도 통·폐합을 통한 인력의 축소인데,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개편의 정당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인력의 축소까지는 아니더라도 인력 재배치라도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하는데, 얼마 전에 있었던 일선 행정기관에 근무하던 복지 공무원들의 잇따른 자살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복지 부문에 종사하는 공무원들이 적기 때문인데, 지원자도 많지 않은 데다, 이를 조정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의 리더십에도 한계가 있고, 무엇보다도 공무원들이 인기 없는(?) 자리에 가기를 극도로 기피하는 경향인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은 만고의 진리이다. 지방정부의 혁신 없이는 지방정부의 재정난을 타개할 방법은 없다. 중앙정부의 재정도 여의치 않은 환경에서 지방정부에 대한 지원에 한계가 명백하다. 설령 중앙정부의 재정 여건이 호전된다 하더라도 종전처럼 지방정부가 재정을 방만하게 운용하는 이상, 그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뿐이다. 중앙정부가 추진하는 지역 공약도 마찬가지다. 중장기적인 국토 계획과 국가 발전 전략 속에서 입안하고 검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지방정부와 지역 정치인들의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가 없겠지만, 분명한 원칙과 기준을 갖고 지역 사업의 추진 여부를 결정해야 하리라. 가장 중요한 원칙은 국가 재정의 건전성이고, 그 다음은 다수 지역주민들의 필요(needs)이다. 지역 사업들 가운데는 지역 주민들보다는 일부 기득권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시작된 것들이 대단히 많음을 박근혜 정부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경상남도의 진주의료원 폐쇄 결정을 정치적 논리로 풀 것이 아니라, 지방정부의 혁신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진주의료원 문제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에 대한 혁신 작업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를 기대한다. 방만한 재정 운용 때문에 지방정부가 소속 공무원들의 급여를 지급할 수 없는 처지로 전락한 바 있는 몇몇 선진국의 시례는 남의 일이 아님을 우리 모두 깨달아야 할 때이다. 진주의료원과 같이 ‘공유지의 비극’을 겪고 있는 유사한 사례는 대한민국 안에 상당수 있을 것이다. 공공성을 빙자하여 시민의 혈세를 끊임없이 투입하고도 헤어날 수 없는 더 깊은 늪 속으로 빠져드는 공공기관들을 찾아내어 그 존폐 여부를 진단하고 결정해야 할 것이다. 당연히 공공기관은 필요하지만, 더 이상의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기관에 대해서는 없애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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